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언설화」는 조선 전기 명필로 이름난 양사언에 관한 설화다. 문헌 설화는 양사언의 출생담에 맞춰 서자 및 열녀 문제를 다루었다. 문헌 설화 중 원형에 가까운 설화는 김명시의 『무송소설』에 수록된 것이다. 『무송소설』 이후 문헌 설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양사언이 서자임을 숨기기 위해 그의 어머니가 자결하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양사언 어머니의 예지로 아들 형제를 성종에게 발탁케 하는 유형이다. 구비 설화는 강원도 일대에서 주로 전승되었고 양사언의 이인적인 면모에 주목하였다.
문헌 설화집에 실린 「양사언 설화(楊士彦 說話)」는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출생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양사언 설화」의 가장 이른 형태는 1676년에 김명시(金明時, 1592?)가 편찬한 『무송소설(撫松小說)』에 수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양사언 설화」는 17세기 중반부터 이미 향유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무송소설』에 담긴 설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양사언의 부친 양공(楊公)이 삼척 부사로 있을 때에 정선군 우리(郵吏)의 집에 들렀다. 우리에게는 14~15세 된 딸이 있었는데, 그녀의 행실이 기특하여 양공이 흰 부채를 선물로 주었다. 딸은 그것을 예폐(禮幣)라 여기고, 다른 혼인을 거절하고 결국 양공과 혼인하여 양사언 삼 형제를 낳았다. 양공이 죽자, 그녀는 훗날 자신이 죽으면 적자와 서자 간 상복의 차이 때문에 자기가 낳은 자식들이 서자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우려하여 자결하였다.
문헌 설화는 크게 두 계열로 전승되었다. 하나는 『무송소설』의 내용을 계승하되, 양사언 어머니의 죽음이 적자가 상복을 입는 미안함 때문이 아니라 양사언 형제가 서자임을 감추기 위해 자결하는 형태로 이어진 『동패락송(東稗洛誦)』 계열이다. 다른 하나는 양사언 어머니가 자하동에 집을 지어두었다가, 마침 소나기를 피해 들어온 성종에게 양사언 형제를 보임으로써 출세케 하는 『 청구야담(靑邱野談)』 계열이다. 이 외에도 정동유(鄭東愈, 1744~1808)가 편찬한 『 주영편(晝永編)』에도 해당 이야기가 실려 전하는데, 여기에서는 양공의 일이 이광좌(李光佐)의 일로 바뀌었다.
구비 설화는 양사언이 회양(淮陽) 군수로 부임했던 강원도 양양 일대에서 주로 전승되었는데, 문헌 설화와 달리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양사언 설화」가 4편이 채록되어 실려 있다. 강원도 양양군에서 2편,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1편, 충청남도 대덕군에서 1편이다. 채록된 내용은 ①고을 수령으로 부임한 소년이 어리다고 얕보는 고을 관속을 혼낸 이야기, ②부적을 써서 조밭에서 조 씨를 까먹는 새들을 잡은 이야기, ③양사언의 글씨가 저절로 날아간 이야기, ④양사언이 신선이 된 이야기이다. 구비 설화는 현실적인 양사언의 면모보다 도술가나 이인(異人)다운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양사언 설화」는 구비 설화보다 문헌 설화가 지닌 메시지가 더 강하다. 17세기 중반에 쓰인 문헌 설화에서는 양사언의 어머니가 주변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결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19세기의 문헌에서는 철저히 희생적이며 순종적인 어머니로서 자결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차이는 어머니와 자식의 애착 양상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