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은 무지를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여러 경전에서 갖가지 심오한 해설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되고 있다.
인간 생사의 근원을 밝히는 12연기(緣起)의 첫머리에 나오는 무명은 ‘나’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요 ‘나’를 범부이게끔 하는 근원이며, 모든 번뇌의 근본이요 일체 악업(惡業)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본업경 本業經≫에서는 “무명은 일체법(一切法)을 밝게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고, ≪대승의장 大乘義章≫에서는 “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무명은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이다. 그 본체에는 지혜도 밝음도 없다.”고 하였다.
≪구사론≫에서는 “무명의 모습은 사제(四諦)와 삼보(三寶) 및 업(業)의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데 있다.”고 하였으며, ≪유식론 唯識論≫에서는 “무명은 모든 사물과 이치에 대하여 미혹되고 어리석은 것을 본성으로 삼고, 능히 지혜를 결박하여 일체를 잡되고 물들게 하는 것으로서 그 업을 삼는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기신론 起信論≫에서의 무명에 대한 해설이다. ≪기신론≫에서는 무명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최초의 한 생각을 근본 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그 근본 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게 또는 거칠게 일어나는 모든 허망한 생각들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고 하였다.
무명은 불교의 기본 교리로서 불교가 여러 부파(部派)로 나누어진 뒤에도 인간의 괴로움을 설명하는 근본 교설로 채택되었고, 2종무명·5종무명·15종무명 등으로 무명을 세분하여 해석하였다.
그러나 석가모니 당시부터 무명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으로 설명되었고, 선종에서는 독자적인 개체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본성을 뜻하는 법성(法性)과의 일체로 파악되었다.
무명법성일체설에서 볼 때 법성과 무명은 마치 얼음과 물의 관계와 같다. 무명이라는 얼음의 본성은 원래가 물이다. 얼음이라고 하지만 물의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 사람의 심성은 본래 얼음이 아니나 법성의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된 것일 뿐, 어느덧 홀연히 생겨난 무명은 곧 근본 깨달음인 본각(本覺)의 법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무명법성일체설은 우리 나라 선종에서도 뿌리를 내려 무심선(無心禪)을 정립하기에 이르렀고, 번뇌와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라는 실천적 규범을 낳기도 하였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일심(一心)을 설명하면서, 일심 이외에 별다른 법이 없으나 무명으로 말미암아 일심을 미하게 되어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고 육도(六道)를 윤회하게 된다고 하였다.
원효는 이 무명을 잠재적인 충동력이라고 보았다. 곧 이 충동력 때문에 어리석은 마음이 동요하게 되지만, 무명 자체는 아직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였다. 즉, 무명은 일심을 동요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으로 파악하였고, 이 무명의 충동력이 계속해서 일심의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게 될 때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명은 모든 고통스러운 결과의 가장 원초적인 원인이 되며, 이 무명을 없앨 때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