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3년(영조 29) 임진왜란 때 순절한 신여량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정려각으로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에 위치한다. 1987년 6월 1일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고흥신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신여량(申汝樑, 1564~1593)은 본관이 고령(高靈)이며, 고흥 동강에서 신홍해(申弘海)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과 의주병마절제도위(義州兵馬節制都尉)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종(扈從)하였고 노량과 한산대첩, 권율의 부장으로 행주싸움에서 공을 세웠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는 창의하여 순천 예교(曳橋) 전투에 참여하였다. 당포해전에서도 공을 세워 1604년(선조 37)에 승첩도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1605년 12월에 전라우수사로 임명 받았으며, 1606년 사망하였다.
1691년(숙종 17) 흥양 유학 신숙(申淑) 등이 공적의 포상을 바라는 상서를 관찰사에게 올렸고, 1735년(영조 11) 창평 유학 고만령(高萬齡) 외 13인, 1738년(영조 14) 전주 유학 김유성(金有聲) 외 73인이 통문을 올렸다. 그 결과 1753년(영조 29) 병조판서에 증직되고 충신 정려가 내려져 치제하였다.
이 정려각은 1838년(헌종 4), 1937년, 1955년 등 몇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정려각은 단칸의 규모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일각대문을 설치했다. 주변에는 1990년에 후손들이 건립한 임난순국공신 신여량장군정려중수기(壬亂殉國功臣申汝樑將軍旌閭重修記)가 있는데, 후손 신의식(申義植)이 짓고, 후손 신계태(申桂太)가 쓴 것이다.
그와 관련된 유물로는 주사선연도(舟師宣宴圖, 1601년경), 당포앞바다승첩도(唐浦前洋勝捷之圖, 1604), 교서(敎書, 1604), 유서(諭書, 1605) 등이 전해지는데, 1987년 6월 1일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일괄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