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읍지』는 1846년경 평안남도 영원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선생안 항목의 기록을 통해 편찬 연도의 유추가 가능하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벌꿀을 들이는 창고인 무청고를 별도 항목으로 설정한 점이 독특하다. 1760년경의 『여지도서』에 비해 군사 정보를 보완한 이 읍지는 19세기 전반 영원군 읍지의 저본일 가능성이 높다. 『여지도서』와 19세기 중후반에 편찬된 영원군 읍지와의 비교를 통해 지역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다.
1책의 필사본이다. 장정은 주1이고, 표지 재질은 주2,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표제는 ‘영원군읍지(寧遠郡邑誌)’이고, 권수제는 ‘영원읍지(寧遠邑誌)’이다. 조선총독부도서지인(朝鮮總督府圖書之印), 서울대학교 도서 등의 인장이 찍혀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선생안(先生案) 항목 끝에서 두 번째에 기록되어 있는 조진상(趙鎭常)이 1846년(헌종 12)에 영원군(寧遠郡)에서 관직을 지낸 이력이 있다. 따라서 1846년 이후에 베껴 썼을 것이다.
수록 항목은 강역(疆域), 건치연혁(建置沿革), 관원(官員), 군명(郡名), 풍속(風俗), 성씨(姓氏), 산천, 토산(土産), 고적(古蹟), 학교, 누정(樓亭), 관우(館宇), 역원(驛院), 사묘(祠廟), 불우(佛宇), 인물, 사적(事蹟), 관방(關防), 방리(坊里), 교량(橋梁), 창고(倉庫), 재곡(財穀), 공고(公庫), 전결(田結), 호구(戶口), 군액(軍額), 영녕관제영(永寧館題詠), 선생안, 향교(鄕校), 향소(鄕所), 장교(將校), 관군관(官軍官), 훈련(訓練), 토포(討捕), 군기(軍器), 무청고(貿淸庫), 이노(吏奴) 등으로 구성하였다.
사적 항목에는, 1466년(세조 12) 순변사(巡邊使) 한명회(韓明澮)에 의하여 영원군이 영녕현(永寧縣)에서 독립하여 별도의 군으로 설치되었다는 건치연혁의 전말을 기록하였다. 전결 항목에는 밭의 면적만을 기재하여 영원군 지역에 논[水田]이 없음을 알려 주고 있다. 무청고는 벌꿀을 무입(貿入)하는 창고로서 무입 내용과 관리자를 기재하였는데, 독립 항목으로 설정한 점이 독특하다.
이노 항목에는 향리와 노비에 대한 내용, 그리고 인원수를 수록하였으며, 기생도 포함하였다. 산천 항목에는 낭림산(狼林山)과 검산령(劒山嶺), 마유령(馬踰嶺), 가음령(加音嶺) 등 주요 산천과 인접 지역으로 연결되는 도로 등을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영원군 지역이 동쪽과 서북쪽으로 낭림산맥과 묘향산맥에 막힌 산중 고을임을 알 수 있다.
1760년(영조 36)경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비해 군사 관련 정보를 보완한 이 읍지는 19세기 전반 영원군 읍지의 저본일 가능성이 높다. 『여지도서』와 19세기 중후반에 편찬된 영원군 읍지와의 비교를 통해 지역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인 『관서읍지(關西邑誌)』[1872년본 ·1895년본] 내의 「곽산읍지(郭山邑誌)」와 1899년(광무 3)의 『영원군읍지성책(寧遠郡邑誌成冊)』 등과의 비교를 통해 19세기 영원 지역과 읍지의 시계열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