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준 ()

법제·행정
인물
해방 이후 『신민법총칙』, 『물권법』, 『채권법각론』 등을 저술한 학자. 법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6년
사망 연도
1995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신민법총칙』, 『물권법』, 『채권법각론』 등을 저술한 학자. 법학자.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남도 함안 출생. 1945년에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에 있는 동부국민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하여 1945년 8월까지 근무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49년 제3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1950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을 제4회로 졸업하였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피란대열에 휩쓸리게 되었다.

6·25전쟁 중에도 일본의 와가즈마[我妻榮] 교수의 『민법총칙』·『물권법』·『담보물권』·『채권총론』·『채권각론』을 번역하고, 전쟁 속에서도 한국 법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2년 부산사범학교에서 지리교사 생활을 하였고, 휴전 이후 서울에 올라와 1953년에 경희대학교 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1958년에 경희대학교 부교수로 승진하고, 그 뒤에 한국민법학의 개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는 당시 서울대학교의 김증한(金曾漢) 교수와 공편저로 민법학 전반에 걸친 책을 출간하였다. 1960년 서울에서 변호사로도 개업하여, 1961년부터 1984년까지 증권거래소, 대한석탄공사, 국제관광공사 등 10여 개 업체의 법률고문을 지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원회의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1962년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에서 강의를 하였다.

1963년에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승진하고, 1976년까지 재직하였다. 1963년 7월에는 법을 통한 세계평화대회에 참석하였고, 1963년 10월에는 구신탁재산처리위원회의 위원과 서울특별시 등 20여 공공단체와 기업체의 법률고문이 되었다. 또한 1970년에는 대일 민간청구권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고, 1971년부터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으로, 또한 서울특별시 소원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1974년에는 「공해에 대한 사법적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제1회 변호사회 공해문제연구위원장을 지내면서 환경법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뒤에 1980년에는 미국의 예일대학에서 환경법을 연구하였다.

1981년 이후에는 법무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대한변협 교육지도위원 교육이사, 서울특별시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고, 1986년 회갑을 맞아 후배들로부터 『민법과 환경법의 제문제』라는 축하논문집을 봉정받았다. 1987년 민사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신민법총칙』(1958)·『물권법』(1956)·『채권법각론』(1957)·『담보물권법』(1956)·『신채권총론』(1958)·『신채권각론(상)』(1958)·『민법연습』(1961)·『신채권각론』(1965)·『신민법1.2(공저)』(1958) 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법률가 상』(길안사, 1995)
『한국의 법률가』(최종고,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집필자
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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