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옥을 천지의 정수이며 음양에 있어 지극히 순결한 것이라 생각하고 대지의 정물(精物)로 여겨왔다. 또한, 옥을 품에 지니고 장식하면 약효가 나타나고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인은 옥을 광물의 아름다운 결정체로 보고 있다.
옥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몸, 또는 의복을 장식하는데 기본이 되는 재료이다. 따라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유물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것이 옥이다. 경주의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만 보아도 총 유물의 68%가 옥 종류의 구슬이었다. 이 옥구슬에는 암석질의 옥이 대부분이었다. 암석질이라는 것은 광물질이라는 말이다.
옛 선인들은 광물질의 옥을 가장 아끼고 애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옥의 원석을 갈고 다듬어 작은 원형으로 만든 후 구멍을 뚫으면 비로소 구슬[玉]을 이룬다. 이 구슬을 수없이 꿰어 달아 길이가 목에 두르는 데 알맞으면 목걸이가 되고, 가슴에까지 걸치면 경흉식(頸胸飾)이 된다. 손가락에 끼우면 지환(指環)이 되고, 팔목에 끼우면 팔찌가 된다.
더욱이 팔에 끼웠으면 완천(腕釧)이 되었다. 암석질, 즉 광물질 옥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출토한 옥류를 통해서 알아보는 것이 정확한데, 경주 미추왕릉에서 발견된 상감유리옥부목걸이가 그 예이다. 이 목걸이는 청색 유리제 환옥과 홍색 마노제 환옥 16개, 청색 관옥, 홍색 곡옥, 수정제 조옥 등으로 이루어졌다.
유리·마노·수정 등의 광물질도 다듬어지는 형에 따라서 옥으로 취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옥으로 사용된 물질은 다음과 같다.
(1) 유리(瑠璃) 청색의 유리환옥이 신라 고분에서 뿐만 아니라 백제 고분에서도 출토되었다. 또한 녹색·감색(紺色 : 검은빛을 띤 푸른빛)·담황색 등의 유리 구옥(球玉)도 함께 출토되었다. 감색 유리구옥은 코발트를 구워서 산화코발트를 만들고 그것을 유리에 혼합하였을 때 얻어진다.
이러한 과정이 천연적으로 이루어져서 감색 유리를 얻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팥알만한 크기의 유리구슬을 연결한 남색 유리옥 목걸이는 희귀한 것이다.
(2) 마노(瑪瑙) 마노환옥 또는 다면옥·관옥 등은 그렇게 흔하지 않아서 신라·백제의 고분에서 발견된 것이 매우 적다. 마노는 석영·단백석·옥수(玉髓) 등의 혼합물이며, 간혹 다른 광물질이 스며들어 적갈색과 백색의 무늬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마노로 곡옥을 만들었던 것은 적갈색이기 때문에 이색적인 목걸이를 얻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3) 수정(水晶) 석영의 하나로 원래 광택이 없고 투명하다. 갈고 다듬는 데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수정옥이 이루어지는데, 불순물이 섞이면 자수정·연수정·흑수정이 된다. 우리 나라의 수정옥 산지로서 이름이 높은 곳은 경주의 금오산이다(속칭 남산이라 한다.). 그래서 ‘남산옥돌’이라는 말이 조선 말부터 알려졌으며 ≪동경지 東京誌≫에도 기록되어 있다.
남산옥돌은 바로 수정옥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라시대의 고분 출토품 중에는 주판알 모양으로 다듬은 수정옥 38개를 연결하고 가운데에 수정옥으로 만든 곡옥을 늘인 목걸이가 있다.
가운데의 수정곡옥에 가까워질수록 수정이 크고 길도록 비례를 감안하였는데, 이에는 화려한 다른 목걸이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 미적 감각이 있다. 이 목걸이는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되었다.
(4) 호박(琥珀) 갈고 다듬어서 옥으로 사용하였다. 백제시대의 유물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이 있다. 녹청색의 호박으로 된 사각형 관옥·조옥 등이 왕비의 목 부분과 가슴 부분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경흉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에도 있었다고 믿어지나 실제로 발견되지는 않았다.
호박은 송백과 식물의 화석인만큼 광물성이라기보다 오히려 식물성에 가깝다. 색은 황색을 나타내고, 그 안에 적색·갈색·백색을 띨 때도 있다. 또 투명한 것이 있는 반면에 불투명한 것도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칠보(七寶) 가운데 하나로 중시되었다.
태고 때부터 존재하였던 이 호박덩어리 속에는 개미·거미·파리·갑충 등 곤충류 또는 조류의 털이 끼여 있는 것이 있어 매우 진귀하게 취급되었다.
(5) 석웅황(石雄黃) 천연적으로 산출되는 황화비소(黃化砒素)로서 계관석(鷄冠石)과 더불어 나온다. 누런 덩어리이며 염료로 쓰이기도 한다. 석황(石黃)·웅황(雄黃)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장신구에 많이 쓰였다. 화관·족두리 등의 관식(冠飾)으로 사용되고, 풍차 등 두식옥(頭飾玉)으로 사용되었다.
(6) 비취(翡翠) 경옥(硬玉)과 연옥(軟玉) 두 종류가 있다. 경옥과 연옥은 외관상 색채나 옥질이 너무 비슷하여 식별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그러나 광물학적으로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경옥의 성분을 분석하면 규산 58.28%, 번토 23.11%, 제2산화철 0.64%, 석회 1.62%, 고토 0.91%이다. 결정은 매우 적고 거의 없다.
경도는 6.5∼7이나 되고, 색은 백색·녹색, 또는 백색 속에 녹색 선조가 있는 것도 있다. 암녹색 및 청벽색을 띤 반투명의 것은 낭간(琅玕)이라고 부른다. 경옥은 많은 철분을 함유하여 암녹색 및 흑색에 가까운 것이 있다. 이것은 농녹옥이라고 부른다. 신라시대의 고분에서는 이 농녹옥으로 만든 곡옥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비취는 청자색 정도의 색채에서 진한 것까지 여러 가지 색조가 있는데, 녹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귀하고 값이 더 나간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비취곡옥은 백색 속에 녹색 선조가 있는, 휘석(輝石)의 섬유상 결정이 집합하여 이루어진 비취로 중국제 비취와는 다른 계통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신라에서 비취가 산출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산출지인 유적지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신라사람들은 의식관(儀式冠)인 금관에 작은 곡옥을 많이 매달아 놓는 것을 하나의 정석처럼 생각하였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관의 입식에 달려 있는 곡옥, 서봉총에서 출토된 금관의 입식과 대륜에 달려 있는 비취옥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경주 황남동 98호분에서 출토된 금관에는 어느 금관보다도 많은 비취곡옥이 달려 있었는데, 이 곡옥들은 푸른빛을 내는 양질의 경옥이었다.
(7) 천하석옥(天河石玉) 녹청색을 띠고 있는 미사장석(微斜長石)이다. 매우 아름다운 빛을 나타내므로 비취와 혼동하기 쉽다. 주색조는 녹색이고 담녹색·농녹색 등이므로 신라 때부터 사용되어왔으나 그다지 귀하게 취급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산지가 경주이고 생산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8) 황옥(黃玉) 황색 또는 대황의 장미도색(薔薇桃色)을 지닌 옥이다. 때로는 무색도 있고 담녹색·담청색·홍등색·도색 등도 있다. 조선시대에 부녀들이 두식옥으로 사용하였다. 광택이 나는 것도 있으나 투명한 것, 불투명한 것이 있다. 황석류석(黃石榴石)이라는 별칭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