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이씨 관련 사당터. 사묘.
개설
역사적 변천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사당인 육상궁(毓祥宮)으로 신주(神主)를 옮긴 해인 1870년(고종 7)에 폐지되었다가, 1896년에 다시 짓고 신주를 원래대로 옮겨 모셨다. 1906년에는 다시 신주를 육상궁으로 옮기고 나서 사묘를 폐지하였다. 그 뒤에 건물만이 온전하게 보존되고 주위 환경은 거의 변하였다. 이 터는 서울선희학교에서 개칭된 현재 서울농학교의 일부에 포함되어 있다.
내용
기둥 사이에는 3면에 벽을 쌓고 앞면은 개방하였는데, 양측면은 바닥에서 박공(朴工: 경사 지붕 옆면에 붙인 널) 부분까지 벽돌로 쌓아올려 만들고, 뒷면은 바닥부터 벽의 중간까지만 벽돌로 쌓고 그 위에 ‘정(井)’자살 창을 칸마다 내었다.
박공 부분에는 용마루로부터 널빤지를 내려서 제사를 지내는 건축으로서 장엄한 인상을 풍기도록 고려하였다. 단청과 기와는 1975년에 보수하면서 새롭게 한 것이다.
참고문헌
- 『서울문화재대관』(서울특별시, 1987)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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