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감각적 기관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앞의 다섯 가지를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여섯번째의 식(識)을 제6 의식이라고 한다.
전5식은 자체로서 판단·유추·비판의 능력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다만 ‘나’라는 주관이 외부의 객관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일 따름이다. 전5식은 제6 의식에 의하여 통괄되며, 자신이 수집한 갖가지의 정보를 이 제6 의식에 보고하는 기능을 가졌다.
제6 의식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존재인데, 그 단계는 다음과 같은 셋으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제6 의식, 둘째가 제7 마나스식(Manas識), 셋째가 제8 아뢰야식이다. 현대심리학에서의 구분방법에 따르면 제6식은 의식의 세계이며, 제7식과 제8식은 무의식의 세계에 비견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근원적인 마음을 아뢰야식이라고 보았다.
아뢰야식이라는 무의식의 바다는 모든 종자(種子)를 갖춘 가능성의 바다이다. ≪성유식론 成唯識論≫에서는 그 가능성을 능장(能藏)·소장(所藏)·집장(執藏)의 셋으로 요약하였다. 능장은 만물을 인식하는 근본원인을 담아 두었다는 뜻이다. 소장은 다른 일곱 가지 식에 의하여 판단된 모든 정보를 훈습(薰習)한다는 뜻이며, 집장은 오래 전부터 상주하기 때문에 제7 마나스식에 의하여 진실한 자아인 양 집착하고 오도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모두가 궁극적 근원으로서의 마음을 가리킨다. 이 마음의 세계를 규명하는 유식종(唯識宗)에서는 불교수행의 과정을 아뢰야식으로부터 비롯되는 세 단계로 설명하였다. 철학적 입장에서 아뢰야식을 가장 잘 분석한 경론으로는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이 있다. 아뢰야식의 자리를 일심(一心)의 진여문(眞如門)으로 보고, 그것이 7식과 6식을 거쳐 전5식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생멸문(生滅門)이라고 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전개된 것이 바로 삼라만상이라고 설명하였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와 ≪별기 別記≫를 통하여 이 아뢰야식의 전변(轉變)과 추이를 철학적으로 논구한 바 있다. 즉 8식은 함장식(含藏識)으로서 선악을 포용하는 거대한 바다와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7식은 에고(ego)의 의식에 의하여 좌우되는 아만(我慢)의 마음이며, 6식은 탐진치(貪瞋痴)로 나타나게 되는 생멸적 작용(生滅的作用)을 거듭한다고 보았다.
이것을 본시양각(本始兩覺)으로 설명하면, 불각(不覺)이 된다. 그러나 불각에서 깨달음을 추구해 들어가는 과정은 시각(始覺)이 된다고 하였다. 즉, 원효의 기본적 입장은 인간을 가능성의 존재로 파악한 것이며, 그 철학적 기반을 이루는 것이 제8 아뢰야식에 대한 그의 논구(論究)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경우, 제8 아뢰야식 다음에 제9 말라식(Mala識)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경우는 위에서 설명한 8식이 9식으로 전용(轉用)되는 경우이다. 신라의 원측(圓測)은 이 제8 아뢰야식에 관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중국사상가들에 의하여 이단시됨으로써 많은 저술들이 인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