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식구민(境識俱泯)이란 마음의 경계[境]와 마음[識]을 모두 잊는다는 뜻으로, 마음이 일으키는 번뇌와 마음 밖의 세계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사라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경식구민(境識俱泯)’은 진제삼장(眞諦三藏)이 역출(譯出)한 『전식론(轉識論)』에 나오는 말로 『종경록(宗鏡錄)』에도 인용되어 있다.
중국 불교의 유식학파는 진제삼장에 의한 섭론종(攝論宗)과 현장(玄奘)에 의한 법상종(法相宗)으로 나누어지는데, 시대가 앞서는 섭론종을 구유식, 법상종은 신유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제삼장은 『전식론』에서 식을 인식하는 마음인 능분별과 그 마음에 의해 인식되는 외계 대상인 소분별로 나눈다. 그리고 마음을 떠나 외계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외계 대상이란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또 외계 대상은 실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마음의 경계[境]와 마음[識]을 모두 부정하였다. 진제삼장은 이와 같이 마음의 경계와 마음이 모두 사라진 상태를 ‘경식구민’이라고 하여 이것이 곧 아말라식이라고 하였다. 아말라식이란 진제삼장, 또는 섭론종의 9식설(九識說)에서 등장하는 식으로 기존의 6식과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에 새롭게 추가된 청정식을 말한다. 또한 진제삼장은 삼성설(三性說)의 구도 안에서 소분별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에, 능분별은 의타기성(依他起性)에 대응시키면서 이 둘이 사라진 경식구민의 상태란 삼성 중 원성실성(圓成實性)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선불교(禪佛敎)에서도 경식구민은 선 수행의 이론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중국 금나라의 정언선사가 지은 『진심직설(眞心直說)』에서는 진심(眞心)이 드러나는 단계에서 ‘진심으로 망념을 쉬는 단계[眞心息妄]’를 설명하면서, “지금까지 여러 스님들이 무심 공부를 한 것이 저마다 다르지만 이제 그 대의를 들어 열 가지로 밝힌다. 즉 깨달아 살핌[覺察], 쉼[休歇], 마음을 없애고 경계를 둠[泯心存境], 경계를 없애고 마음을 둠[泯境存心], 마음도 없애고 경계도 없앰[泯心泯境], 마음도 두고 경계도 둠[存心存境], 안팎이 하나인 본체[內外全體], 안팎이 모두 작용[內外全用], 체가 곧 용[卽體卽用], 체와 용을 초월함[透出體用]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마음도 쉬고 경계도 쉬는 경지[泯心泯境]’가 바로 ‘경식구민’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