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6월에 영춘홍명학교(永春弘明學校)로 개교하였다. 당시 향청을 수리하여 교사로 사용하였으며, 초대 교장에 향장(鄕長) 유씨(劉氏)가 취임하고 교사에는 우희영(禹禧榮)이 부임하였다. 개교한 지 두달 만에 교사가 화재로 전소되어 공위장청(公衛將廳)을 수리하여 이전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에 정미병란으로 다시 전소되어 1908년 4월 군수 김홍규(金鴻圭)와 주사 조경원(趙敬元)이 민고전(民庫錢)과 강학전(講學錢) 300원을 이식하여 교비로 쓰게 함과 동시에 사의루(四宜樓)에서 재개교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군내 유지들의 성금으로 학교경비를 충당하고, 대동고(大同庫)를 수리하여 교사로 사용하였다.
1909년에 제1회 졸업생 14명을 배출하였으며, 1911년에 사립영춘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가 이듬해 4월 공립으로 개편되어 교명을 영춘공립보통학교로 변경하였다. 1923년 4월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였고 1936년 4월에 영춘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36년에 별방분교, 1941년에 의풍분교, 1947년에 동대분교, 1965년에 태화분교가 각각 설립되었다가 독립하였다.
광복 후 영춘국민학교로 교명을 개칭하였으며, 1971년에는 재학생수가 1,144명에 달하기도 하였다. 1996년 3월에 영춘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98년 3월 현재 6학급에 재학생 182명, 교원 10명이며 졸업생은 85회에 총 4,500여 명을 배출하였다. 그 외에 병설유치원 1학급에 23명의 원아를 수용하고 있다.
교육목표는 ‘도덕인·자주인·능률인·과학인·건강인·정서인’으로 설정하여 이의 실천에 힘쓰고 있다. 매년 6월에 고학년들을 중심으로 향토에 산재한 온달성, 13용사묘역 등의 고적들과 전적지를 찾아 ‘내고장 충절의 길’을 답사, 향풍 및 애국정신과 호연지기를 함께 익히고 있다.
전국문맹퇴치 성인교육실적이 우수하여 교육부장관 표창, 향토개발연구추진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을 받았으며, 비진학학생지도 도지정연구학교를 운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