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호남어사, 자인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낙애(洛厓)
  • 천상(天祥)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1737년(영조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남어사|자인현감
  • 출생 연도1674년(현종 1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여우 (전 동국대학교, 법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성기인의 낙애일고 중 권수면 미디어 정보

성기인의 낙애일고 중 권수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호남어사, 자인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천상(天祥), 호는 낙애(洛厓). 헌납(獻納) 성이성(成以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석하(成錫夏)이고, 아버지는 증 예조참판 성세황(成世璜)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증 이조참판 박경휘(朴景輝)의 딸이다. 권하당(權荷塘)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5년(숙종 31)에 과거에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제수받았다. 그 뒤 저작(著)·박사作(博士)를 거쳐, 호남어사·자인현감을 역임하였다. 자인현감에 재임시에는 제방을 쌓거나 저수지를 만드는 등 관개시설을 완비하고, 학교를 보수하여 지방교육을 진작시키는 등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1725년(영조 1)에 관서어사, 1729년에 만경현령으로 있을 때에도 인정으로 송덕비가 세워졌다. 당시의 고질적인 당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당쟁타파의 방안으로 탕평책을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청백리로도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는 『낙애일고(洛厓逸稿)』가 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낙애일고(洛厓逸稿)』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