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사범교육 조선어대화』, 『중등학교 조선어문법 전(全)』, 『음성언어교육』 등을 저술한 학자. 국어학자, 교육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21년 조선어연구회가 조직되자 이 모임에 가입하여 학회를 통한 한글연구에 몰두하였다. 1927년 조선어연구회의 기관지 ≪한글≫ 창간에 참여하고, 1928년에는 조선광문회의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의 제1차조사위원으로 어휘조사와 문법연구에 전념하였다.
한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다음 모교인 교동보통학교 교사로 있다가 이어서 경성사범학교부속보통학교로 옮겼다. 1930년 경성여자사범학교 교유(敎諭)로 옮겼으며, 같은 해 조선총독부가 「언문철자법」을 공포하자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사이에 ‘중등조선어강좌’를 발표하다 중지당하고, 이어서 ‘개정 언문철자법강좌’를 열었다.
1935년 조선음성학회에서 정인섭(鄭寅燮)·이종태(李鍾泰)와 더불어 아동감독과 독서지도를 담당하였다. 1936년에는 여러 해 동안 연구, 조사, 정리한 문법자료를 모아 ≪중등학교 조선어문법 전(全)≫(조선어연구회)을 펴내어 문법교과서로서 널리 영향을 끼쳤으며, 또 ≪사범교육 조선어대화≫(조선어연구회)도 펴냈다.
1941년에 그 동안 일제가 언어동화정책으로 조선어과를 배제하자 한문을 가르치다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퇴임하고, 1943년부터 1945년까지 경성 화산국민학교(華山國民學校) 교유로 근무하였으며, 1946년에 다시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에 복직되었다.
1948년 동교 교우회지 ≪부중≫에 <국어에 대한 나의 신념>이라는 소론을 썼으며, 또 국어교육연구회 회지 ≪국어교육≫ 창간호에 <음성언어의 교육>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발음지도·어법지도·어투지도·언어용례지도의 중요성을 인격적 언어교육과 관련지어 언급하였다.
1949년에는 ≪음성언어교육≫(서울대학교사범대학 출판부)을 펴내기도 하였다. 1950년 6·25를 맞아 7월에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를 의원면직하였으며, 수복한 뒤 6·25 때 좌경학생을 도왔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부산형무소에 수감중 옥사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문학급어학사(朝鮮文學及語學史)』(김윤경, 조선기념도서출판관, 1938)
- 『한글학회50년사』(한글학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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