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때의 학자, 이득윤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4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시에는 낙동강·덕봉(德峯) 등을 유람하면서 지은 것, 월과(月課)로 지은 것, 종형 이대규(李大圭)·형 이군서(李君瑞)·김극항(金克恒)·박응형(朴應衡)·강경우(康慶遇) 등의 시에 차운한 시 등이 있다. 만사는 스승 정경세(鄭經世)·유진(柳袗)·정영후(鄭榮後) 등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것이다.
서(書)는 조경(趙絅)·조릉(趙稜)·유천지(柳千之)·정봉휘(鄭鳳輝) 등 문신과 향교·향당·서원·사림 등에 보낸 것이다. 향교에 보낸 편지에서는 교임(校任)의 선출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자, 상재(上齋)는 생원·진사로, 도유사는 유학(幼學)으로 임명하자고 제한하였다. 또한 장의(掌議)는 『청금록(靑襟錄)』에 이름이 오른 유생으로 임명할 경우 『청금록』을 시행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니 서재(西齋)에서 뽑자고 주장하였다.
존애원(存愛院)의 유생에게 보낸 편지는 의국(醫局)이 설치된 지 오래되어 환곡(還穀)의 포흠(逋欠)이 많은 현실을 지적하고, 그 대책을 강구하도록 한 내용이다. 그밖에 봉산 함창의 사림에게 보낸 편지는 모두 사우의 건립, 서원의 배향 등의 문제와 관련되는 내용이다.
잡저는 「일가완의(一家完議)」로 선영의 수호에 관한 내용이다. 서(序)는 「청금록서」이다. 본래 향교 교생의 명부인 『청금록』은 평민이면 오를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유독 영남지방만 사족(士族)의 자제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때에 다른 지역과 같이 하자는 논의가 나오자 이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쓴 것이다.
의의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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