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물질을 혀에 댈 때 느끼는 복합적인 감각이다. 기본 맛은 단맛·신맛·짠맛·쓴맛이고 여기에 매운맛을 더하기도 한다. 이들 맛들은 상호작용하여 감도를 예민하게 또는 둔하게 한다. 각 민족은 기후 풍토에 맞게 전통적인 맛이 정립되어 기층 기호를 형성해 왔다. 우리나라는 발효맛이 기층 기호가 되어 일상 음식의 조미료 역할을 한다. 맛에 대한 느낌은 개인차가 크며 같은 사람이라도 조건에 따라 다르다. 또 식습관·풍습·편견·정서에 따라 맛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발효맛을 국제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넓은 의미의 맛은 감각적 · 감상적 관념을 표현하는 언어였으나 점차 분화하여 감상적인 정서는 멋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맛은 감각적인 경험 특히 식품의 감각을 표현하는 말로 정착하게 되었다. 식품의 질적 요인에 있어 맛의 구실은 대단히 크다. 그러나 음식의 맛은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것이므로 과학적으로 정확히 분류하기는 매우 곤란하다. 다만 일반적으로 맛이란 어떠한 물질을 입에 넣었을 때에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고(향미, 씹히는 물리적 성질, 점성 등), 입안의 통각 · 촉감 · 온도감수를 자극함으로써 일어나는 감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맛은 혀의 표면에 있는 미뢰(味雷)의 미각신경이 화학적인 자극을 받아서 일어나는 감각인 것이다. 맛의 인식기관인 이들 세포들은 용액으로 존재하는 여러 물질에 의하여 자극되므로 액체식품의 맛을 고체식품의 맛보다 쉽게 느낀다. 맛은 일부는 감각적이고 일부는 주관적인 것이다. 맛에 대한 느낌은 개인차가 크며 같은 사람이라도 조건에 따라 다르다. 또 식습관 · 풍습 · 편견 · 정서 및 생리적 상태에 따라서 맛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맛에 대한 표현방법도 많은 차이가 있어서 같은 음식이라도 나라마다 각각 다르다.
음식물이나 식품의 맛은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된 것이나 몇 가지 기본 맛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식품의 기본 맛은 단맛[甘味(감미)] · 신맛[酸味(산미)] · 짠맛[鹹味(함미)] · 쓴맛[苦味(고미)]의 네 가지로, 이를 4원미라고 한다. 이 네 가지 맛은 각기 특성 있는 맛을 가지며 서로 복합되어 여러 가지 맛을 나타낸다. 동양에서는 이 4원미에 매운맛을 더하여 5미를 기본 맛이라고 한다. 한편, 매운맛이 아닌 감칠맛을 추가하여 5원미를 정의하기도 한다.
① 단맛: 인간의 단맛에 대한 욕구와 집착은 대단히 강하며 또한 일반적이다. 단맛을 내는 물질은 복잡한 유기화합물로 당류와 알콜류, 아민류 등이 있다. 단맛을 내는 물질의 단 정도는 차이가 많아서 설탕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평가한다. 어떠한 감미료는 단 정도가 설탕의 200배나 되는 것도 있다.
② 신맛: 식품의 신맛은 향기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본래의 맛과 아울러 식품의 맛을 좋게 하고 식욕을 증진시키기도 한다. 신맛을 내는 성분에는 유기산(有機酸)과 무기산(無機酸)이 있다. 그 신맛은 용액 중에 해리되어 있는 수소이온과 해리되지 않은 산분자에 기인한다. 따라서 신맛의 정도는 수소이온의 농도에 정비례하지 않으며 같은 농도라 할지라도 유기산이 더 시게 느껴진다. 이들 신맛은 상쾌한 신맛과 특유의 감칠맛을 지닌다.
③ 쓴맛: 쓴맛을 내는 물질은 알칼로이드 · 배당체 등으로 기본 맛 중에서 가장 예민하게 느낀다. 쓴맛은 신맛과 같이 다른 맛과 혼합되어 독특한 풍미를 형성한다. 보통 쓴맛은 불쾌하게 느껴지지만 적당히 희석되면 입맛을 돋우기도 한다.
④ 짠맛: 조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맛이다. 짠맛의 성분은 무기 및 유기의 알칼리염으로 주로 음이온을 띠는 것이다. 순수한 짠맛의 대표적인 것은 소금으로서 그 농도가 1%일 때에 가장 기분 좋은 느낌을 갖는다.
⑤ 매운맛: 매운맛은 순수한 미각이라기보다는 생리적인 통각이라 할 수 있다. 즉 미각신경을 강하게 자극함으로써 느껴지는 기계적 자극현상이다. 혀 · 구강 · 비강 등의 점막 통각이다. 이와 같이 매운맛은 미각을 크게 자극하여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킨다. 매운맛 성분은 대체로 유황을 갖는 화합물로 벤젠핵에 불포화측쇄를 갖는 화합물이다.
⑥ 기타: 네 가지 기본 맛 이외에도 맛을 내는 성분은 여러 가지가 있다. 즉 떫은맛 · 구수한맛[旨味(지미)] · 아린맛 · 교질맛 등이다. 이들은 음식의 복합적인 맛에 크게 영향을 준다. 떫은맛은 수렴성의 맛으로 혀의 점막 단백질을 일시적으로 응고시켜 미각신경이 마비되어 일어나는 감각이다. 주로 탄닌류가 있다.
감칠맛은 4원미와 향기 등이 잘 조화된 맛이다. 여러 가지 정미성분(呈味成分)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복잡하고 미묘한 짠맛이다. 주로 구수한 맛이다. 그 성분은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 비단백성 질소화합물 등이다. 감칠맛 성분이 풍부한 식품으로는 버섯 · 해조류 · 새우 · 조개류 등이 있다. 따라서 이들 식품을 국물에 우려내어 이용하기도 한다. 글루타민소다나 핵산조미료 같이 감칠맛 성분을 추출하고 합성하여 공업적으로 대량생산한 상품을 이용하기도 한다.
아린맛은 쓴맛과 떠은맛이 혼합된 불쾌한 맛이다. 입맛을 나쁘게 한다. 이 맛은 주로 수용성이므로 물에 담가두면 제거된다. 아린맛 성분이 많은 식품으로는 고사리 · 토란 · 가지 · 우엉 등이 있다. 금속맛은 철 · 은 · 주석 등의 금속이온의 맛이다. 교질맛은 식품이 혀의 표면과 입 속의 점막에 물리적으로 접촉될 때 느끼는 감각으로 맛이라기보다는 식품의 질감에 속한다. 묵이나 젤리 같은 식품에서 느낄 수 있다.
냄새나 맛의 감각은 계속적으로 반복적인 자극에 의하여 적응되기 때문에 향신료나 조미료를 합리적으로 배합하면 적당한 맛을 오래 즐길 수 있다. 또 식품의 맛은 온도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각 식품의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다. 즉 어느 식품이나 너무 차거나 뜨거우면 고유한 맛을 느끼기 어렵다.
맛의 영속성은 쓴맛이 가장 길고 단맛이 가장 짧으며, 신맛 · 짠맛은 그 중간이다. 한 가지 맛의 적응은 다른 맛의 인식을 높여주기도 한다. 또한 맛의 상호작용은 감도를 예민하게 또는 둔하게 한다. 흡연이나 알콜섭취, 배고픔 등에 따라 맛에 대한 예민도가 달라진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맛에 대한 예민도가 저하된다. 그러나 신맛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서 더욱 시게 느낀다.
우리나라의 맛은 기본 5미 이외에 발효미(醱酵味)를 더 보태어 논하여야 한다고 할 정도로 발효음식의 맛이 복잡하고 중요하다. 우리 민족이 농경을 시작하였을 때에 첫 번째로 발효미를 개발하였다. 또 남달리 솜씨가 뛰어났던 것이 장담그기와 술빚기 등 발효식품의 제조였다. 그 뒤에 김치 · 젓갈 등의 미생물을 활용한 식품가공의 기법을 개발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맛은 단순한 재료의 맛 이외에 발효와 분해의 과정에서 생긴 다양한 맛이 조화된 독특하고 구수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음식의 맛 특성은 단순조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양념이 조화 있게 조합된 조화예술인 것이다. 또 우리 민족의 음식 맛은 각기 고장의 지세와 풍토 등에 따라 간의 농도, 조미의 배합을 독특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향토마다 각기 다른 특성 있는 맛과 모습을 지니며 나름대로 독특한 풍미를 형성하여 왔다. 또한 각 가정마다 맛이 다른 개성과 손맛이 있었다. 좋은 맛을 내고 이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왔다. 우리 음식의 기본 맛이라고 할 수 있는 장류의 중요성과 이것을 만드는 정성은 신앙에 가까웠다.
『증보산림경제』에서도 “ 장은 모든 음식 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좋은 채소나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다. 고기가 없어도 좋은 맛의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고 하였다. 이 기록은 우리 음식의 맛에서 장류의 위치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간장의 맛은 가문의 음식맛을 좌우하여 음식의 맛이 그 집의 장맛에 연유되는 바가 컸으므로 장맛보고 며느리 삼는다는 말도 있다. 집안의 장맛이 좋아야 가정이 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을 썼다.
『증보산림경제』에 나오는 ‘어육장방’이나 『규합총서』의 ‘동아섞박지’ 등은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하여 장기간 발효시켜 독특한 풍미를 내게 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숙성의 맛을 잘 살린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 민족은 계절마다 계절을 알리는 맛을 사랑하여 그 맛을 찾는 멋 또는 맛에 대한 풍류성이 있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서 독특한 미각의 음식을 찾아 먹었다. 이는 생활의 지혜이며 슬기이고 멋이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설이란 만물을 음양으로 나누는 데서 비롯된다. 여기에 덧붙여 목(木) · 화(火) · 토(土) · 금(金) · 수(水)의 5행에 만물을 배합시켜 상생(相生) · 상극(相剋)의 관계가 성립되고 음양조화가 결합하여 복잡한 이론이 생기는 것이다. 동양의 조리원리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조리하는 것이다. 음식물의 맛도 이 음양오행설에 결부시켜 식품의 배합이나 음식의 온도, 색 등을 조절하였다.
① 5미상생(五味相生) : 서로 맛의 조화가 잘된다는 말이다. 신맛과 쓴맛(木生火), 쓴맛과 단맛(火生土), 단맛과 매운맛(土生金), 매운맛과 짠맛(金生水), 짠맛과 신맛(水生木)은 상생관계에 있다. 이들 두 가지 맛이 알맞게 섞이면 맛이 좋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예를 들면 김치는 짠맛과 신맛이 알맞게 조화되어 식욕을 돋우는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짠맛(水)과 신맛(木)은 수생목(水生木)으로 상생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5미조화는 오랜 경험에 의한 생활의 슬기로서 실로 교묘하게 생각해낸 실용적인 원리이다.
② 5미상극(五味相剋) : 맛을 억제하는 관계를 말한다. 신맛은 단맛에 의하여(木剋土), 단맛은 짠맛에 의하여(土剋水), 쓴맛은 매운맛에 의하여(火剋金), 매운맛은 신맛에 의하여(金剋木) 각각 맛이 억제된다는 원리이다. 예를 들면 소금물에 메주를 넣고 숙성시키면 짠맛을 덜 느끼게 된다. 이것은 숙성중에 생긴 메주의 단맛 성분이 짠맛을 억제시키기 때문이다.
③ 소선소기(所宣所忌) : 신맛은 간장에, 쓴맛은 심장에, 단맛은 췌장에, 매운맛은 허파에, 짠맛은 콩팥에 관계된다고 보고 이들 맛의 양이 적당할 땐 유익하고 지나치면 병에 걸린다는 사상이다.
『예기(禮記)』에는 5미와 계절에 관한 내용이 있다. “밥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먹기는 여름같이 하고, 장먹기는 가을같이 한다. 술먹기는 겨울같이 한다. 밥은 따뜻한 것이 좋다. 국은 더운 것이 좋다. 장은 서늘한 것이 좋다. 술은 찬 것이 좋다. 무릇 봄에는 신맛이 많아야 한다. 여름에는 쓴맛이 많아야 한다. 가을에는 매운맛이 많아야 한다. 겨울에는 짠맛이 많아야 한다. 이 네 가지 맛은 목 · 화 · 금 · 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때에 맛으로서 기운을 기르는 것이니 사시(四時)를 고르게 한다. 달고 미끄러움은 토를 상(象)한다. 토는 비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달고 미끄러움은 비위를 열게 함이라.”고 하였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맛에 대한 욕구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각 민족마다 기후풍토에 알맞게 전통적인 맛이 정립되어 민족의 기층 기호를 형성하여 왔다. 우리나라는 일상음식의 대부분이 장류를 기본조미료로 한다. 그리고 김치 · 젓갈 등 독특한 발효맛에 익숙해 왔다. 각 지역과 각 가정마다 개성 있게 독특한 맛을 지녔다.
근대화의 물결은 1980년대에 이르러 고도의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급격한 신장으로 인한 인구의 도시집중과 핵가족의 증가, 대단위 아파트단지의 조성, 식품의 다양화 등을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와 먹는 것에 대한 가치관을 크게 변화시켰다. 간장 · 된장 · 고추장 등의 기본 조미음식 이외에 자연스럽게 일본식의 간장 · 된장에 더욱 익숙해졌다. 그리고 토마토케첩 · 마요네즈 등의 서구식 조미료 및 가공음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미각의 폭도 크게 넓어졌다. 현대의 미각은 점차로 다양한 식품의 맛에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다.
그러나 서구화 경향으로 선호도가 바뀌어 가고 있다. 각각의 개성을 잃고 맛의 획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점차로 소비자들의 입맛이 진한 맛을 추구하는 미각욕구에 맞추어 첨가제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화학조미료는 소비자의 욕구에 따라서 보다 새로운 맛의 추구와 전통식품이 갖는 고유한 맛을 간편히 재현시킨다는 의미에서 다양하고 복합적인 천연의 맛을 주는 풍미 조미료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종 식품의 조미료(예 : 불고기양념 · 김치양념 등)와 기본식품의 가공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맛의 획일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음식의 맛과 음식의 특성은 각 가정의 조미료의 조화기법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음식 맛의 획일화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구나 기준이 없는 저질화의 획일화는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다.
전래음식의 기본 맛을 분석하고 맛의 기준설정의 시도가 요구된다. 시판되고 있는 기본 발효식품 등의 품질향상을 꾀하고 우리 맛의 전통적 뿌리가 소생할 수 있도록 지역마다 풍토적 여건을 근거로 특이한 맛을 지닌 향토음식을 개발하고 전승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절에 따른 특이한 음식 맛을 유지하고 다양한 김치의 맛을 표준화함으로써, 이러한 음식을 개발한 선조의 슬기를 이어 더욱 좋은 맛으로 정립하여 우리의 맛을 국제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