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소』는 1457년, 중국 당나라 승려 종밀의 불교 주석서를 간행한 불서이다. 금속활자인 초주갑인자로 간행한 불서 3권 1책이 전해진다. 종밀의 독창적 저술이 아니라 법장의 『대승기신론소』에 대한 절요본에 해당한다. 현담 부분은 종밀이 개변하여 법장과는 달리 교판적으로 화엄경을 가장 높이 두었다. 즉 법장은 기신론을 교판적으로 여래장계통에 위치시키면서 4종판 중 최고의 위치에 두었지만, 종밀은 여래장 위에 화엄경을 두어 기신론보다 교판적으로 상위에 위치시켰다. 본문을 요약할 때는 원효의 기신론소도 인용하였다.
권말에는 세조가 죽은 아들을 위해 1457년에 지은 주5 주6이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여위망자 기성제경, 우이심경절어상지. 기신논문의험오, 행득규봉주해, 명인국 첨성광포. 서기, 빙차양연, 망자혹득개안, 점점성취묘덕, 부추여금일지원 비부겁
수진 이심무진 유원불천애섭수(予爲亡子 旣成諸經, 又以心經切於常持. 起信論文義險奧, 幸得圭峯注解, 命印局 添成廣布. 庶幾, 憑此良緣, 亡子或得開眼,漸漸成就妙德, 不墜予今日之願 悲夫劫 雖盡 而心無盡 唯願佛天哀攝受)
내가 죽은 아들을 위하여 이미 많은 경전을 완성했다. 또 마음의 경전으로써 평소에 기신론 지니기를 간절히 바랬다. 기신론 문장은 의미가 깊고 어려웠다. 다행이 규봉의 주해를 얻어서 인쇄소에 명하여 추가로 완성하여 널리 배포하도록 하였다. 바라옵건대 이 좋은 인연으로 죽은 아들이 혹은 눈을 얻어 점차 미묘한 공덕을 성취하여 저의 오늘의 서원이 헛되지 않기를. 슬프구나, 비록 시간은 비록 다하더라도 마음이 다하지 않으니.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佛天]의 자비로 보살펴 주옵소서.
본래 『대승기신론』은 마명의 저작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중국에서 찬술한 위경이란 주장이 대체로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본서는 1457년에 간행된 『대승기신론소』이다. 이 『기신론』에 대해서는 고래로 동아시아에서 원효와 주7의 기신론소가 중시되었다. 그 가운데 본서는 법장의 기신론소를 바탕으로 요약하면서 가필한 종밀의 저술이다. 서지사항을 검토하면 대각국사 의천의 『교장총록』에 「소4권(혹3권 혹2권 종밀장장소주어론문지하)」[「疏四卷(或三卷或二卷宗密將藏疏注於論文之下)」]라고 되어 있는 문헌이 본서이다. 현재는 권상지이(卷上之二), 권하지일(卷下之一), 권하지이(卷下之二) 등 3권 1책으로 권상지일(卷上之一) 은 결본 상태이다.
본서는 권수제 다음 행에 ‘서태원사사문 법장 술(西太原寺沙門 法藏 述)’이란 원저자표시가 있고, 그 아래에 ‘초당사문종밀록지수과주어론문지하(草堂沙門宗密錄之隨科注於論文之下)’라고 하여 초당사 사문인 종밀이 과문을 따라 필록하여 기신론 본문의 아래에 주를 넣었다고 되어 있다. 즉 종밀이 법장소를 저본으로 하여 편집한 책이다. 따라서 종밀의 독창적 저술은 아니지만, 구성에서 특히 현담 첫부분에서 법장의 소와 많은 차이가 나며, 원효소를 참조한 부분도 확인된다. 그런 점에서 원효의 기신론소에 의해서 법장의 기신론소를 이해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서지학적으로는 조선 세종 연간에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국내 유일의 원간본이라는 점에서 조선 초기 고활자본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에는 주8 원년(1457년)의 판각본을 70여년 후인 주9 7년(1528)에 복각 개판한 기록이 있는 종밀소가 소장되어 있다. 이 판본이 본서의 복각 개판본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본서와 비교하여 간기와 시주자 외에는 주10, 주11, 어제 발문 등 모든 면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후 이 책을 읽은 이들이 구결, 주12, 주13를 붙여놓아 국어학적으로도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텍스트의 문제를 보면, 본서는 일본 유통본과 비교하여 글자의 이동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본서와 일본의 축쇄대장경에 실린 종밀소가 동일 계통이고 도쿄대, 도요대, 동대사본이 동일한 계통임을 알 수 있다. 건륭장은 본서와 축쇄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축쇄본은 많은 부분에서 신뢰할 수 없는 글자로 바뀐 예가 있고, 그 외 일본소장본들은 『기신론』 원문에서 『석마하연론』과 유사한 원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큰 차이는 없으나 장서각본의 원본이 되는 본서 계통이 선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혜원, 원효는 본서 계통과 같은 기신론 원문을 사용하지만, 일본 유통본은 대체로 이와는 다른 글자를 취하고 있음도 밝혀졌다.
중국에서는 법장의 기신론소가 저술되고 종밀이 그것을 요약하여 간행한 후, 종밀의 문도인 석벽사(石壁寺) 전오(傳奧)의 『대승기신론수소기』 6권, 전오의 4세손인 장수자선(長水子璿)의 『대승기신론필삭기』 20권 등이 있어 종밀을 통해 법장이 연구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근대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중국에서 법장의 기신론소가 일찍이 일실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시대까지 법장의 기신론소를 중심으로 연구되다가 중국의 이러한 흐름이 전해지면서 기신론이 종밀의 기신론소를 중심으로 연구되었고, 에도시대 봉담(鳳潭) 이후 법장의 주석서를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한국에서는 종밀이 의천에게는 화엄조사로서, 그리고 지눌에게는 선종조사로서 종밀이 점점 중요시되었지만, 종밀의 기신론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본서가 간행되면서 이후 기신론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걸쳐 법장의 기신론소가 간행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는 종밀의 기신론소가 더 많이 간행되었다. 즉 조선시대에는 종밀소를 통해 기신론 혹은 법장의 기신론소에 대해서 연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종밀과 기신론의 관계를 보면, 종밀은 선종계보에 속하면서 화엄종 제5조에 위치하는 인물이고, 이 두 사상을 종합한 인물로서 그의 사상을 화엄선으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혹은 그의 사상적 성격을 ‘원각사상’으로 명명하여 새롭게 성격 규정을 하기도 하였다. 또한 법성교학을 현양한 승려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의미하는 법성교학은 경전으로는 『화엄경』, 『능엄경』, 『원각경』, 『금강경』이 해당하고, 논서로서는 『대승기신론』이고, 율장으로는 『범망경』이며, 특히 『대승기신론』이 법성교학체계 수립에 결정적 기초가 되었다고도 한다. 즉 종밀이 법장의 기신론소를 요약하여 본서를 저술한 것은 자신의 사상적 근원을 다지기 위해서라고 추측할 수 있다. 종밀이 법장의 기신소를 요약하면서 원효의 사상을 상당히 인용하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그 한 예를 보이면 법장 기신소의 주14’에 대한 설명에는 ‘ 일심’을 강조하지 않지만, 종밀은 『원효소』를 빌어와 ‘귀명’에 있어서의 ‘일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원효를 통해 『의기』의 의미를 보다 풍성하게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종밀의 의도를 법성교학의 확립에 있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이 본서인 종밀소의 의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