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동지중추부사, 동지돈녕부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완구(宛丘)
  • 의부(儀夫)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산(平山)
  • 사망 연도1809년(순조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지중추부사|동지돈녕부사|호조참판
  • 출생 연도1735년(영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광용 (성심여자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신대우 글씨 미디어 정보

신대우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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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중추부사, 동지돈녕부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의부(儀夫), 호는 완구(宛丘). 할아버지는 우승지 신택하(申宅夏)이며, 의영고판관(義盈庫判官) 아버지는 신성(申晟)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4년(정조 8)에 음보(蔭補)로 선공감역(繕工監役)에 기용되어 사도시주부(司寺主簿)·동부도사(東部都事)·경릉령(敬陵令)을 거쳐, 9년 동안 음성·강동·청도의 수령을 지냈다.

1799년에 학문과 덕행의 훌륭함을 인정받아 원자궁(元子宮)의 요속(寮屬)으로 발탁되어 동궁(東宮: 뒤의 순조)을 보필하였으며, 3년 뒤에 동궁이 세자로 책봉되자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익위에 제수되었다. 순조가 즉위한 뒤에 그 공로로 1801년(순조 1)에 우부승지에 제수되었고 그로부터 수년간 열세 번이나 승지에 임명되었다.

1804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부총관(副摠管), 한성부좌·우윤을 거쳐 동지의금부사가 되었다가 얼마 뒤 공조참판에 제수되고 경연특진관으로 발탁되었다. 1807년에 동지중추부사·동지돈녕부사가 되었고, 1808년에 호조참판의 자리에 올랐다가, 이듬해에 성천에서 죽었다. 젊은 시절에 이덕윤(李德胤)을 비롯하여 이광려(李匡呂)·남건복(南建福)·이영익(李令翊)·이충익(李忠翊) 등과 교유관계가 깊었다. 시문(詩文)과 서예(書藝)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완구유집(宛丘遺集)』이 전하여진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완구유집(宛丘遺集)』

  • - 『평산신씨문헌록(平山申氏文獻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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