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바다 건너 무안군과 목포시, 서쪽은 황해, 남쪽은 다도해, 북쪽은 영광군의 낙월군도(落月群島)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5°05′∼126°23′, 북위 34°04′∼35°12′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655.68㎢이고, 인구는 4만 329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12개 면, 343개 행정리(14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신장리에 있다.
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각 섬들에는 높은 산은 적지만 구릉성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다. 해역은 대륙붕 지대이고 수심은 15m 안팎으로 얕아서 갯벌을 간척한 평지가 많다. 큰 섬으로는 안좌도(安佐島) · 압해도(押海島) · 도초도(都草島) · 임자도(荏子島) · 암태도(巖泰島) · 증도(曾島) · 장산도(長山島) · 하의도(荷衣島) · 대흑산도(大黑山島) 등이 있다.
연안의 해변은 굴곡이 심하고 수심이 얕아서 대형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곳도 있다. 리아스식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 천연의 어업기지인 흑산도 근해에서는 많은 고기가 어획된다. 서해안을 남하하는 연안수의 냉수대와 서해 중부를 북상하는 난류가 이루는 조경(潮境)이 가까이 발달하여, 해마다 4∼7월이면 짙은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 선박의 항해에 어려움을 준다.
연평균 기온 14℃, 1월 평균기온 1℃, 8월 평균기온 26.1℃이다. 연 강수량은 1,483㎜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나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도초면 우이도, 흑산면 대흑산도 · 하태도 등에서 빗살무늬토기 · 조개더미 등이 발견되었다. 전라남도의 내륙지방에서 발견되지 않은 이러한 유물 · 유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육지보다도 훨씬 이전에 선사문화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지도읍과 안좌면 · 압해읍 · 흑산면 · 장산면 등지의 크고 작은 섬에서 고인돌과 간돌검 · 민무늬토기 · 조개더미 등이 발견되고 있다. 백제시대에 이 지역의 섬들은 물아혜군(勿阿兮郡) · 도강군(道康郡) · 아차산군(阿次山郡) · 거지산현(居只山縣) 등에 분속되어 있었다.
신라에 병합된 이후 757년(경덕왕 16) 물아혜군은 무안군(務安郡)으로, 아차산군은 압해군(壓海郡)으로, 거지산현은 안파현(安波縣, 혹은 安陵縣)으로 개칭되어 여러 섬을 분령하였다.
신라 진성여왕대 이후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왕건이 나주 지역의 쟁패전을 전개할 즈음에는 이 섬들이 대체로 친후백제적 태도를 보였다. 그리하여 고려의 건국 후 이에 따른 심한 견제를 받게 되어 나주목과 영광군에 분속되는 조처를 당하였다.
940년(태조 23) 안파현은 장산현(長山縣)으로 개칭되었으나 대체로 나주목과 영광군에 분속되었다. 이들 섬은 계속된 행정구획의 변화와 함께 수시로 그 소속이 변하였다. 1232년(고종 19)에는 쟈랄타이[車羅大]의 몽고군이 압해도를 공략했다가 도민의 항거로 격퇴된 일이 있었다.
고려 말에 이르러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섬 주민들을 육지로 옮겨 살게 하는 공도화정책(空島化政策)이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흑산도 주민들은 영산포 지역에, 장산도 주민들은 나주 남쪽에 옮겨 살게 되었다. 다른 섬의 주민들도 육지로 옮겨가 섬지방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고려 말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도서 지역에는, 해안 지역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세종대를 전후하여 주민이 서서히 이주하였다. 대부분의 섬은 나주목 · 무안군 · 영광군 · 진도현 등의 월경지로 분속되어, 독립된 행정치소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한편, 이들 섬에 대한 내수사 · 사복시 · 각아문 · 각궁방의 토지 점탈이 계속되어 도서의 거의 대부분 지역이 분할 소유되는 형편에 이르렀다. 1729년(영조 5)에는 이들 섬을 통할할 행정치소의 설립이 건의되기도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궁방의 토지 점탈은 이후 오랜 토지분쟁의 요인이 되었다.
이 밖에 국마장(國馬場)이 압해도 · 자은도(慈恩島) · 장산도 등지에 설치되었다. 1682년(숙종 8)에 지도진을, 1810년(순조 10)에 임자진을 두었고, 흑산도 등에도 진을 설치하였다. 한편, 1801년(순조 1) 신유사화로 정약전(丁若銓)이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그는 흑산도의 어류를 관찰하여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하였다.
1895년의 관제 개혁으로 지도군(智島郡)을 신설하여, 이제까지 나주목 · 영광군 · 만경현 · 부안군 · 광주군 · 해남군 · 진도군 · 무안군 등에 분속되어 있던 섬지역을 16개 면으로 설정하여 관할하게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도군이 폐지되면서, 지도군과 완도 · 진도군 등에 속해 있던 팔금 · 도초의 섬이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나머지 지역은 영광군과 전라북도 옥구군(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등에 속하게 되었다.
1876년(고종 13)에는 최익현(崔益鉉)이 대원군의 정책을 반대하다가 흑산도에 3년 간 유배되었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장산면에서는 장병준(張柄俊), 암태면에서는 박복영(朴福永) · 김상수(金祥洙) 등이 각각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4년 하의도에서 소작농민들이 일본인 지주 도쿠다[德田] 및 한국인 지주 박춘금(朴春琴)과의 사이에서 농민조합을 결성하여 대항하였다. 쟁의를 주도한 농민은 징역을 가는 등 소작쟁의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되다가, 광복 후인 1950년 국회에서 유상반환결의안(有償返還決議案)이 통과됨으로써 겨우 해결을 보았다.
암태도에서는 1922년 8월 암태도소작인회가 결성되어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였다가, 주동자인 서태석(徐邰晳) · 서창석(徐昌錫) 등 12명이 구속되었다. 이에 격분한 소작인들이 목포에 나가 경찰서와 재판소를 포위하고 농성하는 시위를 벌임으로써, 소작쟁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62년 도서 지역의 행정구역에 약간의 변경이 있었다. 1969년에는 무안군에 속했던 여러 섬지방을 분리하고 신안군을 신설하였다. 그리고 군청을 목포시에 두고 11개 면을 관할하게 하였다. 1970년대 면에서 직접 관할하기 어려운 지역에는 출장소를 두어 행정의 원활을 기하였다. 1980년 지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지도 · 무안 · 해제 사이에 연륙공사를 끝내 육지화하였다. 1983년 증도출장소가 증도면으로, 상하태출장소가 신의면으로, 팔금출장소가 팔금면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진도군 조도면 만재도리가 흑산면에, 진도군 조도면의 고사도(高沙島) · 평사도(平沙島) · 송도(松島)가 신의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흑산면에 홍도출장소가 신설되었다가 1991년에 폐지되었다. 1988년에는 증도면에 병풍리출장소가 신설되고, 1989년에 흑산도 대둔도출장소와 압해면 고이도출장소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1990년에 장산면에 속한 소저도 · 작도 · 송도 · 회어도 · 골도 · 저도가 진도군 진도읍에 편입되었다. 1991년에는 흑산면 홍도출장소가 폐지되고 홍도관리사무소로 승격되었다. 특히, 1976년지도읍 방축리도덕도 앞바다에서 이른바 ‘신안해저유물’이라 이름 붙은 중국 송 · 원대의 도자기가 다량으로 인양되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2011년 군청을 압해읍 신장리로 이전하였으며, 2012년 압해면이 압해읍으로 승격되었다.
흑산면의 가거도패총(전라남도 기념물, 1990년 지정)과 신안 흑산 진리 지석묘군, 상태도 · 하태도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안 흑산 진리 지석묘군은 199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 · 유물으로는 안좌면의 신안 방월리 안좌 지석묘(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장산면 대리와 압해읍 대천리 · 동서리 등의 고인돌 · 홈자귀 · 돌도끼 · 석검 · 돌화살촉, 안좌면의 돌도끼 · 홈자귀 등이 있다. 압해읍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이 있다. 압해읍과 장산면에서는 삼국시대의 고분인 독무덤과 돌방무덤이 발견되었다.
산성지로는 고려 때 축조했다는 흑산면의 흑산성지, 비금면의 성치산성지(城峙山城址)가 있다. 압해읍 고이리에는 왕건의 숙부 왕방이 세운 왕산성지(王山城址)가 있으며, 삼한시대의 성곽이라고 전하는 송공리성지(宋孔里城址) 등이 있다. 그 밖에 신의면에 임진왜란과 관련된 안산성지(案山城址), 장산면 다수리에 대성산성지(大成山城址)가 있다.
사적으로는 지도읍 방축리에 수만 점의 국보급 유물이 인양된 신안 해저 유물 매장해역(사적, 1981년 지정)이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1993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팔금면의 신안 읍리 삼층석탑, 흑산면의 신안 흑산 진리 무심사지 삼층석탑과 석등(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94년 지정)이 있다. 장산면 도창리에는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유교 유산으로는 1394년(태조 3)에 창건되었다는 흑산면의 신안향교와 1438년(세종 20)에 창건된 지도읍 읍내리의 지도향교가 있다. 그리고 태천리의 연계사(蓮溪祠), 임자면 이흑암리의 화산단(華山壇)이 있다.지도향교는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고가옥으로는 안좌면 읍동리의 신안 김환기 가옥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1988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된 장산면의 장산도들노래, 1988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흑산면의 가거도멸치잡이노래 등이 있다.
천연보호구역으로 흑산면 홍도리의 홍도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965년 지정), 비금면 고서리의 칠발도 바닷새류(바다제비 · 슴새 · 칼새) 번식지(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흑산면 가거도리의 구굴도바닷새류(뿔쇠오리 · 바다제비 · 슴새) 번식지(천연기념물, 1984년 지정)가 있다.
흑산도 진리의 초령목, 장산면에 신안 도창리 노거수(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가 있다.
1842년(헌종 8)에 어사 · 감찰사 · 군수 등의 선정을 추모한 선정비군(20기)이 지도읍 읍내리에 있다. 흑산면 예리에는 1876년에 최익현이 유배 와서 바위에 글을 음각한 지장암(指掌嵒)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옛날부터 있었고 독립국가였다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지도읍 읍내리에 지도향교(智島鄕校)가 있다. 이 향교는 지도군이 나주목에서 분리된 뒤 1896년 1군 1향교 건립 원칙에 따라서 세워졌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11년 지도초등학교(뒤에 중앙초등학교가 됨)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21년 안좌초등학교와 자은초등학교, 1922년 암태초등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1950년 장산중학교, 1952년 안좌중학교, 1958년 지명중학교가 설립되었다. 1974년 실업계인 안좌종합고등학교가 세워졌고, 1978년 인문계인 도초고등학교가, 1982년 실업계인 지명종합고등학교와 압해고등학교 등이 각각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9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6개교가 있다.
문화행사로는 매년 10월 25일에 신안군민의 날 행사인 청파제(靑波祭)가 거행되고 있다.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전라남도 도서 지역 일대에 전승되는 안좌면의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뺑돌이치기’라고 하는 일종의 팽이놀이가 있다. 팽이 종류에는 뺑돌이 · 활뺑돌이 · 뺑이 · 뺑오리 등 4종류가 있다.
뺑돌이는 지름 5㎝ 정도의 통나무를 잘라 원추형으로 깎은 팽이이다. 활뺑돌이는 뺑돌이 2개를 이어 놓은 것과 같은 모양인데 상하 구별 없이 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뜰에서 채로 쳐서 돌린다.
뺑이는 뺑돌이와 모양이 거의 비슷하나 육각원추형이다. 특이한 것은 육각의 각 면에 1∼6의 숫자를 1자씩 써 놓았으며, 위쪽 중심부에는 봉(棒)을 세웠다. 이 팽이는 뜰에서 채로 치는 것이 아니고 방 안에서 돈이나 담배를 걸고 내기할 때 쓴다. 봉을 엄지나 인지로 잡아 돌려서 팽이가 돌다가 멈추면 앞에 나타난 숫자에 따라 승부를 결정한다.
뺑오리는 뺑돌이와 같은 모양이나 위쪽 중심부에 뺑이처럼 봉을 세워 만든다. 이 팽이는 아주 작게 만들어 주로 방 안에서 돌리며 논다. 이 밖에 임자면의 연띄우기 · 광대놀이 · 앙감질하고놀기 등의 민속놀이가 전한다.
신안에서는 당제가 전승되고 있다. 해도(海島)의 특성을 지닌 지역으로 당신과 그 신체가 매우 다양하며,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상당제(上堂祭)와 하당제(下堂祭), 또는 상당제와 갯제(둑제) 같은 이중 제의는 이 고장의 여러 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원당제(二元堂祭)의 집제를 보면, 당할머니인 여신을 모신 상당(윗당)에는 주로 남성제관이 제의를 집전한다. 반면 당할아버지인 남신이나 잡신, 그리고 용신(龍神)을 모시는 갯제와 거리제(路祭)인 하당제에는 여성이나 무당, 그리고 마을의 공인(公人)들이 제주가 되어 제를 지낸다. 바로 이런 점이 이 고장 당제의 특색으로 지적되고 있다.
상당에는 곡신(穀神)과 생산신(生産神)인 지모신(地母神)을 모신다. 원해 지역은 풍어와 안전 항해를 위하여 산신 · 쥐신 · 자물쇠신을 함께 모신다. 또, 하당에는 액막이 남신과 수부(水府)의 용신을 모신다. 이와 같은 당제를 지낼 때 가면놀이 · 뜀뛰기 · 씨름 · 줄다리기 등의 민속놀이를 함께 벌이는 경우가 많다.
신안군은 도서지역이 많아 예로부터 용(龍)에 관련된 설화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자은용추의 용이야기」 · 「태이용추의 용이야기」 · 「회룡산 선녀봉이야기」 · 「복룡 떡시루바위전설」 등이 있다.
「자은용추의 용이야기」는 자은도 중심에서 6㎞ 떨어진 백산리 마을 뒤쪽의 용소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못은 맑은 물이 1년 내내 끊이지 않고 솟아나 수백 년 동안 큰 한발에도 마른 적이 없었다.
옛날에 이 못에는 승천을 앞둔 부부 용이 살았다. 그런데 서해의 심한 바람이 불어 바닷가의 모래가 계속 날아와 지낼 만하던 못이 자꾸만 좁아졌다. 이에 참을성 적은 암용이 보다 넓은 곳으로 이사하기를 숫용에게 청하였다.
숫용이 이를 거절하자, 암용은 토라져서 혼자 이웃의 비금성 용소로 건너가 버렸다. 얼마 뒤 숫용이 승천하면서 암용 생각이 나 못물이 솟도록 있는 힘을 다해 꼬리질을 하였다. 이 때 용소가 생겨 물이 그치지 않고 치솟았다고 전한다.
「태이용추의 용이야기」는 장산면 다수리와 성수골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무인도에 있는 용추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에 장산도 사람들이 이 무인도에 와서 해초를 땄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 번개가 일면서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서둘러 마을로 되돌아오다가 바다에서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 광경을 처음 발견한 마을 처녀가 “이무기가 하늘로 오른다.”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승천하던 용이 이무기가 되어 바다에 뚝 떨어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 얼른 장산도로 가려 했으나 이무기가 배를 감고서 “부정한 여자가 큰소리치는 바람에 영영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저 섬에 살 터인즉 소리를 지른 처녀를 내려 놓으라.”고 하였다. 그 처녀는 할 수 없이 이무기에게 무인도섬에서 갇혀 평생을 홀로 살다가 죽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 주고, 이 섬 이름을 할미섬으로 불렀다고 한다.
「회룡산 선녀봉이야기」는 용왕의 아들이 회룡산에 와서 도를 닦던 중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 춤추다가 용왕의 노여움을 사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복룡 떡시루바위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복룡리에 말타기를 아주 좋아하는 한 장수가 살았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장수가 되는 것보다 선비가 되기를 원하여 아들과 내기를 하였다.
어머니가 이기면 아들이 글공부를 하고, 어머니가 지면 말 한 마리를 사주는 조건으로, 어머니는 떡 한 시루를 만들고 아들은 말타고 섬 한 바퀴를 도는데 누가 빠른가를 겨루는 시합이었다. 마침내 내기가 벌어져, 아들은 말을 탔고 어머니는 떡을 찌려고 불을 땠다.
그런데 어머니는 잘못하여 불이 치마에 옮겨 붙는 바람에 타죽었고, 떡시루와 함께 돌로 변하였다. 섬을 돌아온 아들은 이 사실을 알고서 바위를 부둥켜안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지쳐 죽을 때까지 말을 달리다가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지금도 복룡리에는 떡시루바위가 있다.
이 밖에도 용처럼 비스듬히 누워 있으면서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베면 해질녘에 “아이고 내 팔이야.”라고 말한다는 용나무에 얽힌 전설, 400여 년 전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하는 「용출암전설」이 있다. 그리고 흑산면 진리꼼돌바위, 압해읍 동서리벼락바위, 안좌면 산두리벼락바위 등 바위에 얽힌 전설 등이 있다.
이 고장에 전래되는 민요로는 흑산면 심리마을의 「둥당기타령」 및 몇 가지의 서정적인 민요가 전한다. 「둥당기타령」은 부녀자들이 마을의 잡귀를 물리치고 무병과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기 위해 박소리와 북소리를 내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주로 명절 때 온 마을 여인들이 넓은 마당이나 큰 방에 둥글게 앉아 항아리에 물을 담고 놋쇠를 놓은 뒤 박바가지를 덮는다. 그리고는 그 위에다 활시위를 당기거나 바가지를 쳐서 “둥둥 당당” 소리를 내는 것이다. “둥당기다 둥당기다 당기 둥당기 둥당기다”라는 후렴이 반복된다.
이 노래의 사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사졸래 내사졸래/활방구 장단이 내사졸래/활방구 장단을 썩 짊어지고/대사 중천을 썩 들어가니/차돌같이 먹은 마음/칼날같이 물러선다. 둥당기다 둥당기다 당기 둥당기 둥당기다.”
비금면 죽림리 상암마을에서 전승되는 「밤달애노래」는 죽은 사람의 혼백과 상주를 위로하기 위해 밤을 새며 남사당패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이때 대체로 춤과 놀이가 따른다. 노래의 사설은 슬프기보다는 해학적이라서 장례의 무거운 분위기를 밝게 해준다.
그 가사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리 경사 저리 경사 뚝떨어진 경사에 사당년 새끼 똥구멍에 술비벼넣고 배당구 연장으로 용수 박아라. 잘했다. 매화로구나 서울서방님이 오셨다가 서운해 섭섭하여 막걸리 스물일곱동을 들어마시거나 말거나.”
고하도에는 「탕건바위노래」라는, 기우제에서 농악을 울리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 “얼얼러 상사듸어 얼얼러 상사듸어/비야비야 내려라 얼얼러 상사듸어/비가 오시지 않는다면/금도 캐고 보화도 캐네 얼얼러 상사듸어/나랏님이 숨겨놓은/금은보화 찾아가세 얼얼러 상사듸어…….”
이와 같은 의식요 이외에도 인간의 절실한 정한(情恨)을 담은 많은 서정적 민요들이 전승되고 있다. 흑산도에서 이어져 오는 서정적 민요 한 부분을 소개하면 “성재성재 말을 타고 고개고개 넘어가니/언치리로 집을 지어 꼬사리로 대문 달라/대문 밖에 앉은 처녀 누 간장을 녹일려고/그리 곱게 생겼느냐/생김생김 생긴댄 하나님딸로 생겼구나.”이다.
도서 지방이므로 경지 면적이 협소하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도 다른 지역보다 낮은 편이다. 대부분의 주민은 농업과 수산업을 겸한다. 총경지 면적은 211.10㎢이다. 이 가운데 논이 103.89㎢로 51%이고, 밭이 107.21㎢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84.47% · 보리 5.20% · 고구마 · 유채 · 양파 · 마늘 등이다. 부근 해역은 조기 · 갈치 · 고등어 · 홍어 · 장어 · 새우 · 병어 등이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다. 그리고 섬 주변의 간석지에서 김 · 미역 · 굴 · 고막 등의 양식업과 제염업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군 일대의 섬 주변은 수심이 얕고 조차(潮差)가 비교적 커서 개펄이 넓게 드러나므로 간석지가 많아서 예로부터 많은 소금을 생산하였다. 특히 190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소금을 생산하였다. 여기서 나는 천일염은 일제강점기에는 쌀 · 면화와 함께 전라남도 삼백(三白)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였다.
현재 전라남도 소금 총생산량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자은도의 욕지, 안좌도의 탄동, 지도의 방축 등 염전 600여 곳이 있다. 천일제염으로 생산되는 소금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에 밀려 생산량이 차츰 줄고 있고 염전 면적도 축소되고 있다.
한편, 지도면에서는 양질의 고령토가 생산되고, 유리의 원료인 규사가 임자면 · 비금면 · 암태면 · 자은면 · 안좌면 · 도초면 등 해변에 다량 분포해 있다.
그리고 소흑산도의 굴비, 흑산도의 홍어, 임자도의 전장포(前場浦) 새우 등은 특산물로 유명하다. 전장포 근해에서 잡은 새우로 만든 전장포 새우젓은 그 맛이 아련하면서도 혀끝에 담백한 풍미가 감돌아 전국 최상품이다. 흑산항은 어업 전진기지로 지정되어 급유 · 급수 · 제빙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이 군은 작은 섬들이 광활한 해역에 산재해 있어서 정기시장을 통한 상업 활동이 어려운 형편이다. 다만, 정기시장으로 무안군 해제반도와 맞붙어 있는 지도읍 읍내리의 지도장이 3·8일에 열린다.
주요 거래품목으로 마늘 · 고추 · 유채 · 참깨 등의 농산물과 천일염 · 고막 · 김 · 미역 · 굴 · 홍어 · 꽃게 등의 수산물이 거래된다. 대부분의 섬에서는 정기여객선과 연락선에 의존해 지도읍과 목포의 시장을 이용하므로 생활용품이 귀하고 물가가 육지보다 훨씬 비싸다.
교통은 지도∼무안 간 국도만 있어서 매우 불편했으나 2008년 5월 개통된 압해대교를 통해 목포와 연결되었고, 자은도와 장산도를 잇는 연도교들이 완공되어 점차 편리해지고 있다. 압해도의 송공항에서 광주까지 직행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지도와 목포에서 섬 지역에 매일 수회씩 운항하는 정기여객선이 있다. 그 밖의 섬들에서는 연락선이 한 달에 5회 정도 왕래하며, 목포∼홍도 간을 쾌속정이 운항하고 있다. 해상교통의 안전을 위하여 소흑산도 · 홍도 · 대노록도 · 죽도 · 칠발도 · 가사도 등에는 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상공원지역으로 유명한 이곳은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를 이룬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수려한 다도해를 지나면 암태도의 추포해수욕장, 비금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 도초면 오류리의 시목(枾木)해수욕장 등이 나타나며, 비금도에는 서산사라는 절이 있다.
비금면 구림리와 지당리에 걸쳐 있는 비금 명사십리해수욕장은 모래 해안이 바다와 북서쪽으로 면하여 4㎞ 정도 발달하였다. 바닷물이 맑고 모래가 고우며 해수욕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여건이 좋아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이 찾아온다.
백사장 뒤쪽에 바람에 밀려와 쌓인 모래가 해안사구를 이루었고, 해송과 해당화가 한데 어울려 바닷가의 정취를 한층 더해 주고 있다. 해수욕장 옆으로 잇닿아 있는 바다에서는 돔 · 농어 · 장어 등이 잡히는 낚시터가 있어서 사철 낚시꾼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목해수욕장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병풍을 둘러친 듯이 포근하게 감싼 지형을 이루고 있다. 타원형의 길고 넓은 백사장에는 군데군데 모래성이 쌓여 있으며, 이 곳에 서서 바라보면 산과 바다의 풍경이 잘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물이 맑고 바다 속의 경사도 완만해 해수욕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 해수욕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비금도를 지나 흑산도 동쪽 6.4㎞ 떨어진 곳에 있는 영산도의 ‘영산팔경’은 특히 기암절벽이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주위 경관이 뛰어나다. 흑산도 서쪽의 홍도는 수려한 단애절벽(斷崖絶壁)이 장관을 이뤄 남해 중의 ‘소해금강’이라 불린다. 따라서 이 섬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이다.
홍도의 관광은 제1경 홍도 남문부터 시작하여, 죽정리 앞바다에 이르면 장군바위 · 제비바위 · 병풍바위 · 석화굴 · 돔바위 · 수중탑 · 시랑바위 등의 경관을 거치게 된다. 이 밖에도 홍도해수욕장과 홍도 낙조 등은 절경을 이루어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이 곳을 찾는다.
군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79.85㎢, 인구 4,92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고려시대까지 도강군 또는 무강군(武康郡)이라 하였다. 1419년(세종 1)에 별부진(別府鎭)을 설치했다가 1895년 진을 폐지하고 지도군을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도군이 폐지되면서 무안군 지도면에 병합되었다. 1969년 신안군에 속하였고 1980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증도출장소가 증도면으로 승격되어 분리 독립하였다.
남부에 봉황산(鳳凰山), 북부에 삼암봉(三巖峰)이 있다. 유인도 6개, 무인도 46개의 도서로 이루어졌으며, 주요 섬으로 지도를 비롯해 사옥도(沙玉島) · 선도(蟬島) · 어의도(於義島) 등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유채 · 참깨 등이다. 해안의 넓은 간석지에서 김 양식과 소금 생산이 활발하다. 연안 바다에서는 농어 · 민어 등의 어획이 많다. 광물로는 규사와 고령토가 널리 분포해 있다.
교통으로는 지도읍∼해제반도를 잇는 연륙도로가 읍의 중앙을 지나며, 정기여객선이 인근 도서를 운항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감정리와 광정리에 고인돌이 1기씩 있으며, 읍내리에 지도향교와 비석거리가 있다.
읍내(邑內) · 봉(鳳) · 어의(於義) · 감정(甘井) · 내양(內楊) · 광정(廣井) · 탄동(灘洞) · 당촌(堂村) · 자동(自東) · 태천(台川) · 선도(蟬島) 등 11개 법정리가 있다.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45㎢, 인구 3,02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수항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지형이 고슴도치처럼 생겼다 하여 도초도라 하였다. 1888년 해남군에 속했다가 1894년 다시 환원되었다.
1896년 해남군에 이속되었으며 1897년 지도군에, 1903년 진도군에 편입되어 도초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이속되었다. 1962년 흑산면의 우이도리를 편입하였고, 1969년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이 면은 동부를 따라 남쪽으로 용당산(龍塘山) · 금성산(錦城山) · 큰산이 있다. 유인도 4개와 무인도 60개로 구성되었다. 주민이 100명 이상 거주하는 유인도는 도초도 · 우이도(牛耳島) · 동소우이도(東小牛耳島) · 서소우이도(西小牛耳島) 등이다.
도초도는 원형 모양의 섬으로, 산악이 적고 평야가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고구마 · 마늘 등이다. 수산증식사업으로 꽃게 양식장 11곳이 유명하며 천일제염도 활발하다. 축산업으로 산양 및 바다오리를 사육한다. 지하자원으로 규사가 다량 채광된다.
교통은 정기여객선과 연락선을 이용하며 경치도에 무인등대가 있다. 문화유적은 외남리에 만덕사(萬德寺), 만년리에 만년사(萬年寺)가 있다. 그리고 섬 곳곳에는 특이한 장례 풍속으로 2차장의 전형적 장법인 초분이 남아 있다. 오류리에 시목해수욕장이 있으며, 관내 일부 지역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다.
수항(水項) · 죽련(竹連) · 고란(古蘭) · 이곡(二谷) · 발매(發梅) · 지남(指南) · 외남(外南) · 오류(五柳) · 만년(萬年) · 수다(水多) · 우이도(牛耳島) 등 11개 법정리가 있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1.72㎢, 인구 3,95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산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새가 나는 모양이라 하여 비금도 또는 비금면이라 하였다. 1896년에 지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1969년에는 신안군에 속하게 되었다.
이 면은 북부에 성치산(城峙山)이 있다.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3개로 형성되었다. 주민이 100명 이상 거주하는 유인도는 비금도 · 수치도(水雉島) · 상수치도(上水雉島) 등이다. 면의 중심이 되는 비금도는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은 섬이다.
동쪽으로 안봉산맥(雁峰山脈)이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선왕산맥(仙王山脈)이 중첩하여 기복하면서 사이사이에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동남 해안에 19.6㎞의 방조제를 쌓아 약 1,983ha의 농토와 약 495ha의 염전이 개척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마늘 · 땅콩 · 무 · 배추 등이다. 가산리를 중심으로 한 천일제염이 활발하여 생산량이 군 내 제1위이다. 강달어 산지로 유명하며, 원평 꽃게는 특산품이고 김 · 미역 양식업도 활발하다. 지하자원으로 납석과 규사가 많이 난다.
교통은 정기여객선과 도항선을 이용하여 인근 도서를 내왕한다. 칠발도에는 유인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광대리에 성치산성지 · 광대고분 · 봉수대, 고서리에 서산사(西山寺)가 있다. 칠발도에는 바다쇠오리 · 슴새 · 바다제비 · 칼새 등 희귀 조류가 서식한다. 지당리에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다.
덕산(德山) · 지당(池堂) · 구림(舊林) · 광대(光大) · 용소(龍沼) · 도고(道古) · 수치(水雉) · 신원(新元) · 고서(古西) · 죽림(竹林) · 내월(內月) · 수대(水大) · 가산(佳山) 등 13개 법정리가 있다.
군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33.26㎢, 인구 1,81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태동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1896년 지도군에 편입되어 하의면의 일부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었으며, 1969년 신안군에 이속되었다. 1974년 하의면 상 · 하태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에는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의 일부인 고사도(高沙島) · 평사도(平沙島) · 송도(松島) 등을 편입하면서 신의면이 되었다. 이 면은 유인도 4개와 무인도 19개로 이루어졌다. 유인도는 상 · 하태도와 기도(箕島) · 송도 · 고사도 · 평사도 등이다.
주요 농산물로 쌀 · 보리 · 참깨 · 유채 · 양파 등이 생산된다. 연안에서는 김을 양식하며, 천일염은 이 지방의 주요 특산물이다. 인근 목포시와는 1일 생활권에 속하지만 개발이 부진하여 교통이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상태서리에 안산성지(安山城址)가 있다. 또한, 이 곳은 300여 년 동안 계속된 하의삼도(하의도 · 상태도 · 하태도)의 토지분쟁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상태동(上台東) · 상태서(上台西) · 하태동(下台東) · 하태서(下台西) · 고평사도(高平沙島) 등 5개 법정리가 있다.
군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59.97㎢, 인구 3,44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동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지좌도(只佐島) 또는 기좌도(箕佐島)라 하였다. 1896년 기좌도 · 안창도 · 자라도는 기좌면이라 하여 지도군으로, 팔금도는 완도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좌면이 무안군으로 편입되었다.
1917년 안창면(安昌面)과 팔금면(八禽面) 전역을 병합하여, 안창과 기좌의 이름을 따서 무안군 안좌면으로 고쳤으며, 1969년 신안군에 귀속하였다. 1971년에는 옛 팔금면 지역에 팔금출장소가 설치되어 1983년 팔금면으로 분리되었다.
남부에 후동산(後洞山) · 큰산 등이 있고 유인도 6개와 무인도 44개로 이루어졌다. 주민 500명 이상이 거주하는 유인도는 안좌도 · 자라도(者羅島) · 반월도(半月島) 등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마늘 · 담배 등이다.
축산업으로 한우를 많이 키우며, 무인도의 목장화가 추진되어 염소와 바다오리를 사육하고 있다. 연안 해역에서 김 · 미역 · 굴 · 새우가 많이 나며, 특히 김 생산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탄동리 부근에서는 천일제염이 활발하다. 그리고 지하자원으로 양질의 규사가 채광된다.
교통은 인근 도서를 운항하는 정기여객선과 연락선을 이용하며, 변도에는 무인등대가 있다. 문화유적은 방월리에 고인돌이 있다.
읍동(邑洞) · 탄동(炭洞) · 산두(山斗) · 대(大) · 시서(枾西) · 마명(馬鳴) · 신촌(新村) · 복호(伏虎) · 자라도(者羅島) · 존포(存浦) · 향목(香木) · 내호(內湖) · 대우(大芋) · 방월(方月) · 여흘(如屹) · 남강(南江) · 대척(大尺) · 창마(唱馬) · 한운(閑雲) · 마진(馬津) · 금산(琴山) · 소곡(所谷) · 박지(朴只) · 반월(半月) · 구대(舊垈) 등 25개 법정리가 있다.
군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3.23㎢, 인구 2,23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단고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암타도(癌墮島) 또는 암태면이라 하였다. 1896년 지도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으로 편입되었다. 1917년 선도면(蟬島面)의 당사리를 병합하였으며, 1969년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동쪽에 박달산(朴達山), 서쪽에 승봉산(升峰山)이 있고 유인도 4개와 무인도 42개로 이뤄져 있다. 유인도는 암태도를 비롯하여 추포도(秋浦島) · 당사도(唐沙島) · 초란도(草蘭島) 등이다. 암태도 중앙에 승봉산(昇峰山, 356m)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마늘 · 참깨 등이다. 연안 해역에서는 민어와 송어의 어획량이 많고, 김은 이 지방의 특산물로 연간 약 32만여 속이 생산된다. 106ha의 염전에서 천일염이 생산된다. 그리고 추포도에서 양질의 규사가 채광된다. 이색적인 사업으로는 고양이단지가 조성되어 쥐 없는 마을 육성에 힘쓰고 있다.
인근 도서와의 교통은 정기여객선과 연락선을 이용하며 암태도에 무인등대가 있다. 문화유적은 수곡리에 영만사(靈滿寺)가 있다. 그리고 추포도에는 해수욕장이 있다.
단고(短庫) · 수곡(水谷) · 도창(道昌) · 와촌(瓦村) · 오상(五相) · 기동(基洞) · 송곡(松谷) · 신석(新石) · 당사(唐沙) 등 9개 법정리가 있다.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67.55㎢, 인구 6,66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학교리이다. 본래 압해면으로 나주에 속한 고을이었다. 1896년 지도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속하였다. 1917년에 나불리를 영암군 삼호면으로, 눌도리와 달리를 무안군 이로면으로 편입시켰고, 선도면의 고이리 · 매화리를 편입하였다. 1969년에는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2012년 압해읍으로 승격되었다.
이 읍은 유인도 8개와 무인도 60개로 이루어졌다. 주민 100명 이상이 거주하는 유인도는 압해도 · 효지도(孝地島) · 가란도(佳蘭島) · 고이도(古耳島) · 매화도(梅花島) · 마산도(馬山島) · 노대도(路岱島) 등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콩 · 고구마 · 잎담배 등이다. 한우의 사육두수는 군 내 제1위이다. 천일염 제조와 김 양식이 활발하다.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흑산면에 이어 군 내 2위이다. 지하자원으로 양질의 고령토가 채광된다. 교통은 무안군 망운면에서 신장리까지 연결되는 지방도가 있으며, 인근 도서와는 정기여객선과 연락선을 이용한다.
문화유적은 동서리에 고인돌과 선돌, 송공리에 송공산성(宋孔山城), 고이리에 왕산성지가 있다. 그리고 대천리와 신장리에는 조선시대의 마장(馬場)이 있었다. 가룡리의 세칭 정승동에는 압해정씨(押海丁氏)의 시조인 대양군(大陽君)의 묘가 있고, 복룡리 남촌에는 압해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학교(鶴橋) · 동서(東西) · 대천(大川) · 송공(宋孔) · 복룡(伏龍) · 가룡(駕龍) · 고이(古耳) · 신룡(新龍) · 분매(盆梅) · 신장(新庄) · 장감(長甘) · 가란(佳蘭) · 매화도(梅花島) 등 13개 법정리가 있다.
군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47.25㎢, 인구 3,5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진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낮은 산이 각기 떨어져 있으므로 임자섬 또는 임자도라 하였다. 1896년 임자면이라 하여 지도군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이속되었고, 다시 1969년에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이 면은 유인도 3개와 무인도 62개로 구성되었다. 주민 200명 이상이 거주하는 섬은 임자도를 비롯하여 재원도(在遠島) · 수도(水島) 등이다. 임자도에는 불갑산(佛甲山, 224m) · 삼학산(三鶴山, 165m) · 대둔산(大屯山, 320m) 등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참깨 · 유채 · 땅콩 등이다. 가축으로는 한우의 사육두수가 많다. 연안 해역에서는 병어 · 부세 · 민어 · 새우 등이 많이 잡힌다. 특히 전장포 새우는 전국 최상품으로 알려진 특산물이다. 제조업으로 천일염이 성하여 염전 면적이 158.6ha에 달한다. 지하자원으로 양질의 규사가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대둔산에 고려시대 성벽이 있으며, 임행재가 개화기에 ‘尊華攘夷(존화양이)’라고 글자를 새긴 관암이 있다. 또 이흑암리에 화산단이 있다. 명승지로는 대기리에 해수욕장, 광산리에 용출굴(龍出窟) 등이 있다.
진(鎭) · 수도(水島) · 삼두(三頭) · 도찬(道贊) · 대기(大機) · 광산(光山) · 재원(在遠) · 이흑암(二黑巖) 등 8개 법정리가 있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2.79㎢, 인구 2,40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영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자은도였으며, 1896년 지도군에 편입되면서 자은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이속되었다. 1969년에 다시 신안군으로 이속되었다.
이 면은 유인도 1개와 무인도 32개로 구성되어 있다. 유인도는 자은도이다. 고깔봉(125m) · 부엉산(166m) · 삼봉산(三峯山, 151m) · 삼형제봉이 있고, 두봉산(斗峯山, 364m)이 섬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섬 전체를 동서남북으로 구분짓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보리 · 옥수수 · 마늘 · 땅콩 등이 있다. 축산업으로 육성우가 입식되어 있고, 오리사육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한운리 · 대율리와 욕지도 등에서는 연간 5만 6000여 속의 김을 생산하며, 근해에서는 어업도 활발하다. 욕지도를 중심으로 한 141.6㏊의 염전에서 천일염을 생산한다. 지하자원으로 유각리 · 백산리에서 양질의 규사가 채광된다.
조선시대에 국가의 우마를 사육하던 마장으로 고장리의 서골마장과 유천리의 남곶마장이 있었다. 문화유적은 유천리에 도명사(道明寺), 구영리에 복룡사(伏龍寺)가 있다.
구영(舊營) · 유각(鍮脚) · 면전(綿田) · 백산(白山) · 고장(古場) · 한운(閑雲) · 송산(松山) · 대율(大栗) · 유천(柳川) 등 9개 법정리가 있다.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29.19㎢, 인구 1,74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창리이다. 본래 조선시대에 장산도 또는 장산면이라 하여 나주목의 관할이었다. 1896년 진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1963년 진도군 조도면 마진도리를 병합하였고, 다시 1969년 신안군에 이속되었다.
중앙에 부학산(浮鶴山), 북부에 오음산(五音山)이 있다. 유인도 5개와 무인도 32개로 이루어져 있다. 유인도는 장산도 · 백야도(白也島) · 장도(獐島) · 막금도(莫今島) · 마진도(馬津島) · 율도(栗島) · 저도(楮島) 등이다.
농업이 주산업이며, 수산업도 일부 가구가 종사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마늘 · 유채 · 참깨 등이다. 최근에는 미곡 위주의 영농을 탈피하여 잎담배 · 고추 등 경제성이 높은 작물을 증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과수 재배로 무화과와 단감나무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양식업으로 김 · 미역 · 톳 등을 생산한다. 그리고 158.59㏊의 염전에서 천일염이 생산된다. 지하자원으로 양질의 고령토가 채광된다. 인근 도서와의 내왕은 정기여객선과 연락선을 이용하며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다수리의 대성산(大成山) 꼭대기에 산성과 봉수대가 있으며, 대성산성과 마장(馬場)이 있었다. 도창리에는 하동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도창(道昌) · 공수(公需) · 오음(五音) · 대(大) · 다수(多水) · 마진도(馬津島) · 팽진(彭津)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군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3.68㎢, 인구 2,04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증동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증도라 불렸다. 1896년 영광군 사옥면이 되었고 1902년 지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 사옥면이 되었다.
1917년 무안군 지도면이 되었다가 1969년 신안군에 속하였다. 1971년 지도면 증도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0년 지도읍에 속하였다. 1983년 출장소에서 면으로 승격되면서 지도읍에서 분리되었다.
이 면은 유인도 6개, 무인도 69개로 이루어졌다. 주민 100명 이상이 거주하는 유인도는 증도 · 병풍도(屛風島) · 대기점도(大奇點島) · 소악도(小岳島) · 화도(花島) 등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유채 · 참깨 등이며 농가 부업으로 한우와 돼지 사육이 활발하다.
연안 해역에서는 농어 · 민어 · 꽃게 등이 많이 잡힌다. 그리고 양식업을 통해 김 · 조개를 생산하는데, 특히 김은 이 지방의 특산물로 연간 50만여 속을 생산한다. 방축리를 중심으로 천일염 생산도 활발하며, 염전 면적이 498.82㏊에 이른다. 교통은 정기여객선이 5개 섬에 1일 1회 운항하고, 섬과 섬 사이에는 도항선 2척이 정기 운항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방축리의 도덕도(道德島) 앞바다는 중국 송 · 원대의 도자기 등 유물이 매장된 해역으로 많은 유물이 인양되었다.
증동(曾東) · 방축(防築) · 대초(大棗) · 우전(羽田) · 병풍(屛風) 등 5개 법정리가 있다.
군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8.44㎢, 인구 1,15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팔금도라 하였다. 1896년 완도군에 소속되어 팔금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안좌면에 병합되었다. 1969년에는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1971년 옛 팔금면 지역에 팔금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3년 팔금면으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었다.
중앙에 금당산(金堂山), 서쪽에 채일봉이 있다. 유인도 2개와 무인도 18개로 구성되었다. 유인도는 팔금도(八禽島) · 매도(梅島) · 거사도(擧沙島) 등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마늘 · 잎담배 등이다. 농가 부업으로는 한우와 오리 등 가축을 많이 사육한다. 연안 해역에서는 김 · 미역 · 굴 · 새우 등이 많이 난다.
낙도종합개발계획에 의해 농로 보수, 지붕 개량, 전화사업이 이루어졌다. 거사도에는 간척지 180㏊를 개발하여 농경지를 확대하였다. 팔금도에는 농업용수 개발을 위하여 소류지(小溜池)와 집수정(集水井)을 만들어 수리안전답을 확보하였다.
팔금도에는 무인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읍리에 삼층석탑이 있다.
읍(邑) · 대심(大深) · 원산(元山) · 장촌(長村) · 진고(眞古) · 이목(利木) · 당고(唐古)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군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64㎢, 인구 1,95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웅곡리이다. 본래 나주목에 속한 섬으로 연꽃이 옷을 입은 형국으로 생겼다 하여 하의도라 이름 지어졌다. 1896년 지도군에 편입되어 하의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1969년 신안군으로 이속되었다. 1974년 설치된 상하태출장소가 1983년 신의면으로 승격되었다.
남부에 망매산(望梅山) · 금성산(錦城山)이 있다. 유인도 9개와 무인도 46개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 100명 이상 거주하는 섬은 하의도 · 장병도(長柄島) · 능산도(陵山島) · 대야도(大也島) · 신도(薪島) · 옥도 등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참깨 · 유채 · 상추 · 양파 등이다. 축산업으로는 흑염소를 많이 사육한다. 연안 해역에서는 김 양식이 활발하고, 다량의 천일염이 생산된다. 제조업으로 미역 가공처리 공장이 건립되어 고용 증대를 꾀하고 있다. 신도에는 해수욕장이 있다.
웅곡(熊谷) · 어은(於隱) · 오림(五林) · 대(大) · 후광(後廣) · 능산(陵山) · 옥도(玉島)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군의 남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48.66㎢, 인구 4,36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진리이다. 본래 흑산현의 소재지로, 고려 때 나주목에 편입되어 흑산도라 하였다. 1896년 지도군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1962년에 우이도리가 도초면에 편입되었다. 1969년 신안군에 편입된 뒤, 1983년 진도군 조도면 만재도리를 병합하였다.
유인도 11개와 무인도 205개로 이루어졌다. 주민 100명 이상 거주하는 유인도는 대흑산도 · 대둔도(大屯島) · 홍도 · 다물도(多勿島) · 하태도(下苔島) · 소흑산도(小黑山島) 등이다. 논은 2.9㏊, 밭은 331㏊가 있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 · 유채 · 마늘 등이고 미곡 생산은 매우 적다.
주민들은 대부분 수산업에 종사한다. 연안 해역에서 조기 · 홍어 · 굴비 · 삼치 · 갈치 · 전갱이 · 꽃게 등의 어획량이 많다. 김과 미역도 많이 생산된다. 특히, 흑산도 홍어와 소흑산도 굴비는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흑산항은 어업 전진기지로 지정되어 있으며, 흑산도 예리 앞바다에서는 7월 중순부터 파시(波市)가 열린다.
교통은 쾌속선 · 정기여객선 · 도선행정선을 이용하며 소흑산도와 홍도에 유인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진리에 고인돌과 산성 · 삼층석탑 · 반월성(半月城), 예리에 고려장터 · 지장암, 가거도리에 조개무지가 있다. 홍도의 풍란(風蘭), 해조류의 번식지인 대구굴도 · 소구굴도 등은 홍도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명승지로는 홍도와 영산도의 영산팔경이 유명하다.
진(鎭) · 예(曳) · 비(比) · 사(沙) · 심(深) · 영산(永山) · 다물도(多物島) · 오(梧) · 홍도(紅島) · 태도(苔島) · 수(水) · 가거도(可居島) · 만재도(晩才島) 등 13개 법정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