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초에 설치된 세자관속(世子官屬)을 뒤에 개칭한 것으로 왕세자를 모시고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을 강의하며 도의(道義)를 가르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관원은 사(師, 정1품), 부(傅, 정1품), 이사(貳師, 종1품), 좌우빈객(左右賓客, 정2품), 좌우부빈객(左右副賓客, 종2품), 찬선(贊善, 정3품), 보덕(輔德, 정3품), 겸보덕(兼輔德, 정3품), 진선(進善, 정4품), 필선(弼善, 정4품), 겸필선(兼弼善, 정4품), 문학(文學, 정5품), 겸문학(정5품), 사서(司書, 정6품), 겸사서(兼司書, 정6품), 설서(說書, 정7품), 겸설서(兼說書, 정7품), 자의(諮議, 정7품)가 각각 1인이었다.
이 가운데 찬선·진선·자의 및 겸(兼)자가 붙은 관직은 조선 후기에 증설되었다. 사는 영의정이, 부는 좌우의정 중에 1인이, 이사는 찬성 1인이 겸하였고, 빈객과 부빈객도 모두 겸직이었다. 찬선 이하는 모두 녹관(祿官)이었는데, 찬선과 진선은 겸관으로 하기도 하였다.
과거합격자가 아닌 유학(幼學)이라도 대신이 추천하면 자의에 임명될 수 있었다. 1895년(고종 32)에는 왕태자궁(王太子宮)으로 이름을 바꾸고 일강관(日講官) 2인, 시강관(侍講官) 4인, 첨사(詹事) 1인, 부첨사(副詹事) 1인 등을 두었다가, 이듬해 다시 시강원으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