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cement)

쌍용시멘트
쌍용시멘트
과학기술
개념
물 또는 용액으로 반죽하였을 때 단단히 굳어져 교착제 또는 접착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무기질의 결합경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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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물 또는 용액으로 반죽하였을 때 단단히 굳어져 교착제 또는 접착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무기질의 결합경화제.
종류 및 성분

시멘트의 종류는 기경성시멘트(석회·고토질석회·석고·마그네시아시멘트 등)·수경성시멘트(단미시멘트로서 수경성석회·로망시멘트·천연시멘트·포틀랜드시멘트·알루미나시멘트 등)·혼합시멘트(고로시멘트·실리커시멘트·플라이애시시멘트·메조리시멘트·팽창성시멘트·착색시멘트 등) 및 특수시멘트(내산시멘트·치과용 시멘트 등)로 크게 나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멘트라 함은 토목·건축공사 등에 다량으로 사용되는 포틀랜드시멘트계만을 말한다. 포틀랜드시멘트계에는 보통·중용열·조강·저열·내황산포틀랜드시멘트 등이 속하며, 이 밖에 고산화철형포틀랜드·백색포틀랜드시멘트가 있다.

포틀랜드시멘트의 주성분은 함량의 대소(大小) 순으로 석회(CaO), 실리카(SiO2)·알루미나(Al2O3) 및 산화철(Fe2O3)이며, 사용원료로는 이들 성분의 공급원료가 될 것이다.

즉, 석회질원료(일반적으로 석회암)와 점토질원료(점토·혈암 등)가 주이며, 이 밖에 규산질원료(주로 연규석)와 산화철원료(황화광 소재 등)가 성분 소용량 보충원료로 첨가된다.

제조공정

포틀랜드시멘트의 제조공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포틀랜드시멘트 클링커를 제조하고 여기에 3∼5% 정도의 석고를 응결지연제로 혼합하여 미분하여 최종 제품을 얻게 된다. 따라서 시멘트의 경화성 및 기타 특성은 주로 이 시멘트 클링커의 품질이 좌우하게 된다.

포틀랜드시멘트의 제조용 가마는 배합원료들의 반용융화를 주목적으로 하며, 종류로는 회전가마(rotary kiln)와 선가마(shaft kiln)가 있다. 이 중에서 회전가마가 가장 일반적이며 우리나라에는 이 회전가마만 있다.

제조방식으로는 습식법·반건식법·건식법의 세 종류가 있는데, 국내에서 습식법에 의하는 곳은 한 군데(쌍용양회 문경공장)뿐이고, 그 밖에는 모두 반건식 또는 건식제조법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건식제조법이 주이다.

산업

우리나라의 시멘트산업은 1919년 일본 오노타시멘트회사가 평양 근방 승호리에 연산 30만 톤 규모의 건식시멘트공장을 건설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뒤 1945년까지 6개 공장이 더 건설되었으며,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시멘트 총생산 능력은 연산 170만 톤이 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국토가 분단된 당시, 남한에는 1942년에 건설된 연산 18만 톤 생산능력의 삼척시멘트공장이 있었을 뿐이며, 이 때 남한의 시멘트 생산능력은 북한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태였다. 게다가 광복 후의 사회적 혼란과 6·25전쟁으로 막대한 전화를 받게 되어 모든 조업은 거의 중단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1956년 12월 현재의 동양시멘트회사가 삼척시멘트를 인수, 민영화하여 1950년 큰 보수를 거친 뒤에야 겨우 본래의 생산능력인 18만 톤을 회복하기에 이르렀으며, 1961년 9월 킬른(kiln) 1기를 증설하여 연산 36만 톤의 생산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1950년 6월 정부와 국제연합한국부흥위원단(UNKRA)과의 협의로 1957년 9월 연산 24만 톤의 대한양회 문경공장(현재의 쌍용양회 문경공장)이 완공되었고, 1961년 1월에는 연산 36만 톤 규모로 증설하였다.

이로써 1961년 말 우리나라의 시멘트 총 생산능력은 2개 공장을 합하여 72만 톤에 달하였다. 제3공화국에 들어서 시멘트산업은 국가기간산업으로서뿐만 아니라 경제개발의 기초전략산업으로 선정되어 적극적인 육성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1962년에 73만 톤에 불과하였던 생산능력은 1971년까지 10년 사이에 9.5배나 되는 692만 톤에 달하게 되었으며, 실제 생산량은 같은 기간중에 51만 톤이었던 것이 687만 톤에 달하게 되어 세계 제20위의 시멘트 생산국으로 부상하였다.

또, 그 때까지 만성적인 시멘트수입국이었던 우리나라가 1971년에는 94만 톤을 수출하여 세계 제11위의 시멘트 수출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시멘트산업은 위 기간동안 양적으로 팽창한 것과 아울러 분쇄공장·포장공장·레미콘공장 등의 유통시설이 소비지의 중개기지에 증설되었다.

기술면에서도 1960년대의 시설도입에 수반되는 기술도입과 기술습득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는 자립적인 기술개발수준을 유지하게 되었고, 설비개조를 통한 생산성 향상·품질개선은 물론 시멘트기술의 해외진출을 위한 바탕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때까지는 해외로부터의 시설도입 및 기술도입에 의존하였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제1·2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중 주로 양적인 성장에만 주력하였던 시멘트산업은 1972년부터 1981년까지의 10년 동안 양과 품질이 병행한 균형성장을 도모하였다.

1981년 세계 통계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시멘트 생산실적은 1971년의 20위에서 12위로, 수출은 11위에서 4위로 크게 뛰어올랐다.

한편, 이 기간중에 설비개조 및 연료대체사업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고, 또한 생산성 향상 및 원가절감에도 크게 진력하였다. 이와 동시에 품질관리, 폐열 이용, 공정의 자동화, 수송장치의 확충, 유통설비의 증대, 공해방지설비의 확대 등에도 많은 자금을 투자하였다.

특히 종전에는 전적으로 포장(40㎏ 단위)을 해서만 출하하였던 시멘트를 레미콘공장이 가동하기 시작한 1965년부터는 무포장의 벌크(bulk) 상태의 출하가 시작되었으며 점차 그 양이 증가하기에 이르렀다. 레미콘사업은 1978년경부터 본격화되었는데 1987년에 와서 겨우 내수시멘트 사용량의 50%를 넘은 정도가 되었다.

종래 국내에서 생산한 시멘트는 보통 포틀랜드시멘트 단일종이었기 때문에 수요자들이 선택상 많은 불편을 느꼈다.

그러다가 점차 내수 및 해외로부터의 요청이 있자 1976년부터는 보통 포틀랜드시멘트 이외에 내황산염시멘트, 1978년부터는 고로슬래그시멘트, 1982년부터는 중용열시멘트 등을 생산하기 시작해 시멘트 제품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국내 시멘트산업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1960년대의 자립기반기, 1970년대의 확장기, 1980년대의 재도약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82년 이후에도 양적·품질적 성장이 계속되어 1986년에는 생산능력 3,000만 톤 규모까지 이르렀고, 1987년의 시멘트 생산량은 2,566만 톤에 달하게 되어 세계 시멘트 생산국 중 10위권 내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처럼 생산능력이 급증하게 된 동기는 1984년부터 1985년에 걸쳐 노후화된 소성가마 등 설비의 개조와 제조기술의 발달을 이룩하여 생산성 및 에너지효율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개체가 예상되는 소성가마 17기(약 900만 톤의 생산능력)와 신설 예정의 킬른 2기(약 300만 톤)의 공사계획이 완성된다면 생산능력이 4,000만∼4,500만 톤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근래 시멘트업계에서 특히 활발한 투자를 하고 있는 분야로는 유통기지의 확대, 분쇄설비의 개조, 에너지절약형 공해방지시설, 슬래그시멘트와 알루미나시멘트공장의 신설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특히 슬래그시멘트는 광양제철소의 완공과 더불어 모색된 수쇄슬래그 (연간 60만 톤 생산)의 활용방안으로서 현재의 생산능력 100만 톤 규모에서 1988년에는 270만 톤으로 증가될 것이고, 유니온백색시멘트회사에서는 1987년 8월 1만 2000 톤 규모의 알루미나시멘트 생산시설을 완공한 바 있다.

국내 시멘트 수급 규모의 급속한 증가는 1960년대부터이며 그 뒤 1970년대에 와서는 시멘트의 공급능력에 여력이 생겨 그 일부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국내수요가 총 수요량의 70% 이상을 점유하며 연평균 13.5%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1960년대 23.6%, 1970년대 9.5%, 1980년대 7.6%의 성장률).

한편 내수량에 대한 소비구조도 그 동안 포장시멘트의 비율은 감소되고 있는 데 비해 벌크시멘트의 비율은 계속 증가되고 있으며, 1986년에 와서는 50% 수준을 초과하고 있다.

이것은 시멘트 이용의 기술향상이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앞으로 레미콘의 일반화와 유통시설의 확대가 크게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의 시멘트 수요는 경제개발계획 및 공업화추진, 올림픽대회에 따른 내수의 증가, 해외시장 개발에 따른 수출증대 등으로 인하여 그 규모에 있어서 급신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러한 증가추세가 상당히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도시 중심의 소비비중은 점차 감소될 것으로 생각되며, 이와 반대로 농어촌 지역의 잠재수요는 지속적인 투자시설(사회간접시설·공업화시설·환경시설·복지시설 등)의 확대요인으로 보아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시멘트공업은 불황타개와 수요안전 등의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판매 일원화 제도를 택하고 있었으나 1987년부터 이 체제를 해체하고 각 회사마다 경쟁체제를 취하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는 생산면에 있어 품질향상, 제품의 다양화 등 발전적인 효과가 배가할 것으로 생각되나 유통 및 수송, 또는 수출에 있어서 각 회사 상호간에 불균형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시멘트통계연보』(한국양회공업협회, 1988)
『산업기술』(한국산업은행, 1987)
『시멘트공장시설현황』(한국양회공업협회, 1986)
『한국의 시멘트산업』(한국양회공업협회, 1974)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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