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에 왕의 어약(御藥)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관서.
내용
그리고 또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도의 차이는 다소 있을는지 모르나, 종래 신라의 당나라에 대한 태도와 비슷하게 접촉하였다. 그러므로 고려의학은 건국 초기에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신라의학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불교에 수반된 인도의방(印度醫方)의 영향을 불교의 융성과 함께 더욱 받게 되었다.
상약국은 장의서(掌醫署) · 상의국(尙醫局) 또는 봉의서(奉醫署)라고 불렸는데, 건국 초 경종 1년에는 연수원(延壽院)이라고 불렸다.
이 연수원은 상약국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며 문종 때는 정6품의 위치인 봉어(奉御)가 주재하고 시의(侍醫, 종6품) 2인, 직장(直長, 종7품) 2인, 의좌(醫佐, 정9품) 2인이 직접 진료하는 시의의 지휘하에 왕과 왕족의 진료 및 투약에 종사하고, 그밖에 의침사(醫針史) 2인, 약동(藥童) 2인이 배치되어 있다.
의침사는 침술치료, 약동은 왕약의 조제를 담당했었다. 더욱이, 서령사(書令史) 2인과 산사(算士) 2인이 부속되어 있어 그들은 서무 · 회계의 처리를 관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김두종, 탐구당, 197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