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우리나라에는 7세기 후반기에 곧바로 유입되어 유식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내용은 먼저 아(我)와 법(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체의 세계 및 인간의 현상은 ‘요별경식(了別境識)’으로 총칭되는 눈·귀·코·혀·몸·뜻의 육종식(六種識), 우리의 의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으나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사량식(思量識) 및 이숙식(異熟識)과의 관련 밑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먼저 설명하였다.
다음에 아와 법에 대한 외도(外道)와 소승(小乘)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제8식과 제7식의 기능 및 구조, 제6식과 인간심리와의 관계, 제6식·제7식·제8식의 상호관계 등을 설명한 다음, 그 귀결로서 ‘일체는 유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식에 있어서의 실천론을 전개하여, 어떠한 방법에 의하여 유식이론이 행동으로 자각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승들은 이 책을 깊이 연구하여 많은 주석서를 남겼다. 신라의 원측(圓測)은 중국 서명사(西明寺)에서 『유식론소(唯識論疏)』를 지어서 중국 규기(窺基)의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를 반박하였고, 『이십유식론소(二十唯識論疏)』·『성유식론별장(成唯識論別章)』·『성유식론광초(成唯識論光抄)』 등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태현(太賢)은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 8권을 지어 남이 해석하지 못한 깊은 뜻을 발명하였고, 태현의 제자인 도증(道證)은 『성유식론강요(成唯識論綱要)』를 지었다.
고려 초기의 고승인 혜덕왕사(慧德王師)는 금산사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건립하고, 『유식술기(唯識述記)』를 비롯한 유식관계 문헌 33부 353권을 교정하여 간행하였다. 그러나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이 책에 관한 직접적인 주석서가 저술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