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명칭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유지재단 서울위생병원이다. 1908년 9월 24일 미국인 의료선교사 러셀(Riley Russell, 노설) 박사에 의해 평안남도 순안에서 초가 한 채를 40원(미화 20불)에 구입, 순안병원으로 설립되었으며, 그후 1913년 미국 대총회의 후원에 힘입어 건물을 신축하였다. 1931년부터는 뤼(G.H. Rue, 류제한) 박사가 내한하여 서울 소공동에 2층집을 마련하여 진료하였고, 이 해 11월에 인사동으로 이전하여 경성요양의원으로 개원하였다.
1933년에 휘경동 일대 1만2천 평의 병원 부지를 마련하였고, 1936년에 40병상 규모의 경성요양원으로 개원되었으며, 부속 간호학교의 확장과 국내 최초로 결핵요양병동을 건립하였다. 류제한 박사가 서울병원과 순안병원을 왕래하며 병원일을 돌보았으며 1941년 일제의 탄압으로 류제한 박사가 미국으로 추방되어 병원사업이 중단되었다가 8·15광복과 더불어 병원사업도 부활, 류제한 박사가 병원장으로 재취임하였다.
1947년 5월 병원이름을 서울위생병원으로 개명하였다. 간호원 양성기관인 부속간호학교가 1947년에 다시 개교되었고, 인턴제도를 채택함으로써 수련병원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1948년 류제한 박사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주치의로 위촉되었으며 재한외국인 건강관리병원으로 지정되었다.
1951년 3월 15일 임시 수도 부산에서 피난환자를 돌보기 시작, 1952년 미국 국제연합한국재건설기구(UNKRA)와 국내 여러 교회의 도움으로 35병상 규모의 병원이 새로 설립되었는데, 이것이 오늘의 부산위생병원이다. 병원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약 85년 동안 무료진료를 실시하였으며 통계상 1951년부터 1997년까지 16만 3천여 명이 무료진료 혜택을 받았다.
이 밖에 서울위생병원과 부산위생병원을 통하여 가난한 환자들에게 치료비 할인 혜택을 받은 환자의 수는 외래와 입원을 합하여 수십만 명에 달한다. 1958년부터 1966년까지 보건간호원을 중소도시에 파견, 국민보건위생계몽 및 예방주사 실시, 임산부 조산 등을 도와주었다.
전국 순회 무료진료팀을 파견하여 봉사하였는데 1960년대에는 미국으로부터 수륙양용기천사호를 기증받아 무의촌도서 진료에 앞장섰다. 새 병원은 1968년에 시공되어 8년만인 1976년도에 250병상 규모로 개원하였으며, 그 후 1984년에 증축 기공하여 1985년에 50,000여 평의 대지에 연건평 7,336평인 건물을 완공, 406병상이 되었다.
이 병원의 설립목적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그의 체험을 전파하면서 절제생활을 통한 질병예방과 의료를 하는 데 있었다. 특히 건강식생활과 자연요법을 중요시 하고 있으며, 금주금연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1972년에 개설된 5일 금연학교는 국내에서 유일한 금연학교였다. 근래에는 금연강사양성프로그램과 입원하여 치료하는 생활금연프로그램을 개설, 운영하였다.
1998년 말 당시 약 5만 평되는 이 캠퍼스 안에는 서울위생병원·삼육간호전문대학·삼육기술원 등의 기관이 있었으며, 서울위생병원은 인턴·레지던트의 종합 수련병원으로서 허가병상수는 406개였으며, 진료과목은 19개 과였다. 심장센터·종합건강진단센터·인공신장센터·건강증진센터·응급센터·비자신체검사실(미국·중국·캐나다) 등의 전문진료센터를 두었다.
2009년 1월 서울위생병원이 삼육서울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14년 현재 29개 진료과, 426개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