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해 종군한 승려출신의 병사들로 편성한 10정(十停)의 지원부대이다. 삼국사기 권40 잡지9 직관 하 무관(武官)조에서는 10정을 삼천당이라고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무관조에 10정과는 별도로 삼천당이 당주(幢主)-감(監)-졸(卒)의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또한, 군호 제23은 신삼천당(新三千幢)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신삼천당 이전에 (구)삼천당이라는 부대가 있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10정은 544년(진흥왕 5)에 음리화정·삼량화정·소참정·이화혜정이 설치된 뒤, 신라의 영토확장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증설되었다. 그 결과 665년(문무왕 5)경에는 10개 정이 모두 설치되었다. 10정의 지원부대로 설치된 삼천당은 진평왕대에 설치되기 시작해 10정과 마찬가지로 665년경에 완성되었다. 삼천당은 적어도 9세기 초반까지 존속하였다.
삼천당주는 음리화정·고량부리정·거사물정·삼량화정·소참정·미다부리정·남천정·골내근정·벌력천정·이벌혜정에 각기 6인씩 배치되었다. 그리고 관등은 사지(舍知)에서 사찬(沙飡)까지로 하였다.
삼천감은 삼천당주와 마찬가지로 10정에 6인씩 배치되었는데, 관등은 사지에서 대나마(大奈麻)까지로 하였다. 삼천졸은 10개정에 15명씩 배치되었으며, 관등은 대나마 이하로 하였다.
이처럼 삼천당은 왕경인으로 편성된 특수부대였다. 아울러 삼천당은 자원해 종군한 승려출신으로 편성된 보병부대였던 듯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삼천당을 6세기대에 왕경인 출신 소모병(召募兵)으로 구성된 보병부대로 해석하면서, 문무왕대를 전후한 시기에 10정군단으로 확대 재편성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