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사상 ()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7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7
불교
개념
외계의 인식대상을 부정하고 오직 마음만이 실재한다는 불교의 사상과 이론.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유식사상이란 외계의 인식대상을 부정하고 오직 마음만이 실재한다는 불교의 사상과 이론이다. 인도불교 양대 대승학파의 하나인 유가행 유식학파를 대표하는 사상으로서 일종의 관념론적 사상이다. 유식사상은 유가행파의 다른 사상인 삼성설 및 알라야식설과 결합하여 유가행파의 사상 전체를 완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유식사상은 유가행파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간주되고 학파명 또한 유식학파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목차
정의
외계의 인식대상을 부정하고 오직 마음만이 실재한다는 불교의 사상과 이론.
내용

개설

유식사상이란 인도불교 양대 대승불교학파의 하나인 유가행 유식학파를 대표하는 사상으로서, 외계의 인식대상을 부정하고 오직 마음만이 실재한다는 일종의 관념론적 사상이다. 유식사상은 주1의 다른 사상인 삼성설 및 주2설과 결합하여 유가행파의 사상 전체를 완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유식사상은 유가행파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간주되고 학파명 또한 유식학파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본문

유식사상이라는 용어에는 광의와 협의의 두 의미가 있다. 협의로는 외계의 인식대상을 부정하고 오직 마음만이 실재한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유가행파를 대표하는 사상으로서, 이 학파가 유식학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가행파의 사상에는 유식사상 외에도 알라야식설[ālayavijñāna 識說]과 삼성설(三性說) 등 유식설과는 기원을 달리하는 여러 사상이 있고, 이들 사상이 유식설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체계화되면서 유가행파 사상을 형성하였다. 이를 광의의 유식사상이라고도 한다.

유식사상의 사상가와 문헌

광의의 유식사상의 창시자는 미륵[彌勒, Maitreya]과 무착[無著, Asaṅga, CE. 330405] 및 세친[世親, Vasubandhu, CE. 350430][^3] 형제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미륵이 역사적 인물인가는 논란이 있다. 전통적으로는 유가행파의 창시자로서 미륵논사는 도솔천에 머무는 미륵보살과 동일시 되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유식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전적인 『유가사지론』이 미륵이 설한 문헌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의 근거가 되었다.

현대 학자들은 미륵신앙이 왕성했던 북인도에서 활약한 무착이 신앙의 대상인 미륵보살을 자신의 스승으로 받들어 자신이 편집하거나 찬술한 문헌에 미륵을 저자로 이름붙였다고 해석한다. 이것은 중국과 티베트 전통의 다양한 문헌에서, 무착이 선정에 들어 신통력으로 도솔천에 올라 미륵의 가르침을 받고 기록하였다는 기술이 있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미륵을 무착이 선정 중에 경험한 신비 체험의 내용으로서 간주할 뿐 역사적 실재성을 인정하지는 않는 해석이다.

이에 비해 미륵을 역사적 인물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일본의 우이 하쿠주는 미륵은 종교적 인물인 미륵보살과 동명이인으로서 실존했던 인물이며, 그가 바로 무착의 스승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우이는 미륵의 생존 연대를 CE. 270~350이라고 추정하였다. 미륵의 실재성 여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대체로 미륵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첫 번째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

미륵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유식사상의 창시자 및 대성자는 무착과 세친 형제로 귀결된다. 주4가 전하는 전기에 따르면, 무착과 세친은 푸루샤푸라 곧 현재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카우시카라는 주5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인 무착은 설일체유부 혹은 화지부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주6의 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승으로 전향하였다. 출가 후 주7주8을 닦았지만, 그에 만족하지 못한 무착이 신통력으로 도솔천에 올라 미륵보살에게 대승의 공관을 배웠다. 무착이 자주 신통력으로 도솔천에 올라 미륵보살의 법을 듣고 지상에 내려와 들은 법을 전했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이에 무착은 미륵보살이 지상에 내려와 설법해 줄 것을 청했고, 이들 받아들인 미륵보살이 지상에 내려와 설한 것이 『유가사지론』이다.

티베트 전승에 따르면 『유가사지론』은 무착의 저술로 간주되고, 이 외에는 주9과 『대승아비달마집론』이 무착의 저술로 추가된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유가사지론』은 미륵의 설로 간주되었으므로 무착의 저술 목록에서는 빠지고 『섭대승론』과 『대승아비달마집론』에 『현양성교론송』, 『순중론』, 『금강반야경론』을 무착의 저술로 간주한다. 무착의 주저는 『섭대승론』으로서, 이 논서는 산발적으로 전해지던 유식사상의 여러 갈래들을 하나의 조직적 · 체계적인 교리로 정리해 유식사상의 토대를 닦은 문헌으로 평가된다. 무착은 동생인 세친을 대승으로 전향시켜 유식사상을 대성하게 하였다.

세친은 무착의 친동생으로서 형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설일체유부로 출가하였다. 세친은 뛰어난 학문적 재능으로 설일체유부의 교리를 정리한 주10을 저술하였다. 처음 『구사론』의 게송을 저술하였을 때는 카쉬미르 설일체유부의 교리를 훌륭히 정리한 논서로 칭찬받았지만, 주석을 짓자 주11의 입장에 경도되었다는 이유로 추방되었다. 세친은 처음에는 대승을 비방하였지만, 형인 무착의 권유로 대승으로 전향한 후, 대승 유식사상을 완성하게 된다. 현대 학자들은 세친이 대승으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구사론』 이후 『석궤론』, 『성업론』, 『연기경석』, 『유식이십론』, 『유식삼십송』을 지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티베트 전승에서는 여기에 더해 『대승장엄경송』과 『변중변론송』에 주석을 지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십지경』, 『법화경』 등을 비롯한 수많은 대승 경론에 대한 주석도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승 경전의 주석자인 세친과 대승 경론의 주석자 세친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한 프라우발너에 의해 세친 2인설이 주장되는 등 세친 저작의 귀속성 문제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최근에는 『십지경론』 등에 나타나는 사상이 『구사론』의 저자인 세친과 유사하다는 것을 근거로 『구사론』의 저자인 세친과 대승 경론을 주석한 세친이 동일 인물이라는 전통적인 견해가 다시 제기되기도 하였다.

유식이라는 말의 의미

유식[唯識, Vijñaptimātra]이라는 용어 중 [識, vijñapti]이란 ‘인식하다’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 동사 어근 ‘vi-Jñā’의 사역형인 ‘vijñapayati’에 추상명사 어미 ‘-ti’를 붙여서 형성된 단어로서, ‘알게 하는 것’, ‘표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용어는 북전 설일체유부 계통의 아비달마 논서에서는 ‘대상을 전체적으로 알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대표적인 아비달마 논서인 『구사론』은 식온을 정의하면서 ‘식온이란 대상을 개별적으로 알게 하고[各各了別 彼彼境界], 대상의 특징을 전체적으로 취하는 것[總取境相]’이라고 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식온이란 인식 대상을 그것의 특수성에 대한 어떤 강조도 없이 다만 그것의 존재에 대해 지각만 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대상의 개별적 특징은 주12의 인식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식사상은 식에 대한 아비달마의 정의와 동일한 구절에 대해, 해석만 달리함으로써 이를 유식사상으로 발전시킨다. 곧 “식은 인식대상을 [그것의 특수성에 대한 어떤 강조도 없이] 다만 알게 해 주는 것으로 특징 지워진다.”[識所緣唯識所現]는 아비달마적 의미의 구절을 “식은 [그것의] 인식대상이 다만 인식[이라는 사실]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識所緣唯識所現]는 의미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유식사상의 도입과 그 의도

명시적으로 유식사상을 최초로 천명하는 경전은 『해심밀경』 「분별유가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미륵보살은 선정에 든 수행자의 명상 대상이 되는 영상(影像)이 마음과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해 붓다는 그 영상은 오직 식(識)이기 때문에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대답한다. 이어서 붓다는 자신이 이미 이전에 설한 내용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식은 [그것의] 인식대상이 다만 인식[이라는 사실]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識所緣唯識所現]는 구절을 설한다. 이러한 경전 구절은 유식이라는 용어가, 삼매에 들어있는 수행자가 삼매 안에서 관찰의 대상을 정신적으로 산출하여 그것을 관찰한다는 맥락, 곧 선정 수행의 맥락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이 구절이 인용의 형식으로 설해져 있다는 점은 이러한 사상이 『해심밀경』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마음이 산출한 마음 안의 대상이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언명 자체는, 엄밀하게는, 외계 대상의 실재를 부정하는 사상일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마음 내부의 대상과 관련한 언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외계의 대상까지도 마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문제 삼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경전은 마음 내부의 영상과 마찬가지로 마음 바깥의 외계 대상도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천명한다. 이 장면에서 비로소 외계 대상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유식사상이 성립한다. 따라서 유식사상은 선정이 마음 내부의 영상을 인식대상으로 하여 관찰이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 전체로 확장시켜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전의 문구상으로는 이러한 확장된 적용의 의도나 이유가 설명되지 않고 다만 선언될 뿐이다. 따라서 선언의 의도나 목적은 추측의 영역에 머문다. 다만 이 선언의 맥락으로 볼 때, 유식사상이 이론적인 탐구의 결과라기보다는 선정 체험의 일반화 나아가 선정 체험의 촉진을 위한 배경 사상으로 도입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외계의 대상조차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붓다의 교설로 확신할 때, 그렇지 않을 때보다, 관찰의 대상이 되는 심적 대상을 내부적으로 산출하는 과정이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식사상의 기원과 배경

전통적으로 유식사상은 『화엄경』 「십지품」 제6 현전지의 ‘삼계유심(三界唯心)’ 구절을 그 기원으로 한다고 인정되어 왔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유가행파의 대성자 무착이 그의 주저 『섭대승론』에서 『화엄경』의 삼계유심구와 『해심밀경』의 유식선언문을 나란히 인용하면서 유식설의 경증으로 삼고 있고, 이를 이어 세친 또한 그의 주13에서 『화엄경』의 삼계유심구를 인용하면서 ‘유심(唯心)’ 개념을 유식 개념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적 시각에는 반론도 존재한다. 이 반론은 일찍이 유가행파를 비판한 중관학파의 청변[淸辨, Bhāviveka, C.E. 500~570]으로부터 제기되었다. 그는 『화엄경』 「십지품」 제6 현전지에서 삼계유심구의 ‘유(唯)’가 배제하는 것은 외계 대상이 아니라 ‘자아’라고 반론한다. 곧, ‘유’가 배제하는 것이 외계 대상이라고 해석하는 유가행파와는 달리, 12연기의 전 과정을 일으키는 행위자나,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하는 경험자를 배제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론은 『화엄경』 원문의 본래 맥락에 충실한 해석이다. 삼계유심구가 나타나는 『화엄경』의 본문 자체가 삼계유심구를 설하기 직전에 업을 짓는 행위자와 업의 과보를 경험하는 경험자가 없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화엄경』이 아니라 주14의 삼계유심구야말로 유식사상의 선구적 형태라는 이견도 있다. 『반주삼매경』은 삼매 속에서 붓다를 직접 대면하는 명상을 설하는 경전이다. 삼매 속에서 붓다를 수행자를 직접 대면한 수행자는 이 붓다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이어서 그는 이 붓다가 어딘가에서 온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붓다가 있는 곳으로 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후 수행자는 삼계가 유심이라고 결론내리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등장하는 삼계유심구는 선정 수행의 맥락에서 등장하며, 선정 중에 대상을 산출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대상이 마음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심밀경』에서 삼계유심이 선언된 맥락과 동일하다.

유식사상의 증명

『해심밀경』은 외계의 대상도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보편적 유식설을 선언만 할 뿐,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어떤 시도도 보여주지 않는다. 유식사상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유가행파의 아비달마 논서에 나타난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유식사상의 대성자로 알려진 무착의 주저 『섭대승론』에 나타난다. 『섭대승론』은 네 가지 인식의 예를 들어 유식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것은 첫째, 동일한 대상에 대해 각각 달리 인식하는 현상[相違識相智]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강물에 대해, 아귀나 동물, 인간과 천신이 각각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만약 대상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면 이러한 인식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인식대상이 없이도 인식이 발생하는 경우[無所緣識現可得智]이다. 예를 들어 꿈이나 삼매 속 영상의 경우와 같이 대상은 없지만, 인식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노력이 없이도 진리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류의 경우[應離功用無顚倒智]이다. 만약 대상이 실재한다면, 수행과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진실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곧 주15도 가능할 것인데,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보살이 가진 세 가지 뛰어난 인식 능력[三種勝智隨轉妙智]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보살이 스스로 가진 뛰어난 능력으로 대상을 만들어서 인식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하지만, 무착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사례는 본격적인 의미의 논리적 증명이라기 보다는 꿈이나 삼매, 아귀와 천신, 보살의 인식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열거하는데 그치고 있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유식사상의 증명은 세친의 『유식이십론』에서 전개된다. 『유식이십론』은 실재론자의 비판을 소개한 후, 그것을 반박하는 방식으로 유식사상을 증명한다. 세친이 소개하는 실재론자의 비판은 모두 네 가지이다. 첫째, 외계 대상이 없다면, 왜 특정한 대상이 모든 장소에서 인식되지 않고 특정한 장소에서만 인식되는가? 둘째, 왜 모든 시간에 인식되지 않고 특정한 시간에만 인식되는가? 셋째, 왜 한 사람에게만 생기지 않고 다수의 사람에게 동일한 대상이 인식되는가? 넷째,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 어떻게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세친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반박의 경우는 꿈의 예를 들어 반박한다. 꿈과 같이 대상이 없더라도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만 대상이 인식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반박에 대해서는 아귀의 경우를 예로 든다. 곧 아귀의 경우는 인간이 깨끗한 강물로 인식하는 것은 더러운 고름의 강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귀가 가진 공통의 의 결과 때문이라고 한다. 네 번째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 결과를 산출한다는 예로 꿈 속에서의 성교로 인한 사정을 예로 들어, 대상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결과를 산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이상의 논증은 무착의 『섭대승론』의 논증 방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따라서 증명의 논리적 성격은 약하며, 특수한 사례의 제시를 통한 유비적 증명에 머문다.
세친의 독자적인 논증은 위 논증에 이어진다. 세친은 몇몇 특수한 사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수행된 이제까지의 논증 방식과는 달리, 외계 대상의 실재성을 적극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유식사상을 증명하려 한다. 먼저 세친은 외계의 인식대상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외계에 실재하는 대상이 전체로서의 단일한 보편인가 아니면 구성 요소인 특수들의 복합체인가에 따라서 두 가지로 나뉜다. 특수들의 결합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후자는 다시 두 경우로 나뉜다. 곧 크기를 갖지 않는 원자들이 간격을 두고 집합한 것인가 아니면 원자들이 특수한 방식으로 결합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친은 이 모든 경우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대상은 외계에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먼저 전체로서의 보편이 외계에 실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대상이 전체로서 존재한다면, 우리가 한발을 내딛는 순간 대지 전체를 건너가야 할 터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소를 데려 와라”라는 제례의 명령을 수행할 때도 보편으로서 소를 데려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체로서 단일한 보편이 외계 대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크기를 갖지 않는 다수의 원자들이 간격을 두고 집합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극미 하나 하나는 크기를 갖지 않으므로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단순히 극미가 간격을 두고 다수 모여 있다고 해서 인식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극미의 결합도 성립할 수 없다. 만약 크기를 갖지 않는 다수의 원자가 직접 결합한다면, 그 결합체도 역시 크기를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영에 영을 더하더라도 영인 것과 같다. 또한 크기를 갖지 않는 극미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극미의 결합도 성립할 수 없다.
세친의 외계실재론 비판은 이전의 유식설을 논증하는 방식인 비유를 동원한 유비적 방식의 논증에서 벗어나, 철저히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비판 방식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유식사상의 철학적 완성은 세친에 의해 일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유식이십론』에서 세친은 외계 대상의 부정이라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 체계적인 유식사상과 이론의 구축은 다음 단계의 과제로 남았다.

진나의 인식대상 이론

세친의 뒤를 이은 진나[陳那, Dignāga, CE.480~540]는 『인식 대상의 고찰』이라는 저작을 통해 세친의 외계실재론 비판을 계승한데 이어, 유식사상의 입장에서 인식 대상의 조건을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인식 대상은 다음 두 가지를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인식을 발생시키는 원인일 것, 둘째, 인식에 표상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다수의 원자는 첫 번째 조건은 만족시키지만 두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또한 결합된 원자는 두 번째 조건은 만족시키지만 첫 번째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 외계에 실재한다고 간주되는 극미는 인식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어서 진나는 진정한 의미의 인식 대상은 마음 안에서 대상의 형태를 띄고 발생하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 형상은 인식 주체인 식과 필연적 결합관계를 갖고 발생하므로 첫 번째 조건을 만족시킨다. 또한 대상의 형상으로 발생하므로 두 번째 조건 또한 만족시킨다. 진나의 인식 대상 이론은 세친의 외계실재론 비판을 보완하고, 인식 대상의 정의를 명확히 한데 의의가 있다.

유식사상의 발전 – 삼성설 및 알라야식설과 결합

삼성설과의 결합

삼성설과 알라야식설은 유식설과는 기원을 달리하여 독자적으로 형성되었지만, 유가행파 사상의 발전과정에서 유식설과 결합하면서 유기적으로 체계화된다.
삼성설이란 인식과 존재의 양상을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한 것으로서, 개념적으로 구상된 것을 본질로 한다는 의미의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는 의미의 의타기성(依他起性), 완성된 것을 본질로 한다는 의미의 원성실성(圓成實性)을 말한다.

삼성설이 처음 등장하는 『해심밀경』에서 변계소집성은 언어 및 언어의 대상, 의타기성은 연기, 원성실성은 진여로 정의된다. 여기에서 삼성설은 상호간에 밀접한 연관성도 느슨할 뿐 아니라, 유식사상과의 결합도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다. 『해심밀경』은 삼성 간의 상호 관계를 비문증 환자와 수정, 그리고 마술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수정의 경우를 살펴 보면, 만약 투명한 수정 주위에 빨간 색 혹은 파란 색 혹은 노란 색의 물체가 옆에 있다면 수정은 그 물체가 가진 색의 영향을 받아서 빨간 색 등의 색을 띈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럴 경우 사람은 그것을 수정이 아니라 루비 혹은 사파이어 혹은 호박으로 볼 것이다. 하지만 주위에 빨간 색 등이 없다면, 그것은 원래의 투명한 수정으로 보일 것이다. 이때, 루비나 사파이어 혹은 호박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이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변계소집성이다. 경우에 따라 루비나 사파이어 등으로 나타나는 원래의 수정이 의타기성이다.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이 결코 나타나지 않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삼성설이 본격적으로 유식설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것은 미륵 계통의 논서라고 불리는 『중변분별론』이나 주16이 최초이며, 이를 완성한 것이 『섭대승론』이다. 『섭대승론』에서는 삼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곧 변계소집성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 의타기성은 대상을 구성하는 의식의 작용, 원성실성은 후자에서 전자가 결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변계소집성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의미하며, 의타기성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구성하는 마음의 작용[虛妄分別, abhūta-parikalpa]을 가리킨다. 의타기성에 변계소집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대상의 비존재성, 곧 유식성과 동일한 것이다. 이 점에서 원성실성은 다름 아닌 유식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삼성설은 유식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알라야식설과의 결합

삼성설과 마찬가지로 알라야식설 또한 유식설과는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알라야식은 주17 문헌에 나타나는 알라야식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여러 개념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섭대승론』은 이들 몇 가지 선구적 개념을 열거하고 그 개념들이 알라야식의 선구 개념이라고 간주한다. 곧 『증일아함경』에 나타나는 ‘아뢰야[阿賴耶, ālaya]’, 대중부 계통 경전에 나타나는 ‘근본식[根本識, mūla-vijñāna]’, 화지부 계통 경전에 나타나는 ‘궁생사온[窮生死蘊, āsaṃsārika-skandha]’, 상좌부 계통의 경전에 나타나는 ‘유분식[有分識, bhāvāṅga] 등이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들 여러 부파의 경전에서 열거하는 여러 개념이 실제로 알라야식의 선구 개념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식으로서 알라야식을 도입한 학파에서 전통적인 개념과 접합점을 찾아 그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한다.
알라야식의 도입 배경에 대해 전통적인 견해와 많은 현대 학자들의 견해는 윤회의 주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2연기의 세 번째 지분인 식(識支)의 해석과 관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최근에는 알라야식 도입 이후, 그 개념의 유용성 때문에 윤회의 주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활용된 것이라고 보고, 알라야식의 도입 이유와 배경은 다른 곳에서 찾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알라야식이 주18이라는 특수한 선정에 들어가는 마음과 나오는 마음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가교[gab-bridge]’로서 도입되었다는 설이다. 이는 알라야식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나타나는 현존하는 가장 빠른 문헌인 『유가사지론』 「본지분」 '삼마희다지'의 한 문장에 근거한 설이다. 여기서는 멸진정과 죽음의 차이가 논의되고 있으며, 죽음과 유사하게 모든 식이 사라진 선정이라고 정의되는 멸진정에서 어떻게 다시 새로운 식이 발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논서는 손상되지 않는 물질적 감각능력 안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알라야식에서 표층 의식이 발생한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전통적인 6식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존재하고 있는 잠재적인 형태의 알라야식의 도입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알라야식의 원래 의미는 손상되지 않는 감각 능력을 가진 '신체에 부착[ālaya]하고 있는 식[vijñāna]'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명확하듯이 알라야식의 초기 국면은 유식설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신체에 부속하는 식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알라야식의 도입에 관한 최근의 또다른 유력한 학설은 그것이 깊은 선정 상태를 경험하는 신체적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깊은 선정에 들면 수행자는 신체에서 둔중함[麤重]이 상쾌함[輕安]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선정인 4정려 체계에서도 제3정려에서 신체에 속하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문제는 4정려 체계에서는 제2정려 이상에서 전5식이 사라지므로, 신체에 속하는 상쾌함이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주19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전5식 특히 신식이 사라진 깊은 선정 상태에서 신체적 느낌의 경험을 통해 '신체에 내재[ālaya]하는 식[vijñāna]'이라는 의미에서 알라야식의 존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유가사지론』 「본지분」 보다는 성립이 다소 늦은 『유가사지론』 「섭결택분」 첫머리에 나타나는 알라야식 존재 증명인 ‘8논증’과 ‘환멸분’의 기술에 근거하고 있다.
이와 같이 깊은 선정 상태에서 느끼는 신체적 느낌의 감수 주체로서 알라야식이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유식설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은 명확하다. 어떤 선정의 맥락이든 신체의 존재가 여전히 전제가 되고 있으며, 그 신체가 알라야식 내부의 표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어떤 구절도 없기 때문이다.
멸진정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식으로 혹은 깊은 선정에서 신체적 느낌을 느끼는 식으로 도입된 알라야식은 점차 그 적용 범위를 넓히면서 발전해 간다. 먼저 멸진정과 유사한 다른 마음이 없는 상태 곧 무상정(無想定)과 그 무상정의 과보인 무상천(無想天), 깊은 수면 상태, 기절 상태 등 이른바 표면적 의식이 사라진 다섯 가지 무심의 상태에도 적용된다. 또한 탄생의 순간에 존재하는 희미한 의식과 죽음의 순간에 존재하는 희미한 의식도 알라야식이라고 간주된다.

알라야식은 표면적 의식이 사라진 상태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생애의 전 과정에 걸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일생을 거쳐 업과 번뇌의 종자를 축적하는 역할을 하는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개념을 흡수하거나 그것을 대체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무색계에서도 아뢰야식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알라야식은 신체로부터 독립하여 오히려 신체를 대신하여 개체 존재의 근거가 된다. 이에 따라 신체를 대신하여 자아 관념의 객관적 근거가 된다.
알라야식은 일체종자식의 개념을 대체하면서 감관 곧 물질의 종자도 포함하게 된다. 이때, 모든 잡염법이 그것에서 발생하고, 더구나 그것이 마음의 표상에 불과한 것으로 발전했을 때, 비로소 아뢰야식은 ‘모든 잡염법이 결과로서 혹은 원인으로서 부착하는 식, 자아로서 집착되는 식’이라는 의미로 재해석된다. 알라야식이 유식설과 결합하는 계기는 『해심밀경』에서 설해진 아다나식[阿陀那識, ādāna-vijñāna] 개념을 흡수 혹은 통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해심밀경』에서는 아다나식의 인식 대상을 “환경세계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지각 혹은 표상[vijñāpti]”이라고 한다. 이러한 아다나식의 인식대상에 관한 논의를 흡수하여, 알라야식의 대상 또한 “환경 세계에 대한 불명료한 지각 혹은 표상[vijñāpti]”이라고 설명된다. 여기서 “지각 혹은 표상”은 실재론적인 의미와 유식론적인 의미 두 가지 모두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후대에 이 문장은 알라야식과 유식설의 결합을 보여주는 전거로 해석되게 된다.
유식설과 알라야식의 결합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은 미륵 논서에서이다. 미륵 논서에서는, 허망분별[虛妄分別, abhūta-parikalpa] 혹은 연식[緣識, pratyaya-vijñāna] 등이 대상으로 현현[prati-/ābhāsa]한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후대 주석가들은 허망분별과 연식을 알라야식이라고 주석한다.
무착의 『섭대승론』에서는 삼성설과 알라야식을 결합시키면서, 동시에 삼성설을 매개로 알라야식과 유식설 또한 결합시킨다. 곧 의타기성을 단순히 허망분별일 뿐만 아니라, 알라야식을 종자로 가진 허망분별에 포함되는 모든 식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삼성설은 알라야식과 유식설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는 이론적 프레임이기도 하다. 유식설과 알라야식 그리고 삼성설이 완전히 결합하여 거대하고 일관된 관념론적 세계관은 『성유식론』 단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유식사상의 수행론화

유식사상은 주20 체험의 일반화로 도입되었지만, 일단 도입된 이후 다른 사상과 결합하여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그 자체로 명상의 대상이 된다. 유식이라는 사실 자체가 깨달아야 할 진리 차원으로 격상되면서 관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 유식관이라 하며, 크게 입무상방편상과 삼성관 두 가지로 대별된다

입무상방편상

입무상방편상[入無相方便相, asal-lakṣaṇa-praveśa-lakṣaṇa]은 『대승장엄경론』과 『중변분별론』 등 미륵 계통의 논서에 나타나는 유식관의 일종이다. 입무상방편상은 허망분별이 가진 비존재의 특징[無相], 곧 주21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서의 특징을 말한다. 허망분별이란 비존재[虛妄, abhūta]를 상상[分別, parikalpa]하는 의식의 본질적 작용을 가리킨다. 여기서 비존재란 실체적인 의미의 파악 대상[所取]과 파악 주체[能取]를 의미한다. 허망분별에 실체적인 의미의 파악 대상과 파악 주체가 없는 것이 허망분별의 공성 곧 비존재의 특징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허망분별의 공성을 이해하는 것이 입무상방편상이다.
입무상방편상은 2단계로 수행된다. 첫 번째 단계는 유식이라는 지각에 의지하여 대상에 대한 비지각이 발생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대상에 대한 비지각에 의지하여 유식에 대한 비지각이 발생하는 단계이다. 지각의 대상이 없다면 지각의 주체가 있다는 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각은 비지각을 본질로 한다는 것이 인식된다. 지각이 지각으로서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입무상방편상은 허망분별과 공성 개념을 중심으로 대상 뿐 아니라 실체화된 인식 주관도 부정하는 유식관이다. 입무상방편상은 상대적으로 대승적인 사상을 더 강조하는 수행법으로 평가된다.

삼성관

삼성관은 삼성설을 그대로 관법의 대상으로 삼아 수행하는 유식관이다. 『섭대승론』은 이를 차례로 변계소집성에 대한 인식, 의타기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원성실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순서로 유식성에 대한 인식이 심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먼저 수행자는 마음의 언어[意言, manojalpa]가 대상처럼 나타나는 것을 알고, 그것이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삼성설 중 첫 번째인 변계소집성에 대한 인식이다. 이 인식에 의해 수행자는 모든 것이 유식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두 번째 의타기성에 대한 인식이다. 마지막으로 수행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식이라는 인식조차 버리게 된다. 이것은 대상 뿐 아니라 식조차도 없다는 인식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수행자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단계에서 법계를 직접 인식하며, 그 결과 인식 대상과 인식 주관이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곧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발생시킨다. 이것이 세 번째 원성실성에 대한 인식이다.

삼성관은 입무상방편상을 계승하면서도, 최종적으로 무분별지라는 초월적 인식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다. 이는 식의 존재는 인정하는 아비달마적 경향의 유산이라고 평가된다.
『섭대승론』은 이 삼성관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유명한 것은 뱀과 새끼줄, 그리고 삼의 비유이다. 곧 어떤 사람이 어두운 곳을 걸어갈 때, 뱀이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하지만 잘 보니 그것은 뱀이 아니라 새끼줄인 것이다. 앞서 인식했던 뱀이라는 잘못된 인식은 새끼줄이라는 바른 인식에 의해 파괴된다. 하지만 새끼줄이라는 인식 또한 궁극적으로 볼 때 올바른 인식은 아니다. 그것 또한 삼이라는 구성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새끼줄이라는 인식도 파괴된다. 이 비유는 차례로 의타기성의 인식에 의해 뱀으로 비유되지만 실제로는 비존재하는 대상인 변계소집성을 파괴하고, 그 후 원성실성의 인식에 의해 뱀으로 나타나는 의식에 비유되는 의타기성도 파괴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후로 원성실성에 비유되는 삼을 인식하는 것은 궁극적인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는 의미에서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상적 의미의 대상과 인식은 사라졌지만, 지혜의 영역에서 무분별지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유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식사상의 전파와 수용

동아시아에서 유식사상은 5세기 전반에 처음으로 중국에 전래되었다. 남북조 기에 유식 문헌이 중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였지만, 본격적 전파는 보리류지[菩提流支, Bodhiruci, ?~527], 늑나마제[勒那摩提, Ratnamati, ?~508], 불타선다[佛陀扇多, Buddhaśānta, ?539]가 유식 관련 문헌을 번역하면서 시작한다. 보리류지는 『심밀해탈경』을, 늑나마제는 『구경일승보성론』을, 불타선다는 『섭대승론』을 번역하였다. 특히 보리류지와 늑나마제가 함께 번역한 『십지경론』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논서는 『화엄경』 「십지품」에 대한 세친의 주석이라는 사실이 가진 이점으로 인해 많은 학승들의 이목을 끌었다. 북지에서는 『십지경론』을 많은 학승들이 연구하였고 이들을 지론사(地論師)라고 불렸다. 현대 학자들은 이들을 지론종 혹은 지론학파라고 부른다.
지론학파는 독특한 심식론을 발전시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지론학파가 남북으로 갈라지기 전 심식론은 전6식과 알라야식으로 이루어진 7식설이었다. 지론학파 남도파는 알라야식을 진식과 망식으로 구분하거나 진식을 독립시켜 제8식으로 하였다.
6세기 말에는 진제 眞諦, Paramārtha, CE. 499
569)가 진나라 광주에서 세친이 주석한 『섭대승론석』을 번역하였다. 『섭대승론석』은 유식 연구가 일천한 남지에서는 거의 수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북주의 파불을 피해 도망간 학승들의 주목을 받았고, 그들이 수대에 다시 북지에 돌아가 『섭대승론석』을 보급하였다. 이에 따라 지론학파의 학승들이 대거 『섭대승론석』 연구로 옮겨갔다. 이들은 섭론사라고 불렸다. 현대 학자들은 주22 혹은 섭론학파로 칭한다.

섭론학파의 심식설에는 8식설과 9식설이 있다. 8식설은 제8아뢰야식을 진망화합식이자 주23이라고 간주한다. 9식설은 제8아뢰야식을 진망화합식이라고 하고 제9[아마라식(阿摩羅識)을 독립시켰다. 이 아마라식이 여래장으로 간주된다. 9식설은 점차 섭론학파를 대표하는 설이 된다.
지론학파와 섭론학파를 특징짓는 것은 제8 아뢰야식을 진망으로 구분하여 진식을 여래장과 동일시하거나 제9아마라식을 독립시켜 그것을 여래장과 동일시하는 사상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에 유식사상과 여래장사상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전래되었지만, 중국인의 취향에는 여래장사상이 더 친숙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국인은 여래장사상을 먼저 이해하는데 힘쓰고 이를 바탕으로 유식사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동아시아 유식사상의 독자적 전개에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이러한 동아시아적 유식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것은 주24[玄奘, CE. 602~664]이다. 현장은 인도로 가기 전에 중국 각지를 편력하였고, 『섭대승론』도 학습하였다. 그러나 여러 스승의 해석이 달랐고, 특히 9식설이라는 전거 불명의 심식론에 불만을 가졌다. 현장은 스스로 불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에 직접 가서 『유가사지론』을 연구하고자 하였다.
현장은 귀국 후, 『유가사지론』을 비롯한 수많은 유식 논서를 번역하였고, 이로 인해 중국에서의 유식 이해는 비약적으로 발견하였다. 특히 현장이 주25의 요청으로 함께 번역한 『성유식론』은 이후 법상종(法相宗)[^26]의 근본 전적이 되었다. 현장의 귀국과 역경, 그리고 법상종의 성립 이후 지론학파와 섭론학파의 세력은 급속히 축소되어 대부분 법상종으로 흡수되었다. 다른 한편, 지론학파 남도파 등은 화엄종[^27] 등 새로운 동아시아적 불교 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유식사상의 현대적 해석

유식사상은 현대 불교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관념론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관념론이라는 용어 자체가 서양철학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유식사상의 모든 측면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대 학자들은 유식사상을 관념론적 사상의 일종으로 해석한다. 『유식이십론』에서 명백히,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마음 바깥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꿈 속에서와 같이 다만 마음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식사상을 형이상학적 관념론이 아닌 다른 사상 체계로 해석하고자 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이는 특히 유식사상이 가진 난점 중 하나인 다른 사람의 의식의 존재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전통적인 서양 관념론 특히 버클리 류의 주관적 관념론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의식이 객관적으로 존재할 여지는 없으며, 이러한 입장은 필연적으로 유아론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두에서 관념론적 입장을 명확히 하는 『유식이십론』조차도 다른 사람의 의식의 존재 문제에 관해서는, 자기 마음을 아는 자의 인식과 동일하다는 모호한 언명과 함께 오직 붓다의 영역이라는 유보적인 입장도 함께 표명하고 있다. 한편, 『성유식론』은 타인의 존재가 붓다의 설법 행위의 근거가 된다는 이유에서 유아론적 입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와 같은 외계의 물질적 존재는 부정하되, 외계의 정신적 존재는 인정하는 일견 모순적인 입장은 현대 학자들로 하여금 유식사상을 관념론이 아닌 다른 어떤 사상으로 해석하게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유식사상을 관념론적 사상이 아니라는 주장 중 대표적인 것은 현상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현상학의 ‘상호주관성’ 개념의 측면에서, 유식사상이 인식된 그대로의 대상이 외계에 실재한다는 사실만 부정할 뿐, 물자체나 실재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유식사상이 인식 대상이 진제적(眞諦的) 차원에서 외계에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존재론적 집착이 문제가 될 뿐이지, 속제적(俗諦的) 차원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유식사상의 관념론적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유식사상의 이론적 비정합성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성유식론』의 언급에서 명확하듯이, 외계의 실재를 부정하면서도 설법과 교화의 대상이 되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만약 타인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붓다의 교화 활동이라는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종교적 이상이 그 근거를 상실해 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유식사상의 사상가들은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이론적 정합성의 추구를 중도에 포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이러한 현대 학자들의 다양한 논의와 해석은 유식사상 자체가 가진 이론적 비정합성 혹은 불철저함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이론적 비정합성을 단순히 유식사상이 이론적 정합성만 고집하지 않고, 붓다나 보살의 이타행이라는 실천적 측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 것이라거나, 범부들의 일상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이것은 서양의 관념론과 같은 일관된 이론 체계를 요구하는 것은 단지 서양 철학의 관점을 투사한 것일 뿐이라는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摩集論)』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반주삼매경(般珠三昧經)』
『변중변론(辨中邊論)』
『섭대승론(攝大乘論)』
『성유식론(成唯識論)』
『십지경론(十地經論)』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해심밀경(解深密經)』

단행본

윌리엄 월드론, 『불교의 무의식』(안성두 옮김, 운주사, 2022)
가츠라 쇼류 외, 『유식과 유가행』(김성철 옮김, 씨아이알, 2014)
나가오 가진, 『중관과 유식』(김수아 옮김, 동국대학교출판부, 2005)
히라카와 아키라 외, 『유식사상』(이만 옮김, 경서원, 1993)
핫도리 마사아키 외, 『인식과 초월』(이만 옮김, 민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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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MITHAUSEN, Lambert, The Genesis of Yogācāra-Vijñānavāda : Responses and Reflections (Tokyo: 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of The International College for Postgraduate Buddhist Studies, 2014)
BUESCHER, Hartmut, The Inception of Yogācāra-Vijñānavāda (Wein: Verlag der Österreich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2008)
LUSTHAUS, D, Buddhist Phenomenology: A Philosophical Investigation of Yogācāra Buddhism and the Ch’eng wei-shih lun (London: Routledge, 2002)
SCHMITHAUSEN, Lambert, Ālayavijñāna - On the Origin and the Early Development of a Central Concept of Yogācāra Philosophy, Part I, II(Tokyo: 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1987)

논문

정현주, 「유식사상 해석논쟁의 비판적 고찰 I : 현대 유식사상 연구에서 관념론적 해석과 현상학적 해석의 대립을 중심으로」(『불교학연구』 71, 불교학연구회, 2022)
안성두, 「유식(vijñaptimātra)에 대한 관념론적 해석 비판 : 분별과 진여 개념을 중심으로」(『철학사상』 61,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16)
YAMABE, Nobuyoshi, “Ālayavijñāna from a Practical Point of View”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46, 2018)
Birgit Kellner and John Taber, “Studies in Yogācāra-Vijñānavāda idealism I: The interpretation of Vasubandhu’s Viṃśikā” (Asiatische Studien-Études Asiatiques 68 (3), 2014)
YAMABE, Nobuyoshi, "Self and other in the Yogācāra Tradition" (京都: 永田文昌堂, 1998)
주석
주1

인도에서 성하였던 대승 불교의 한 파. 법상종이 이를 계승하였다. 우리말샘

주2

모든 법의 종자를 갈무리하며, 만법 연기의 근본이 되는 마음의 작용. 우리말샘

주3

5세기경의 인도의 승려(320?~400?). 21대 조사(祖師)로, 객관적·비판적·계몽적 학풍을 띠었다. 처음 소승(小乘)에 들어가 대비바사론을 연구하다가, 뒤에 형 무착(無着)을 따라 유가행파로 옮겼다. 저서에 ≪법화경론(法華經論)≫, ≪무량수경론≫,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4

인도의 브라만 출신의 승려(499~569). 4대 한역자(漢譯者)의 한 사람으로 경론(經論)을 한역하였다. 번역한 책에 ≪섭대승론≫,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대승기신론≫, ≪금광명경≫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

‘브라만’의 음역어. 우리말샘

주6

석가모니 입적 뒤 백 년부터 수백 년 사이에 원시 불교가 분열을 거듭하여 20여 개의 교단으로 갈라진 시대의 불교. 독자적인 교의(敎義)를 전개하여 뒤에 유식 사상(唯識思想)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내용은 소승 불교와 같다. 우리말샘

주7

수행을 통한 개인의 해탈을 가르치는 교법. 석가모니가 죽은 지 약 100년 뒤부터 시작하여 수백 년간 지속된 교법으로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이 있다.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열반만을 중시한 나머지, 자유스럽고 생명력이 넘치는 참된 인간성의 구현을 소홀히 하는 데에 반발하여 대승이 일어났다. 우리말샘

주8

삼관(三觀)의 하나. 형상 있는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일 뿐 실제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이치를 관(觀)하는 것이다. 우리말샘

주9

4세기 무렵에 인도의 아상가(Asaga)가 대승 불교를 통일하기 위하여 지은 불서(佛書). 10가지 의리로써 대승(大乘)의 입장을 설명한 유식론적 서적으로 유식의 사상이 완전히 조직되었다. 우리말샘

주10

5세기 무렵 인도의 승려 바수반두가 저술한 불교 경전. 정식 이름은 아비달마구사론이다. 중국 당나라의 현장(玄奘)이 한역하였으며, 소승 불교의 기초적 논부(論部) 가운데 하나로 중시되어 왔다. 30권. 우리말샘

주11

소승 이십부(二十部)의 하나인 상좌부의 한 파. 삼장(三藏) 가운데서 오직 경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까닭에 이렇게 이른다. 우리말샘

주12

마음과 상응(相應)하여서 일어나는 마음의 여러 가지 정신 작용. 우리말샘

주13

세친보살이 지은 책. 외도(外道)와 소승(小乘)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리고 유식의 정의(定義)와 교리를 밝히었다. 우리말샘

주14

반주삼매를 밝힌, 초기 대승 불교의 경전. 중국 후한 때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번역한 삼권본(三卷本) 외에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말샘

주15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남. 본디 열반과 같이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유위(有爲) 해탈, 무위(無爲) 해탈, 성정(性淨) 해탈, 장진(障盡) 해탈 따위로 나누어진다. 우리말샘

주16

고대 인도의 고승 아슈바고샤가 지은 책. 인도 유식(唯識)의 중심 논서(論書)의 하나로 부처의 본생(本生) 및 여러 가지 인연, 비유, 설화 따위의 90종이 실려 있다. 13권. 우리말샘

주17

석가모니 입적 뒤 백 년부터 수백 년 사이에 원시 불교가 분열을 거듭하여 20여 개의 교단으로 갈라진 시대의 불교. 독자적인 교의(敎義)를 전개하여 뒤에 유식 사상(唯識思想)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내용은 소승 불교와 같다. 우리말샘

주18

성자가 모든 심상(心想)을 없애고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면서 닦는 선정(禪定). 우리말샘

주19

신근(身根)에 의해서 바깥의 사물과 접촉하여 분별·인식하는 감각. 우리말샘

주20

망상을 일으키고 미혹하게 하는, 들리고 보이는 모든 것. 우리말샘

주21

‘진여’를 달리 이르는 말. 공(空)의 이치를 체득할 때에 나타나는 실성(實性)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22

섭대승론에 의거하여 성립된 중국 불교의 종파. 법상종이 일어나면서 쇠퇴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때에 원광 법사에 의하여 전해졌다. 우리말샘

주23

미계(迷界)에 있는 진여(眞如). 미계의 사물은 모두 진여에 섭수(攝受)되었으므로 이렇게 일컫고, 진여가 바뀌어 미계의 사물이 된 때에는 그 본성인 여래의 덕이 번뇌 망상에 덮이지 않게 되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또한 미계의 진여는 그 덕이 숨겨져 있을지언정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고 중생이 여래의 본성과 덕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우리말샘

주24

중국 당나라의 승려(602~664). 속성은 진(陳). 중국 법상종 및 구사종의 시조로, 태종의 명에 따라 대반야경(大般若經) 등 많은 불전을 번역하였다. 저서에 견문기 ≪대당 서역기≫ 12권이 전한다. 우리말샘

주25

중국 당나라의 승려(632~682). 현장(玄奘)의 제자가 되어 산스크리트와 불교의 경전과 논(論), 인명학(因明學)을 배우고, 법상종을 만들었다. 저서에 ≪성유식논술기(成唯識論述記)≫, ≪대승법원의림장≫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6

유식론을 근거로 하여 세워진 종파. 우주 만물의 본체보다 현상을 세밀하게 분류하고 분석하는 입장을 취하여 온갖 만유는 오직 식(識)이 변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파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진표가 개창하였다. 우리말샘

주27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여 세운 종파. 수나라와 당나라 때, 중국 불교의 전성시대에 삼론종, 천태종, 율종, 정토종 따위의 여러 종파와 대립하여 통합된 불교로 성립하였다. 셋째 조사(祖師)인 법장(法藏) 곧 현수(賢首) 때에 크게 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신문왕 때에 의상(義湘)이 개종(開宗)하였고, 뒤에 교종(敎宗)이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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