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識, vijñāna)이란 대상 하나하나를 식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이 식을 몇 종류로 설정하는가에 따라 6식설 ·8식설 ·9식설로 식설이 나뉜다.
먼저 6식설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채택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식설이다. 이 6식설이란 식이 의지하는 여섯 감각 기관〔6근(根)〕에 따라 식을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6식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이들 6식은 각각 물질(色) · 소리(聲) · 향기(香) · 맛(味) · 감촉(觸) · 법(法)이라는 여섯 가지의 대상〔6경(境)〕을 갖는다.
이때 각 여섯 감각 기관과 여섯 대상은 각 식들의 소의(所依)와 소연(所緣)이 되어 식을 생기하게 한다. 즉, 눈이 물질을 대할 때 보는 안식이 생기하며, 귀가 소리를 대할 때 듣는 이식이 생기한다. 코가 냄새를 대할 때 냄새를 맡는 비식이 생기하고, 혀가 맛을 대할 때 맛을 감지하는 설식이 생기한다. 몸이 감촉을 대할 때는 느끼는 신식이 생기하며, 의가 법을 대할 때는 안다는 의식이 생기한다.
유식 학파는 이 6식에 제7 말나식(末那識, manas)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을 더하여 8식설을 제창하였다. 이 중 말나식은 제6식의 배후에서 활동하는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라는 네 가지 번뇌를 항상 동반한다. 이 말나식은 염오의(染汚意)라고도 불리는데 이 네 가지 번뇌에 의하여 스스로가 더럽혀져 있기 때문이며, 또 이 네 가지 번뇌로 6식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제8 아뢰야식은 일반적으로 장식(藏識)이라고 번역되며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자신이 행한 업의 영향력을 종자의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이 제8 아뢰야식은 이상의 일곱 가지 식의 배후에서 활동하며 이들 식을 발생시키는 근원적인 식이며 생사윤회를 이어나가는 주체로서 기능한다.
이 중 제8 아뢰야식은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세 가지의 상이한 모습으로 해석되었다. 첫째, 아뢰야식을 참되고 영원하고 물들지 않는 진상정식(眞常淨識)으로 파악하여 그것이 여래장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해석이다. 둘째, 아뢰야식을 그릇된 마음이자 망념된 생각인 망식(妄識)으로, 또는 지금 당장에는 해롭지도 이롭지도 않지만 밝게 보지 못하는 까닭에 무엇인가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무기무명수안식(無記無明隨眼識)으로 파악하여, 이 식을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것이라 보는 해석이다. 셋째, 아뢰야식을 참되고 한결같이 동요하지 않는 면과 헛된 망상을 자꾸 일으키는 면이 함께 들어 있는 마음이라고 파악하는 해석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지론종(地論宗)은 아뢰야식을 진식(眞識)으로 해석하는 첫 번째 입장을 취하였고, 섭론종(攝論宗)은 망식으로 해석하는 두 번째 입장을, 그리고 기신론(起信論)은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 해석하는 세 번째 입장을 취하였다.
이중 섭론종의 입장에 따른다면, 이 아뢰야식을 끊어 버릴 때 모든 번뇌는 사라지게 된다. 즉 이 식이야말로 모든 미혹의 근본이 되는, 더러움에 물든 좋지 않은 식이다. 그러나 섭론종의 의도는 사람의 마음이 이처럼 더럽기만 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뢰야식보다 더 차원이 높은 또 하나의 마음자리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제9식인 아마라식(阿摩羅識)이다. 이 아마라식은 무구식(無垢識) · 백정식(白淨識) 등으로 번역되며, 영원하고 한결같고 그릇됨이 없는 진여(眞如)로 인식되었다. 섭론종은 이 제9식을 유식 학파의 8식설에 더하여 9식설을 제창하였다.
신라의 원효는 8식설 또는 9식설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같은 것임을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밝히는 한편, 아뢰야식과 무명(無明)과의 관계 아래에서 전개되는 다섯 가지 식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 다섯 가지 식이란, ①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활동이 시작되는 업식(業識), ② 주관이 형성되는 전식(轉識), ③ 능히 객관 세계를 나타내는 현식(現識), ④ 그 나타난 대상 세계를 적극적으로 나의 것으로 삼는 지식(智識), ⑤ 나의 것으로 삼은 대상 세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일으키는 상속식(相續識) 등이다. 이 다섯 가지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흘러가서 번뇌에 결박을 당하게 되는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① 업식은 무명의 충동력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마음이 동한 최초의 기동(起動)으로서, 그것을 바로 업(業)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② 전식은 앞의 업식이 동함으로 말미암아 능동적으로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 의식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③ 현식은 앞의 전식이 보는 바를 바탕으로 하여 무엇이 재현되는 작용을 말한다. 즉 마음의 거울에 색상이 나타나는 바와 같은 것으로서, 어느 때나 부단히 임의대로 생겨나서 항상 우리 앞에 경계(境界)를 나타내는 식이다. 이 세 가지 식을 원효는 제8 아뢰야식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④ 지식은 더럽고 깨끗하며 사랑스럽고 미운 것을 구별하고, ‘나’ 또는 ‘내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원효는 이것을 제7 말나식으로 보고 있다. 이기주의에 근거한 모든 사물의 판단은 이 지식에 해당된다. ⑤ 상속식은 어떤 객관적인 사물 또는 개념에 대한 집착이 항상 속에 깃들어서 오래 지속되는 것을 뜻한다. 원효는 이 식이 사량으로 말미암은 애취번뇌(愛取煩惱)를 일으키는 까닭에 오랜 과거에 저지른 모든 어리석은 행위의 결과들을 현재까지 계속 유지하게 하며, 또 이 식은 능히 하나의 번뇌가 또 다른 번뇌를 더 조장하고 번식시키는 윤생번뇌(潤生煩惱)를 일으켜서 과거의 업에 대한 과보를 어김없이 받게끔 하는 식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식에 의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과응보가 끊기지 않게 되고, 이 식으로 인하여 홀연히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게 되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현재를 위한 불필요한 배려까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효는 이 식을 제6 의식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식에 대한 규명은 궁극적으로 이 중생의 세계가 곧 마음의 작용인 여러 가지 식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밝히고, 그 식의 올바른 통제야말로 이 세상을 보다 윤택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됨을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원효는 이와 같은 인간의 의식 작용에 대한 결론으로서, “ 삼계(三界)는 허위요 마음이 지은 바일 뿐이며, 마음을 떠나서는 허망한 세계도 없다. (…) 마음이 일어나면 가지가지 경계가 생겨나고, 마음이 멸하면 가지가지 경계도 사라지게 된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