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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개념
수행을 통해 삼라만상의 실상과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을 가리키는 불교 교리.
이칭
이칭
오(悟)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각은 수행을 통해 삼라만상의 실상과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을 가리키는 불교 교리이다. 세속적 깨달음과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의 범주가 있는데, 이것이 이른바 속제와 진제 등으로 표현되는 이제설이다. 고구려의 승랑은 이제를 교설로서 인정하였다.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 단계의 대표적 개념으로 5종보리와 기신론의 사위가 있다. 신라의 의적, 경흥, 표원 등은 오종보리에 주목하였다. 원효는 수행방법으로 기신론의 지관에 주목하였다. 깨달음의 성질을 둘러싼 돈오와 점오 논쟁이 있었으며 현대 한국 선종에서도 첨예하게 대립되어 논쟁하였다.

목차
정의
수행을 통해 삼라만상의 실상과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을 가리키는 불교 교리.
내용

각(覺)은 범어로 bodhi, buddhi, ava-√budh 정도로 사용된다. bodhi는 보제(菩提)로 음사되며, ‘보리’로 읽는다.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참다운 지혜, 깨달음, 또는 앎의 경지를 일컫는 단어이다. buddhi는 지각작용, 이해력, 추론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ava-√budh는 이해하다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이외에도 각은 직관, 부처 등 다양한 뜻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는 ‘깨달음’에 해당하는 각(覺)일 것이다. 이하 ‘깨달음’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자 한다. 현재 사용되는 깨달음의 한자어는 오(悟) 또는 각오(覺悟)로도 사용된다. 둘 다 avabodha로 환원될 수 있다. 깨어있는 의식을 의미한다.

각[깨달음]은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세속의 깨달음과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이다.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다. 또한 깨달음 자체에도 완벽한 깨달음, 불완전한 깨달음으로 나뉜다. 완전한 깨달음이라 해도 경전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불완전한 깨달음이 존재하기에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 존재한다. 그때 불완전한 깨달음 역시 깨달음의 하나이기 때문에 깨달아 가는 길로서의 깨달음의 단계로 표현될 수도 있다. 이렇게 현대적으로 깨달음에 대해서는 범주를 나눌 수 있고, 깨달음의 해석 차이, 단계 등을 구분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하나하나 우리나라 승려들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세속적 깨달음과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이다. 교설에는 세속적 교설과 세속을 초월한 교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은 반야경, 열반경 등에서 설명한다. 즉 반야경에서는 보살이 주1)[체(諦)는 제로 읽는다] 가운데 머물러 중생들에게 설법한다. 열반경에서 세제는 곧 제일의제이지만 중생에게 수순하는 까닭에 교설에 이제가 있는 것이라고 하며, 용수의 중론에서는 모든 부처가 이제에 의하여 중생들에게 설법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제는 세속제와 제일의제를 말하는데, 속제(俗諦)와 진제(眞諦)로도 표현되며, 각각 세속적 진리, 세속을 초월한 진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신삼론종의 비조인 고구려 승랑은 이제를 교설로서 인정하였다. 여기서 교설이라함은 고정적이 아니고 유동적임을 나타낸다. 즉 변함없는 진리[理]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변할 수 있는 진리[敎]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속제와 진제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고, 변증법적 상승변화를 거쳐 궁극적 중도를 체득하기 위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 승랑의 설명이다.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다. 그러한 단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성문의 네가지 깨달음의 단계[四果[^2]]라고 불리는 것이 있어 수다원(須陀洹)에서 아라한(阿羅漢)까지의 네 단계를 설정한다.

중국에서 들어온 주3의 5종보리라고 불리는 깨달음의 단계가 자주 회자된다. 첫째는 붓다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다짐한 자가 얻는 깨달음으로 이것을 발심(發心)보리라고 한다. 둘째는 온갖 번뇌를 누르면서 수행하는 자가 얻는 깨달음으로 복심(伏心)보리이다. 셋째는 세계가 궁극적으로 깨끗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얻는 깨달음으로 명(심)보리이다. 넷째는 미세한 온갖 번뇌를 끊고 미혹된 세계를 떠나서 붓다의 경지에 도달한 자의 깨달음으로 출도(出到)보리이다. 다섯째는 번뇌의 습기를 단절하여 붓다와 같은 최상의 경지에 도달한 깨달음으로 무상(無上)보리이다. 넷째와 다섯째의 차이는 번뇌로 인하여 부여되는 댓가마저 단절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른 분류일 뿐으로 최상의 깨달음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5종보리에 대해서 수나라 주4처럼 수행 계위와 관련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 중에서 신라원측은 인도 출신 주5의 해석을 그대로 가져오는데 비해, 신라의 표원은 기존의 혜원 및 장이삼장과도 다른 해석을 한다. 또는 표원에게 다대한 영향을 미친 당의 주6과도 다른 규정을 견지한다. 표원은 『화엄경문의요결문답』에서 발심보리는 초주위, 복심보리는 제2주 이상, 명보리는 초지에서 7지까지, 출도보리는 8지에서 금강지까지, 무상보리는 묘각지라고 규정한다. 이와같은 표원의 규정은 신라 의적의 『법화경론술기』, 경흥의 『삼미륵경소』의 규정과 흡사하다. 중국과 신라 승려의 규정을 비교하면 다음 표와 같다.

전거 발심보리 복심보리 명(심)보리 출도보리 무상보리
혜원 대승의장 선취위 종성해행 초지-6지 7지-10지 불과
대승의장 지전 초지-3지 4지-6지 7지-10지 불과
대승의장 지전 초지-5지 6지 7지-10지 불과
법장 탐현기 초주위 삼현위 초지견도 수도만 불과구경
장이 해심밀경소 습종이전 삼십심 초지-7지 8지-10지 묘각
의적 법화경론술기 십신위 삼현위 초지-7지 8지-10지 불과
경흥 삼미륵경소 생사해 십신이후 초지-7지 8지-10지 여래과
표원 요결문답 초주위 제2주이상 초지-7지 8지-금강지 묘각지

전거 발심보리 복심보리 명(심)보리 출도보리 무상보리 혜원 대승의장 선취위 종성해행 초지-6지 7지-10지 불과 대승의장 지전 초지-3지 4지-6지 7지-10지 불과 대승의장 지전 초지-5지 6지 7지-10지 불과 법장 탐현기 초주위 삼현위 초지견도 수도만 불과구경 장이 해심밀경소 습종이전 삼십심 초지-7지 8지-10지 묘각 의적 법화경론술기 십신위 삼현위 초지-7지 8지-10지 불과 경흥 삼미륵경소 생사해 십신이후 초지-7지 8지-10지 여래과 표원 요결문답 초주위 제2주이상 초지-7지 8지-금강지 묘각지

이와같이 신라 승려들의 규정은 원측이 인용한 장이삼장의 규정과 명(심)보리부터 동일함을 알 수 있다. 5종보리보다 더 일반적인 깨달음의 단계는 주7에서 밝히고 있는 시각의 4단계이다. 기신론은 시각과 본각이라는 두 각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본각에 이르는 수행의 단계가 불각, 상사각, 수분각, 시각이다. 시각에 이르러 본각과 동일한 깨달음을 완성한다. 불각은 보통사람들이 자신이 한 행동이나 생각이 나쁘다는 것을 깨닫고 뒤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멈추는 것이다.

그런데 왜 불각이라고 할까. 이에 대해서 원효는 비록 십신위에 들어와서 선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멈추게 되었지만, 그 자신의 행동과 그것을 멈추는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이라고 한다고 했다. 원효는 이어서 거친 분별과 모양에 집착하는 것을 버리는데, 아직 대상에 대해서 분별함이 없는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상사각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깨달음과 비슷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는 십주부터 십회향까지의 삼현의 계위에 해당한다. 세번째 수분각은 기신론에서는 법신보살이라고 칭한다. 이에 대해서 원효는 초지에서 십지까지 해당된다고 하였다. 법신보살은 아집과 법집임을 깨닫고 대상에 대해 무분별임을 깨닫지만, 아직은 대상이 태어난다는 꿈 속에 있기 때문에 완전한 깨달음이 못된다. 네번째, 보살 궁극적 경지를 무구지라고 하는데 이 경지는 구경위에 해당하며 시각이라고 일컫는다.

이렇게 5종보리와 시각의 사위는 단계적으로 깨달아 들어가는 길이지만, 깨달음에 단계를 초월하여 깨닫는 돈오와 이해를 통하여 깨닫는 점오로 나누는 것도 일반적이다. 선종에서 돈오를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은 혜능(惠能)이고, 점오를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은 신수(神秀)로 본다. 선종에서 가장 중시하는 육조단경에서 신수는 심신을 깨달음의 나무와 밝은 거울로 비유하여, 부지런히 털고 닦을 것을 권유한다. 즉 수행을 거듭해가면 결국에는 깨닫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반면에 혜능은 심신은 본래 아무것도 없는 공인데 어디에 털고 닦을 일이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혜능은 본래 공인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을 강조했고, 이러한 혜능의 생각은 본래성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수행과 수행하지 않음을 초월한 돈오의 경계에 속한다.

이와같은 깨달음의 시간적 문제와는 별도로 깨달음에 대한 성질을 두고 해오(解悟)와 증오(證悟)로 나눈다. 이해에 의한 깨달음을 해오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닦음/체험에 의한 깨달음을 증오로 정의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현대에 벌어진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논쟁은 돈오를 해오로 보는가, 증오로 보는가의 해석에 기반한 것이다. 선종의 조사들의 선을 돈오돈수로 보는 입장은 현대에 해인사에 거주했던 성철(性徹)로 대표되며, 돈오점수는 성철의 비판 대상이 된 고려시대의 지눌(知訥)로 대표된다. 논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현대의 청화(淸華)도 돈오점수의 주창자이다. 이러한 두 방식의 깨달음으로부터 깨달음 자체도 완벽한 깨달음, 불완전한 깨달음으로 나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깨달음이라 해도 경전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화엄경에는 유명한 문구인 처음 발심했을 때 바로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표현이 있다. 이 깨달음에 대해서 화엄경을 최고 경전으로 존중하는 중국의 주8과 그 제자인 신라의 의상(義湘), 중국의 주9은 여기서의 깨달음이 완전하다고 이해한다. 반면에 법상종의 승려나, 천태종의 승려들은 이 깨달음이 부분적이며, 완전한 깨달음의 길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는 입장이며, 계위로는 초주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이 문구를 대해서 화엄가들이 완전한 깨달음으로 보는 이유는 그 근저에 인간은 본래부터 성불해 있다는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신라의 의상은 구래성불이라고 했고, 당나라의 주10은 본래성불이라고 했다. 이러한 사상의 기반 위에 법장은 신만성불(信滿成佛)을 주창한다. 믿음이 완성될 때 깨닫는다는 뜻이다. 이 믿음이 완성되는 때를 만약 계위를 통해서 설명한다면 바로 처음 발심하는 문구가 등장하는 초주위(初住位)에 해당한다.

그런데, 화엄가에서 초주위에 성불한다는 설명을 해도 이것은 지금까지 설명했던 바와 같은 깨달음의 단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상이 선언했듯이 인간은 이미 옛부터 성불해 있었기 때문이다. 의상은 이러한 깨달음을 다른 표현으로는 찰나찰나에 깨닫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신라의 견등(見登)은 역시 『화엄일승성불묘의』라는 저술에서 신만성불과 구래성불의 조화를 서술하면서, 찰나찰나에 깨닫는다는 염염성불설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화엄의 성불설 혹은 깨달음을 굳이 계위를 도입하여 설명하자면 초주위가 될 뿐이지, 본래는 구래성불로 대표된다.

한편, 신라의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에서 처음 발심하여 존재의 본래 모습[法性]을 알 때 곧 위없는 보리, 즉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한다고 설명했다. 원효는 백가를 다 섭렵하였지만, 화엄경 초발심의 의미를 화엄가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화엄가와 비화엄가와의 해석 차이는 단순히 경문의 차이가 아니라 화엄경의 믿음(信)에 대한 해석 차이에 기인한다.

지금까지의 깨달음에 대한 설명은 출가인을 대상으로 설명되었다. 위에서 진속이제를 설명할 때조차 그것은 출가인들의 교리 해석의 차원을 설명한 것이지, 속제라고 해서 세속의 재가인을 대상으로 설명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재가인들이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떤 성질의 깨달음일까. 이런 문제는 인도 초기 불교 경전에 명확히 서술되어 있다. 즉 출가인과 재가인은 사회적 구분에 의해 나눠진 것일뿐 승가의 공동구성원이라는 의미에서는 깨달음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다. 재가자들이 행하는 출가자에 대한 물질적 후원과 공덕을 쌓는 행위조차 거시적으로 보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행위이다. 쌍윳다니까야에서 붓다가 마음이 해탈한 주11와 마음이 해탈한 지 백년이 되는 비구 사이에는, 즉 이 해탈과 저 해탈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점도 없다고 한다는 말은 출가자와 재가자의 깨달음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같은 경전에서 붓다는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팔정도를 올바로 닦는다면 최종적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출가와 재가에 공통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에 대해서 원효의 설명으로 간략히 대치하면 수행은 지(止)[사마타, 선정]와 관(觀)[위빠사나, 지혜]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며, 지관을 함께 닦아야 수행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하나의 방법에 고집하지 않고 지와 관을 함께 닦음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

『열반경』
『반야경』
『중론』
『육조단경』
『화엄경문의요결문답』
『법화경론술기』
『삼미륵경소』

단행본

『깨달음 논쟁: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운주사, 2018)
김성철, 『승랑』(지식산업사, 2011)
고익진, 『고대한국불교사상사』(민족사, 1989)

논문

김천학, 「동아시아 화엄학에서의 성불론」(『한국사상사학』 32, 한국사상사학회, 2009)
주석
주1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

소승 불교에서 이르는 깨달음의 네 단계.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의 단계가 있다. 우리말샘

주3

나가르주나가 산스크리트 원전의 ≪대품반야경≫에 대하여 주석한 책. 대승 불교의 백과사전적 저작이다. 우리말샘

주4

중국 수나라의 승려(523~592). 속성은 이(李). 지론종(地論宗) 남도파(南道派)에 속하며 해석학의 제일인자로, 578년에 북주 무제의 불교 금지령에 적극 반대하여 불법을 지켰다. 저서에 ≪대승의장≫ 28권이 있다. 우리말샘

주5

경, 율, 논 삼장에 통달한 승려. 또는 삼장을 번역한 승려. 우리말샘

주6

중국 당나라 때의 승려(643~712). 속성은 강(康). 호는 현수(賢首). 화엄종의 제3조로, 지엄에게서 화엄경을 배웠다. 670년에 칙령에 의하여 출가한 뒤 교학의 대성에 힘썼으며 현장, 일조, 실우난타 등의 역경(譯經)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저서에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7

불교의 근본 뜻을 중심으로 정신(正信)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론. 강당의 교과 가운데 사교(四敎)의 둘째 과정이다. 우리말샘

주8

중국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의 승려(602~668). 속성(俗姓)은 조(趙). 존호는 지상대사(至相大師). 화엄종의 제2조로, 육상원융·십현 연기의 뜻을 설교하여 화엄종을 널리 알렸다. 저서에 ≪수현기(搜玄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9

중국 당나라 때의 승려(643~712). 속성은 강(康). 호는 현수(賢首). 화엄종의 제3조로, 지엄에게서 화엄경을 배웠다. 670년에 칙령에 의하여 출가한 뒤 교학의 대성에 힘썼으며 현장, 일조, 실우난타 등의 역경(譯經) 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저서에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0

중국 당나라의 승려(780~840). 화엄종의 제5조로 규봉 대사(圭峯大師)라 칭하였다. 교선 일치(敎禪一致)의 입장을 취하였으며, 저서에 ≪원인론(原人論)≫, ≪원각경소(圓覺經疏)≫, ≪우란분경소(盂蘭盆經疏)≫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1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 우리말샘

집필자
김천학(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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