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 ()

목차
불교
개념
불교에서 소승불교에 대비해 보살사상을 강조하는 불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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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불교에서 소승불교에 대비해 보살사상을 강조하는 불교운동.
내용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하는 범어 마하야나(Mahāyāna)의 한역어로 소승(小乘), 즉 히나야나(H○nayāna)에 맞서는 말이다.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승교도들은 스스로를 대승이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부파 불교교단들을 가리켜 소승이라고 낮추어 불렀는데 ‘대승’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불교교단은 장원을 중심으로 정착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일정한 지역에 스투파(Stupa, 塔)가 건립되고 수행자가 거처하는 장소에 정사(精舍:수도하는 곳)를 세우는 등 교단은 안정된 기반 위에서 각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전국적 유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경제적 기반은 신자들이나 지역의 장자들이 시주한 토지였음이 확실하다. 교단의 경제적 안정은 불교교리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 이를 ‘아비달마’라고 한다.

아비달마란 말은 범어 아비다르마(abhidharma)의 음사(音寫)로서 문자 그대로 ‘법(法, dharma)에 대한(abhi)’ 연구를 뜻한다. 그것은 법의 이론적 분석과 종합으로서 여기서 수립된 교리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또한 치밀한 것이었다.

아비달마 교학의 사상적 특징은 인간의 내면세계와 객관세계를 분석하여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려고 한 데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문제에 이르면 각 부파에 따라 다시 입장이 달라진다. 삼세실유(三世實有:과거, 현재, 미래에 항상 있음)니 법체항유(法體恒有:진리의 몸은 영원함)니 하는 주장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본래 법이라는 것은 종교적 체험 속에서 자각되고 행위를 통하여 실천되어야 한다. 그 법을 외부적인 관점에서 대상화하고 논리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청정한 ‘생명력’을 생활 속에서 기르려는 불교 본연의 실천적 성격과 어긋나는 것이다.

법의 연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연구의 진전이 곧 불교 본래의 종교성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 출가수행자의 재가 신자에 대한 교화도 형식적인 설교로 전락하여 비구와 재가신자의 관계는 공덕을 쌓게 하는 매체로서의 기계적인 기능만이 정착되었다.

교학의 연구는 진전되었지만 그것은 일상생활 속의 재가신자와는 동떨어진 깊숙한 승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부 엘리트들의 사변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교단은 외형과 내면이 모두 세속화의 흐름과 타락의 기풍을 낳고 있었다.

이처럼 부파불교는 지나치게 번삽한 이론 전개를 일삼아 불교를 일부 출가자들만의 전유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출가수행자들이 중생을 향한 이타행보다는 그들의 수행 목표인 아라한과를 얻기 위한 자리 추구에만 몰두하는 폐단도 낳았다.

이러한 교단 상황에 대한 반발과 종교적 반성으로 일어난 것이 바로 대승불교 운동이다. 그와 같은 움직임은 대체로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하여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비달마 불교의 모든 모순을 극복하고 불교의 이론적인 측면과 실천적인 측면을 동시에 정비하고자 했던 움직임이 곧 대승불교운동이다.

당시 대승이 당면한 시대적 과제는 우선 대상의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아집과 법집을 낳게 했던 유부(有部:아비달마 불교)의 법체항유설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자리행만을 고집하여 점차 대중의 지지를 상실해 가고 있던 아라한 중심의 불교를 더욱 대승적인 수행 목표인 보살 중심의 불교로 전환하여 불교에 생기를 불어 넣는 일이었다.

중관(中觀)과 유식설(唯識說)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대두된 대승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관사상은 아비달마 교학의 실유(實有)사상을 타파하고 공관(空觀)에 입각한 중도의 진리를 제시했고, 유식사상은 불교의 초보적 심리설을 더욱 고차원적인 수준의 대승적 심리학으로 발전시켰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사상은 대승불교의 이론적 토대이자 그 후 중국불교의 발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대승불교의 이해를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중관사상(mādhyamika)은 불멸 후 600-700년경 남인도 사람 용수(Nāgārjuna)가 확립시킨 이론이다. 그는 제2의 석가모니 또는 팔종(八宗)의 조사라는 찬사를 받고 있을 정도로 불교사상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흔히 인간들은 존재의 고정적 실체성을 믿는 경향을 띤다. 그 결과 대상의 영원불변성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은 곧 여러 가지 번뇌망상을 낳는 원인이 된다.

용수에 따르면 이와 같은 존재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대상에 대한 어떠한 마음의 집착도 초월한 경지, 그것이 바로 무상정득각의 세계라고 한다.

그 세계는 생(生)과 멸(滅), 상(常)과 단(斷), 일(一)과 이(異), 거(去)와 래(來) 등 여덟 종류의 극단을 부정한 중도의 세계이다.

용수의 중관사상은 바로 이 팔부중도관(八不中道觀)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입장은 일체제법의 무자성(無自性:영원한 자성이 없음)을 강조하는 반야공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유식사상(vijñanavādin)은 소승불교의 교학적 약점을 보완하고, 용수의 반야공사상이 지나치게 허무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게 된 데 대한 반발로 나타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의 기초자들로서는 미륵(Maitreya,彌勒), 무착(Asa○ga,無着) 그리고 세친(Vasubandhu,世親) 등을 들 수 있다.

유식(vijñaptimātratā)이란 말은 인간을 중심으로 볼 때 정신과 물질 등 내외의 모든 존재들은 오직 심식(心識)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며 이 심식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정신과 객관세계의 관계에서 정신을 능동자, 객관세계를 수동자로 보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신의 소유자는 만법의 주인이며 선악제법은 오직 이 정신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유식에서 말하는 식은 일반적으로 아뢰야식(ālaya-vijñāna)을 가리키지만, 8종의 식, 즉 안·이·비·설·신·의의 육식과 말나식(manas-vijñāna) 그리고 아뢰야식 모두를 가리키기도 한다.

아비달마 교학까지는 6식을 들고 있으나 유식학파에서는 6식 속에서 이들 식을 일으키는 운동 주체로서의 근원적 식을 상정하고 이를 아뢰야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아뢰야식을 자아라고 집착하는 말나식도 상정하게 되었다.

아뢰야식이 제8식, 말나식이 제7식이 된다. 제7말나식은 제6식의 의지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자체와 제8아뢰야식에 의지하여 활동하는 식이다.

특히 이 식은 아뢰야식을 상대로 끊임없이 사량(思量), 집착하며 아집(我執)과 법집(法執) 등 근본 번뇌를 야기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아치(我痴)와 아견(我見) 그리고 아만(我慢) 및 아애(我愛) 등의 근본 4번뇌를 야기케 하여 제6의식 등 다른 식에게도 많은 지말전뇌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나식은 선과 악의 상대적인 작용을 끊임없이 발생시키고 많은 업력을 조성케 하여 생사윤회하는 고통의 원동력이 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제8아뢰야식은 지금까지 말한 모든 식의 근본식이 되며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이는 아뢰야식이 능장(能藏), 소장(所藏), 집장(執藏) 등 삼장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유식사상에 따르면 모든 식의 행위와 육체적 행위는 선악의 업력이 되어 이 아뢰야식에 보존된다고 한다. 이는 곧 아뢰야식의 능동적 기능을 표현한 것으로 이를 능장(能藏)이라고 불렀다.

동시에 아뢰야식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그 업력을 받아 들여 보존하는 역할을 하므로 소장(所藏)이라고도 한다. 또한 아뢰야식이 집장(執藏)의 뜻도 갖는 것은 제7말나식에 의하여 집착된 망집(妄執)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모든 업력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선악업력을 다른 식에 공급하여 발동케 하므로 모든 선악의 행동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이 식의 작용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셈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과거세의 업력을 보존한 이 식이 먼저 태어날 것이며, 내생으로 떠날 때도 금생의 업력을 보존하고 있다가 육체로부터 맨 마지막에 떠난다. 그것이 육도윤회의 인연을 따라 다시 이 세상에 생명체로 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뢰야식은 현재의 생명체가 내외의 사건과 현실을 일으키게 하는 주체가 되며 동시에 그 업력에 따른 생사윤회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아뢰야연기라고 부른다. 중관과 유식사상 이외에도 대승불교 이론에는 ‘모든 중생들에겐 부처가 될 씨앗이 감추어져 있다.’라고 주장하는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 등이 있다.

인도에서 일어난 대승불교사상은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천태와 화엄 그리고 선 및 정토사상 등으로 발전되어 갔다. 법의 뿌리는 하나이되 그 가지는 점차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던 것이다.

한국불교는 이처럼 중국화된 대승불교를 받아 들여 지난 1600여 년 동안 때로는 영화를 누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질곡을 겪기도 하면서 그 끈질긴 사상의 생명력을 오늘에까지 이어 오고 있다.

대승불교의 종교적 특징은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의 표상인 보살(Bodhisattva) 사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보살정신의 핵심은 자신이 피안(깨달음의 세계)으로 건너 가기 전에 다른 모든 존재들을 먼저 피안으로 건너게 한다는 ‘이타행’에 있다.

소승의 이승(聲聞:○rāvaka과 緣覺:pratyeka-buddha)은 자기 자신만이 차안(此岸:번뇌망상이 있는 생사의 세계)을 버리고 피안에 가려고 노력하며 차안에 남은 사람들의 일을 자기의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없다.

대승이란 자리(自利)냐 아니면 이타(利他)냐 하는 이원적(二元的) 대립의 차원을 넘어 자리와 이타가 함께 공존하는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이타’는 자기를 희생하고 오직 남을 위해 산다는 의미의 이타주의(利他主義)와는 다르다. 거기서는 자리와 이타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된다.

보살은 이승(二乘)처럼 차안을 버리고 피안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차안의 모든 사람을 피안으로 건너게 해준다. 즉, 차안과 피안을 왕래하는 나룻배의 주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차안과 피안을 왕래하는 바탕이 되는 입장이며, 세계 종교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승불교의 고유한 입장이다. ‘생사즉열반’이라는 말은 불이(不二)를 실천하는 보살의 선언이다.

대승불교는 붓다를 초세간적(超世間的) 존재로 보며 역사적 인물로 나타난 붓다는 그 화신(化身)으로 규정한다. 불교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소승불교에서는 아라한(阿羅漢, arhat)이라고 부르는 깨달은 성인이다.

그렇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편협한 이기적 발상이라고 보고, 깨달음에 이르렀으나 다른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成佛)을 뒤로 미루는 보살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보살의 가장 큰 공덕인 자비(慈悲)가 원시불교에서 강조했던 지혜(智慧)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보살을 통해 생기는 공덕은 중생들에게 옮겨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관념이 우리 나라와 중국·일본의 정토교(淨土敎) 같은 타력적(他力的) 신앙을 낳기도 했다.

이처럼 대승불교는 어떤 특정한 인간이 특정한 교리를 설하여 성립시킨 종교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몇 가지 종교 흐름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불교의 대중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서원을 통해 구원을 설하는 흐름도 있고, 또한 참선의 경험으로 공과 반야의 지혜를 설하는 ≪반야경≫ 유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불타에 대한 신앙을 강조하는 가르침도 있다.

이러한 갖가지의 흐름 속에서도 대승불교라는 하나의 통일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은 법의 자각을 중시하는 지혜의 요소와 보살로 불리는 수행자들이 표방한 자비행의 두 요소를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는 입장이 곧 그것이다.

참고문헌

『대승불교 개설』(평천창 외, 정승석 옮김, 김영사, 1986)
『대승불교의 사상』(우에다 요시부미, 박태원 옮김, 민족사, 1989)
『문수보살의 연구』(정병조, 한국불교연구원, 1988)
『불타의 세계』(나까무라 하지매 外, 김지견 역, 김영사, 1990)
집필자
정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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