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오위부총관, 강계부사, 황해병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경집(敬緝)
  • 이칭평지신선(平地神仙)
  • 휴재(休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해주(海州)
  • 사망 연도1813년(순조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어영청천총(御營廳千摠)|오위부총관|강계부사|황해병사
  • 출생 연도1727년(영조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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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오위부총관, 강계부사, 황해병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경집(敬緝), 호는 휴재(休齋). 아버지는 좌승지 오박(吳璞)이다. 큰아버지 좌참찬 오탁(吳琢)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2년(영조 38) 알성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1764년 다시 선전관이 되었다가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오위도총부도사·포도종사관 등을 거쳐 공조좌랑에 이르렀으나, 조그마한 실정으로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그러나 곧 복직되어 다시 주사랑(籌司郎)·훈련원부정(訓練院副正)을 거쳐, 용강현령(龍岡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770년 평안중군(平安中軍)이 되고, 1772년 다시 외직으로 나가 초산·장흥·갑산 등의 부사 등을 지냈다.

이어 어영청천총(御營廳千摠), 영종진방어사(永宗鎭防禦使) 등을 역임하고, 1777년(정조 1) 홍충도수사(洪忠道水使)가 되었다.

1779년 선전관을 거쳐 함경도병사·수어청중군(守禦廳中軍)을 역임한 뒤, 동지중추부사·저영중군(儲營中軍)·오위부총관이 되었다. 1783년 강계부사로 외직에 나갔으나 병으로 잠시 사퇴하였다. 곧 황해병사로 복직되었으나 다음 해 다시 파직되었다.

북변 지역의 부사나 병사로 있을 때 실정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지혜롭게 잘 처리했기 때문에, 1794년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어 1800년 다시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품계가 올랐다. 이어 1806년(순조 6) 정헌대부(正憲大夫) 등으로 추승(推陞)되었고, 다시 지중추부사로 도총관을 겸하였다.

용모가 훤칠하고 시율(詩律)의 품격이 높아 무관이라기보다는 문신다운 풍모가 많았다. 사람들은 고을의 시우(詩友)들과 음영(吟咏)하는 모습을 보고 오재희를 ‘평지신선(平地神仙)’이라 불렀다. 즉, 오재희가 옛날 병사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노주집(老洲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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