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위영 ()

목차
정치
인물
해방 이후 조선은행 두취, 국무원 사무처장, 무임소장관 등을 역임한 금융인. 정치인.
이칭
이칭
석운(石耘)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1년 5월 5일
사망 연도
1978년 10월 2일
출생지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조선은행 두취, 국무원 사무처장, 무임소장관 등을 역임한 금융인. 정치인.
내용

1901년 5월 5일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현재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 출생으로 호는 석운(石耘)이다. 서당과 보통학교를 거쳐 1918년 3년제 부산상업학교에 입학해 1921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조선은행에 입행했으나 사직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 4월 고베고등상업학교[神戶高等商業學校] 예과에 입학해 1928년 3월 본과를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귀국해 1928년 3월 금융조합에 들어가면서 금융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남금융조합연합회 소속 이사견습, 언양금융조합 대리이사를 거쳐 1929년 5월 9일 경남 합천 초계금융조합의 정식 이사로 부임했다. 이후 1932년 1월 18일 진해금융조합 이사로 전근되었으며 1935년 금융조합 이사직을 사임했다.

1935년 조선신탁회사 군산지점 지배인 대리로 입사해 1941년 같은 회사 대구지점 수석지배인 대리(부지배인)가 되었다. 해방 직후인 8월 25일 상경해 본점 근무를 하면서 미군정으로부터 상임 취체역(取締役 ; 이사)에 임명되었고 영업부장을 겸했다. 1946년 조선신탁회사가 조선신탁은행으로 전환된 이후 1947년 12월부터 1950년 6월까지 두취(頭取 ; 은행장)를 지냈다.

조선신탁은행 두취 시절 윤보선·허정·이기붕 등 정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2월 정부의 경제시책 자문기관인 중앙경제위원회의 금융인 출신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5월 미국에 파견된 민간친선사절단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4개월 간 미국을 다녀왔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고향인 울산 갑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며, 전원위원장, 재정경제분과위원장, 예산결산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내각책임제 개헌에 소신을 갖고 공화구락부, 공화민정회, 원내자유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해 원외 인사로서 중앙상무위원, 경남도당 위원장,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의장, 중앙상무위원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동 을구에출마해 당선되었고, 이어 민주당 내 원내 총무 경선에 신파 대표로 나서 당선되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앙상무위원회 의장, 부통령 후보 선거 사무장으로 활동했으며, 1960년 4·19 이후 치러진 7·29총선에서는 참의원에 출마해 경상남도에서당선되었다. 그해 8월 장면(張勉) 정부가 출범하자 당과 정부 사이에서 정책 조정을 담당하는 국무원 사무처장에 임명되어 국무위원이 되었으나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사퇴했다. 이어 1961년 1월 무임소장관으로 다시 입각했으나 5·16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이 붕괴되면서 물러났다.

군사정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3년 2월 27일 해제되었으며, 1967년 4월 재건 민주당이 창당되었을 때 고문에 추대되었고, 그해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정계를 은퇴했다. 1978년 10월 2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참고문헌

『제2공화국과 장면』(이용원, 범우사, 1999)
『한국정치의 지배이데올로기와 대항이데올로기』(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사, 1994)
『대한민국 의정총람』(국회의원총람발간위원회, 1994)
『재계회고』9: 역대금융기관장편Ⅰ(한국일보사 출판국, 1981)
「해방∼6·25전쟁 직전 시기 금융조합의 조직 재건과 그 중심인물」(최재성, 『한국근현대사 연구』43, 한국근현대사학회, 2007)
대한민국헌정회(www.rokps.or.kr)
집필자
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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