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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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때, 행건위장군 팔중후에 봉해졌으며, 웅진천도 이후 영산강 유역의 세력을 흡수하는 데 공을 세운 백제의 왕족·장군.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행건위장군팔중후(行建威將軍八中侯)|영삭장군아착왕(寧朔將軍阿錯王)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도학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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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때, 행건위장군 팔중후에 봉해졌으며, 웅진천도 이후 영산강 유역의 세력을 흡수하는 데 공을 세운 백제의 왕족·장군.

내용

행건위장군팔중후(行建威將軍八中侯)에 봉해진 뒤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지역의 담로장(擔魯長)으로 재임하였다. 재임 중 왕권강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490년(동성왕 12)에 동성왕(東城王)의 요청에 의하여 중국 남제(南齊)로부터 영삭장군아착왕(寧朔將軍阿錯王)에 책봉되었다.

그의 승진과 책봉의 명분은 비록 “약관(弱冠)에 왕을 잘 보좌하여 충효(忠效)가 일찍부터 뛰어났다.”에 두고 있지만, 기실은 웅진천도 후 왕권의 동요를 틈타 이탈한 영산강유역의 재지세력을 흡수하는 데 발휘한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가 팔중후에서 승진, 전봉된 아착왕의 ‘아착’은 지금의 목포군도(木浦群島)로 비정된다.

참고문헌

  • - 『남제서(南齊書)』

  • - 「한성말(漢城末) 웅진시대(熊津時代)의 백제왕위계승(百濟王位繼承)과 왕권(王權)의 성격(性格)」(이도학,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50·51,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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