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실의 경우 조선시대 왕실의 적서(嫡庶) 구분과는 달리 궁인(宮人)이나 폐첩(嬖妾) 사이에서 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러 왕비의 소생이 모두 적자(嫡子)였다.
즉, 왕비 사이에 차서(次序)는 있었으나 왕위계승을 구별짓는 신분상의 차별은 없었다고 하겠다. 고려시대 왕비의 칭호는 국초에는 정해진 제도가 없었고 단지 후비(后妃)와 후비 이하를 원부인(院夫人)·궁부인(宮夫人) 등으로 불렀다.
후비와 부인도 역시 단순한 차서의 구별이며, 왕위계승을 구별짓는 신분상의 차별은 아니었다. 현종 때 상궁(尙宮)·상침(尙寢)·상식(尙食)·상침(尙針) 등 내명부(內命婦)의 제도를 정비하고 그 인원수와 차서를 정할 때 숙비·귀비(貴妃) 등 왕비의 칭호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정종(靖宗) 이후에는 원주(院主)·원비(院妃)·궁주(宮主) 등의 칭호도 생겼는데, 문종 때 관제가 정비되어 숙비를 정1품으로 하였다. 왕비에게 주던 정1품 작호는 이 밖에도 귀비·덕비(德妃)·현비(賢妃)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