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李象秀: 1820~188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여인(汝人), 호는 어당(峿堂)이다. 한원진(韓元震)의 학통을 이은 호론(湖論)에 속하였다. 선공감가감역 등을 역임하였다.
『어당집(峿堂集)』은 24권 12책의 목활자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에 있다.
1900년 이상수의 제자 윤병수(尹秉綬) 등이 편집 · 간행하였다. 권두에 윤병수 · 박문호(朴文鎬)의 서문과 윤정현(尹定鉉)의 초고서(初稿序)가 있고, 권말에 문인 오한응(吳翰應)의 발문이 있다.
권15에 부 3편, 시 964수, 권6에 소 8편, 서계(書啓) 1편, 권7∼12에 서(書) 163편, 서(序) 63편, 권13·14에 기 72편, 권15에 발 31편, 논 17편, 권16에 설 30편, 권1722에 잡저 36편, 명 15편, 권23에 잠(箴) 5편, 찬(贊) 2편, 혼서(婚書) · 상량문 각 1편, 제문 20편, 애사 7편, 신도비명 1편, 권24에 묘표 4편, 묘갈명 1편, 묘지명 7편, 행장 5편, 전(傳) 10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는 「애지부(哀志賦)」, 「답앵조부(答嚶鳥賦)」, 「감부안부(感鳧鴈賦)」가 있다. 시는 저자 나이 13세부터 임종 하루 전까지의 작품이 시체의 구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시 가운데는 120운에 이르는 장편의 「객중수세음(客中守歲吟)」을 특징적으로 꼽을 수 있다.
소 가운데 「청토적급논의대장비례소(請討賊及論衣襨葬非禮疏)」는 임오군란의 괴수 이경하(李景夏)의 처단을 청하고 중전 민씨(閔氏)의 소재를 몰라 의대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청중흥무본소(請中興務本疏)」는 민씨가 살아 환궁하자 올린 소로, 임오군란의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국가가 취해야 할 중흥책을 건의하고 있다. 당시의 시대상과 저자의 강력한 수구관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서(書) 가운데에는 박규수(朴珪壽) · 전우(田愚) 등과 주고받은 것이 특히 많다. 그 내용은 주로 선비의 처신에 관한 것이다. 기는 21세부터 36세까지 지은 것으로 산수와 유적을 유람하고 그 감회를 기록한 산수유기가 많다.
잡저에는 저자의 탁견과 박람강기(博覽强記)가 잘 나타나 있다. 「불사무의(不仕無義)」는 선비가 야인으로 있어야 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발몽정궤(發蒙正軌)」 · 「독서삼칙(讀書三則)」 · 「학탄(學歎)」 등은 서당 교육 방법의 모순점과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논한 글들이다. 「삼정책(三政策)」은 당시의 전부(田賦) · 군적(軍籍) · 환곡(還穀)의 문란상을 지적한 글이다.
「독시수필(讀詩隨筆)」은 『시경』의 한 글귀에 부연한 수필이다. 「논어필정(論語筆程)」 · 「맹자필정(孟子筆程)」은 『논어』 · 『맹자』의 경문과 주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죽소여필(竹素餘筆)」 또한 경서언해(經書彦解)의 부정확성을 비판한 수필이다.
「구사학규(九社學規)」는 천명성경(天命誠敬)에서의 구용(九容) · 신독(愼獨) · 의리해(義利解) 등의 십조목을 선유(先儒) 및 자신의 견해를 첨부해 설명한 것이다. 「전가잡훈(傳家雜訓)」은 재리(財利) · 과거 · 풍수설 · 혼인 · 축첩 등 26종목의 속설에 대해 견해를 밝힌 것이다.
「화식전평(貨殖傳評)」 · 「당문평(唐文評)」은 서평(書評)의 일종으로, 『사기(史記)』와 당대의 문장을 비평한 것이다. 「귀거래사구해(歸去來辭句解)」 · 「출사표구해(出師表句解)」 · 「대학장구서독법(大學章句序讀法)」 · 「중용장구서독법(中庸章句序讀法)」 등은 저자의 문장 분석력이 돋보이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