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덕사 ()

불교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
유적/건물
건립 시기
통일신라시대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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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봉덕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이다. 성덕왕이 태종무열왕을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 경덕왕이 성덕왕을 위하여 대종을 만들려다 죽자, 아들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선 세종 대에 봉덕사는 수몰되었고, 종도 함께 하천에 버려졌다. 속칭 ‘에밀레종’이라고 부르는 이 종은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봉덕사는 신라 불교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사찰 중 하나였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절.
원건물 건립 경위

봉덕사(奉德寺)는 경주시 북천(北川) 부근에 있었던 이다. 통일신라 성덕왕(聖德王)[재위 702737]이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재위 654661]을 위하여 사찰을 짓고 인왕 도량(仁王 道場)을 개설하였다고 한다.

변천

성덕왕이 죽자 효성왕(孝成王)이 아버지인 성덕왕을 추복하기 위하여 738년(효성왕 2)에 중창하였다. 이후 경덕왕[재위 742~765]이 성덕왕을 위하여 황금 12만 근으로 대종(大鐘)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 아들 혜공왕이 771년(혜공왕 7)에 완성하여 ‘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조선 세종 대에 북천이 범람하여 봉덕사가 수몰되었다. 종은 한동안 하천 초목 속에 버려져 있다가, 1460년(세조 6)에 영묘사(靈妙寺)로 옮겨 달았다.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이 종은 속칭 ‘에밀레종’이라고 하며,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의의 및 평가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황복사(皇福寺) 터에서 ‘[봉]덕태종사[령][[奉]德太宗寺[令]]’가 적힌 비편이 발견되어, 봉덕사가 태종무열왕을 기리던 절이었음을 확인하였다. 봉덕사에는 사찰의 수영(修營) 등을 담당하던 관청인 성전(成典)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로 보아 당시 신라 불교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사찰 중 하나였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권상로, 『한국사찰전서』(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논문

전덕재, 「봉덕사의 위치와 성격」(『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36,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5)
남동신, 「신라의 승정기구와 승정제도」(『한국고대사논총』 9,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2000)
윤선태, 「신라의 사원성전과 금하신」(『한국사연구』 108, 한국사연구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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