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묘사성전

  • 역사
  • 제도
  • 삼국
삼국시대, 신라의 영묘사를 관리한 관서.
이칭
  • 이칭수영영묘사사원(修營靈廟寺使院)
제도/관청
  • 상급 기관영묘사
  • 설치 시기635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노중국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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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영묘사를 관리한 관서.

내용

영묘사는 경주시 서악동(西岳洞)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로서 635년(선덕여왕 4)에 성신(星神)을 제사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759년(경덕왕 18)의 관제개혁 때 영묘사성전은 수영영묘사사원(修營靈廟寺使院)으로 개칭되었다가 776년(혜공왕 12)에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관원으로는 처음에는 상당(上堂) 1인, 청위(靑位) 1인, 사(史) 2인이 있었다. 그러나 759년의 관제개혁 때 상당은 판관으로, 청위는 녹사로 개칭되었다가 776년에는 다시 원래대로 복구되었으며, 애장왕 때에 청위는 대사(大舍)로 개칭되었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황룡사구층탑지의 연구-성전(成典)과 정법전(政法典)문제를 중심으로-」(변선웅, 『국회도서관보』 10-10, 1973)

  • - 「신라중대 왕실사원의 관사적(官寺的)기능」(이영호, 『한국사연구』 43, 1983)

  • - 「신라통일기의 성전사원(成典寺院)의 구조와 기능」(채상식, 『부산사학』 8, 1984)

  • - 「新羅の寺院成典と皇龍寺の歷史」(浜田耕策, 『學習院大學文學部硏究年報』 28,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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