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년(광해군 1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안처순(安處順) · 정환(丁煥) · 정황(丁熿) · 이대유(李大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86년(숙종 12)에 ‘영천(寧川)’이라고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그 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나 광복 후 후손들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경내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5칸의 강당,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안처순 · 정환 · 정황 · 이대유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서원은 198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매년 2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유물로는 《주서절요 朱書節要》 12책 등 100여 권의 문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