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학자 성혼의 무덤.
개설
내용
묘역 입구에는 우계기념관이 건립되었다. 경내에는 홍살문을 지나 부조묘(不祧廟)인 우계사당(牛溪祠堂)이 있는데 이춘문(易春門)이라는 문 안에 있다. 묘소의 규모는 90㎡이며, 봉분 뒤쪽은 사성(莎城)으로 둘러져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이 있다.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 :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쌓았고, 그 앞에 동자석이 한 쌍 있다. 묘갈이 오른쪽에 있는데 비신이 왼쪽을 향해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묘소 아래 비각 안에는 2개의 비가 있는데 성수침의 묘갈과 성혼의 묘비다. 좌측에 세운 성수침의 묘갈은 1651년(효종 2)에 세운 비로 퇴계 이황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직접 썼다. 묘갈 뒤의 음기는 포저 조익(趙翼)이 짓고 윤순거(尹舜擧)가 썼다. 이 비는 팔작지붕형의 가첨석(加檐石), 비신(碑身), 비좌(碑座)로 구성되어 있다. 총높이 230㎝, 비 높이 130㎝, 너비 67㎝, 두께 22㎝로 재료는 대리석이고 비좌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1649년(인조 27)에 세워진 성혼의 비문은 김집(金集)이 짓고 글씨는 외손자 윤순거가 썼다. 비문에는 관직을 쓰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유명(遺命)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 놓았다.
또한 묘소 입구에 대리석으로 된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짓고 글씨는 김집이 썼으며 전액(篆額)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참고문헌
- 『우계학파 연구』(황의동, 서광사, 2005)
- 『파주금석문대관』(파주문화원, 2003)
- 『파주군지』(파주군, 1993)
- 『경기문화재대관』(경기도, 1990)
-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gsm.nricp.go.kr)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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