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신여량 관련 정려각. 사우.
개설
내용
1691년(숙종 17) 흥양 유학 신숙(申淑) 등이 공적의 포상을 바라는 상서를 관찰사에게 올렸고, 1735년(영조 11) 창평 유학 고만령(高萬齡) 외 13인, 1738년(영조 14) 전주 유학 김유성(金有聲) 외 73인이 통문을 올렸다. 그 결과 1753년(영조 29) 병조판서에 증직되고 충신 정려가 내려져 치제하였다.
이 정려각은 1838년(헌종 4), 1937년, 1955년 등 몇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정려각은 단칸의 규모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일각대문을 설치했다. 주변에는 1990년에 후손들이 건립한 임난순국공신 신여량장군정려중수기(壬亂殉國功臣申汝樑將軍旌閭重修記)가 있는데, 후손 신의식(申義植)이 짓고, 후손 신계태(申桂太)가 쓴 것이다.
그와 관련된 유물로는 주사선연도(舟師宣宴圖, 1601년경), 당포앞바다승첩도(唐浦前洋勝捷之圖, 1604), 교서(敎書, 1604), 유서(諭書, 1605) 등이 전해지는데, 1987년 6월 1일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일괄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1992)
- 『고흥군의 문화유적』(목포대박물관·전라남도·고흥군, 1991)
- 『신여량 장군 약사』(고흥군, 1976)
- 『봉헌실기(鳳軒實紀)』(고령신씨화수회, 1956)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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