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선공감역(繕工監役) 오희문(吳希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고,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어머니는 조간(趙幹)의 딸이다.
1673년(현종 14) 춘당대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80년(숙종 6) 지평 · 부수찬, 1683년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1687년 승지가 되어 자파(自派)를 옹호하다가 파직되었다. 1694년 개성부유수를 거쳐 주청부사(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대사간 · 부제학 · 강원도관찰사에 이어 다시 부제학을 거쳐, 1696년 도승지 · 부제학 · 대사헌을 지냈다.
다음해 예문관제학 · 사직 · 이조참판, 1698년 이조참판 · 공조참판을 지내고 양양부사로 좌천, 삭출(削黜)되었다가 1700년 대제학 ·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고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1702년 민언량(閔彦良)의 옥사에 연루되어 장성에 유배되었다. 특히, 문장에 뛰어나 세칭 동인삼학사(東人三學士)라 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여 숙종으로부터 과음의 경계를 받았다. 죽은 뒤 복관되었고, 울진의 고산서원(孤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서파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