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나

  • 사회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상해임시정부 경상도대의원, 부산애국부인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76년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893년(고종 30)
  • 출생지부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중빈 (인물연구소, 정치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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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상해임시정부 경상도대의원, 부산애국부인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생애 및 활동사항

부산 출신.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진명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비조달의 어려움으로 부산으로 돌아가 1911년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마산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에서 7년간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이때 항일맹휴를 주도하고 일본에 건너가 요코하마신학교[橫濱神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쑤저우여자사범대학[蘇州女子師範大學]에 학적을 두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상도대의원을 지냈다.

1922년 임시정부 특사로 밀입국하던 중 잡혔으나 곧 석방되어, 이듬해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민족운동가들과 독립운동을 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귀국하여 192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유치과를 마치고 중국에 드나들며 민족운동에 계속 관여하였다.

그러는 한편, 사회사업에 뜻을 두고 1935년 오스트레일리아에 다녀왔으며, 1936년 기독교여자청년회(YWCA) 총무일을 보다가 부산 YWCA를 창설하였다. 부산시 초량동에서 3·1유치원을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통영·진영(進永) 등지에서 유치원을 경영하였다.

이처럼 사회복지사업 일선에서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았으며, 광복 후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에 취임하고, 부산애국부인회장으로 여성운동과 사회사업에 전념하였다.

1948년 고아원으로 자매여숙을 차렸고, 전국의 정신병원을 순례하며 정신병자수용소를 차려 병을 치료하게 하는 한편 기독교 복음을 실천적으로 전파하였다. 45세에 김우영(金雨英)과 만혼을 하였으나 7년 만에 사별하였다. 4개 국어를 구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4년 장한어머니상, 1967년 용신봉사상을 받았다.

참고문헌

  • - 『구원의 횃불』(추영수, 중앙여자중고등학교, 1971)

  • - 「박순천 구술」(197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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