삼사 ()

목차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태사(太師) · 태부(太傅) · 태보(太保)의 총칭.
목차
정의
고려시대 태사(太師) · 태부(太傅) · 태보(太保)의 총칭.
내용

언제부터 주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문종 때 각각 1인으로 하고 모두 정1품으로 정하였다. 충렬왕 때 없어졌다가 1356년(공민왕 5) 다시 두었으며, 1362년에 없앴다.

주된 직능은 삼공(三公)과 함께 임금의 고문 구실을 하는 국가 최고의 명예직이었다. 이러한 삼사·삼공직은 적격자가 없으면 궐원(闕員)으로 두었다.

한편, 왕족에게 수여된 봉작제(封爵制)의 경우를 보면, 삼사의 직이 왕족에게도 검교직(檢校職)으로 수여되고 있었다.

일반 신하의 경우는 검교직의 실례를 통하여, 그리고 왕족의 경우는 봉작제의 실례를 통하여 삼공이나 삼사의 진급순위를 보면, 사공→사도→태위→태보→태부→태사의 순서였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삼공이나 삼사는 같은 정1품이었으나 삼공보다는 삼사가 상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조(高麗朝)의 왕족봉작제(王族封爵制)」(김기덕, 『한국사연구』52, 1986)
「훈관검교고(勳官檢校考)-그 연원(淵源)에서 기론(起論)하여 선초(鮮初) 정비과정(整備過程)에 미침-」(한우근, 『진단학보』29·30, 1966)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