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월강(月崗). 평안북도 정주 출생. 아버지는 성철(誠澈)이며, 어머니는 전성일(全成日)이다.
1935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 후쿠오카고등학교(福岡高等學校) 문과를 마친 뒤, 같은 해 동경제국대학 법문학부 법과에 입학하였으나, 1944년 일본 학병으로 중국전선에 배치된 뒤 팔로군지구로 탈출,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항일전쟁에 참가하고 있던중 광복을 맞았다.
1946년 초 조선의용군 동만지대를 탈출하여 고향으로 귀환하였고, 북한 공산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7개월간 강제노역의 감옥생활을 하였으며, 1949년 1월 월남하였다.
1949년 3월 서울중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강사, 성균관대학교·한양대학교 교수를 거쳐 1975년까지 경희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는 등 약 20년간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활동을 계속하였다.
한편, 언론계에도 몸을 담아 1954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시작으로 1974년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그만둘 때까지 약 15년간 평론의 필봉을 놓지 않았으며, 그 업적으로 서울시문화상(언론 부문)을 받았다. 그 밖에도 1961년 2월 서울특별시 마포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래 제5ㆍ제8ㆍ제10ㆍ제11대에 걸쳐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였다.
1980∼1981년에는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위원, 1984∼1988년에는 북한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54년부터 죽을 때까지 흥사단활동을 하였다. 일생동안 언론계와 대학, 그리고 정계활동을 통하여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지식인이었다.
후에 반공과 문명비평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 독설의 필봉이 누그러지자 ‘신상초는 죽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죽는 날까지 현실을 바로 보려고 노력한 자유주의자였다. 저서로는 『현대정치의 제문제』·『중국공산주의운동사』·『탈출』·『사상과 여론과 정치』 등이 있고, 역서로는 『팡세』ㆍ『현대미국사』ㆍ『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