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삼평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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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었던 고려시대 압출양각화문청자편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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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었던 고려시대 압출양각화문청자편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
내용

구리∼판교간 수도권순환고속도로공사에 의해 현상변경이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조사는 1988년 6∼7월에 걸쳐 충북대학교박물관의 주관 하에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실시하였다.

순환고속도로공사 예정지역에 대한 지표조사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된 이 유적은 지표조사 때 채집된 약간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를 근거로 당초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의 유구는 물론 토기편 등의 유물도 전혀 발견할 수 없었고, 다만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석곽묘(石槨墓) 1기와 조선시대의 회곽묘(灰槨墓) 1기가 확인, 조사되었다.

고려시대의 석곽묘는 당시 잣나무가 밀집된 표고 약 65m 가량의 낮은 구릉 정상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돌을 깐 봉분[葺石封土]의 규모는 8m×6m의 타원형 평면에 높이가 0.8∼1m 가량 되었다.

봉토의 맨 윗부분에 한 두 겹 가량 냇돌을 깐 즙석분(葺石墳)들은 현재까지는 주로 한강유역의 백제고분 등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주목되었다. 그러나 매장주체부인 석곽을 조사해 본 결과, 백제시대의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압출양각화문청자편(押出陽刻花文靑磁片) 및 회색경질토기편이 출토됨으로써 11세기 전반 무렵 고려시대의 고분임을 알게 되었다.

석곽의 크기는 길이 2.3m, 너비 약 0.8m, 높이 약 0.8m이고 장축방향은 남동-북서였다. 석곽의 축조기법은 냇돌과 산돌을 섞어 짧은 변이 앞을 향하게 쌓았다(橫平積). 쌓은 단의 횟수는 적은 곳은 5단, 많은 곳은 8단 정도이다.

봉토를 쌓은 방법을 보면, 당초 거의 지표면에 얕은 구덩이를 파고 석곽의 벽석을 한두 겹 쌓은 후 석곽의 벽석을 쌓으면서 동시에 봉토를 다져올라오다가 맨 윗부분에 냇돌을 한 두 겹 깔아서 마감하였다. 석곽의 바닥에는 납작한 냇돌을 깔았다. 목재편이나 관못 등의 관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아 시신을 그대로 묻은[直葬法] 것으로 추정되나, 발굴조사 전 이미 완전히 도굴되어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었다.

참고문헌

「성남삼평동유적발굴조사보고(城南三坪洞遺蹟發掘調査報告)」(임효재·박순발, 『판교(板橋)∼구리(九里)·신갈(新葛)∼반월간고속도로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서(半月間高速道路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 충북대학교박물관,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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