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옥색 명주 장옷은 착용자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름이 달린 위치는 조선 말기 쓰개 전용의 장옷임을 말해 준다. 개화기 이후 유일한 여성의 포제(袍制)인 두루마기와 비교할 때 매우 크고 길다. 혜원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장옷은 여성용 쓰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조선 후기의 착장법이다.
조선 전기에는 쓰개보다는 오히려 두루마기처럼 겉옷으로 착용하였다. 장옷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많은 양이 출토되고 있다. 여자의 포(袍)로 모시 홑 장옷에서부터 솜장옷, 솜누비 장옷 등, 다양한 구성법이 확인된다. 이는 사계절에 장옷이 착용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성인 여자만이 아니라 어린 여아들도 장옷을 입었다는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장옷은 대부분 좌우 대칭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 두루마기를 포함한 포제류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깃은 목판깃이 달렸는데 겉깃과 안깃이 모두 길 쪽으로 들여 달린 특징을 보인다. 예외의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겉섶과 안섶은 두 조각으로 구성된 이중섶이 달렸으며 양쪽 겨드랑이 아래 자색의 소형 사각접음 무와 커다란 사다리꼴 무가 있으며 긴 소매 끝동 부분에 흰색 거들지가 달려 있다.
전세유물들은 대부분 조선 후기의 것으로 쓰개용으로 착용되었던 것이나 기본구성은 조선 전기나 후기나 차이가 없다. 단지 고름의 위치가 다를 뿐이다. 조선 전기의 장옷에는 여며 입을 수 있는 위치에 고름이 달려 있으며 조선 후기의 장옷에는 머리에 쓰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중앙의 섶선 가장자리에 고름이 달렸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덕온공주(德溫公主: 순조(純祖)의 3녀, 1822∼1844)의 장옷은 초록색 경광주 바탕에 흰색 다듬이를 한 모시 안감을 넣은 옷이다. 겨드랑이에는 자색의 작은 사각접음 무 장식을 하였으며 소매 끝동 부분의 흰색 거들지를 달았다. 그리고 흰 동정이 달린 검은 자색 목판깃이 대칭으로 달렸다. 겉깃 끝부분에 넓고 긴 붉은 자색 고름과 홍색 고름이 한 쌍 달려 있고 오른쪽 길에는 여며 입을 수 있는 위치에 붉은 자색 고름 1장이 달렸다. 다른 1개의 홍색 고름은 안깃 끝 부분에 달렸다. 또한 고름이 달린 상태로 미루어 외의용과 쓰개용의 두 가지 용도로 착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유물의 겉감은 옥색 세주(細紬)이며 안은 백색 무명으로 되어 있는데, 종이심을 넣었다. 이 장옷은 넓은 목판깃과 겨드랑이 아래 한 변이 12cm인 소형 사각접음 무, 고름이 모두 자색 세주로 되어 있다. 소매 끝에는 흰색의 거들지가 달려 있다. 동정의 오염 흔적으로 미루어 오랜 기간 쓰개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총 길이 138.5㎝, 화장 88㎝, 품은 66㎝이다. 겉깃 길이는 39㎝이며 동정은 5.5㎝ 너비로 깃머리에서 12.5㎝ 올라온 지점에 달았다. 수구 너비는 29.5㎝, 거들지 너비는 26㎝이며 약 4.0㎝가 안으로 접혀 들어가 있어 수구 양끝을 곬로 처리하였다. 섶 길이 94.5㎝, 옆길이 97㎝, 무의 너비 32㎝이다. 섶의 구성은 두 조각의 이중섶으로 좌우 섶이 대칭으로 동일하다. 앞쪽으로 맺는 단추가 달려 있으며, 머리에 쓰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조선 후기 단령처럼 안감의 고름이 한 쪽 더 달린 이중 고름이다.
안감과 겉감의 솔기는 따로 따로 바느질되어 있다. 장옷의 섶과 도련의 가장자리에 자색 명주의 가는 선을 둘러 주었으며 겉쪽은 0.5㎝, 안쪽은 1㎝ 정도의 선으로 바느질되어 장식적인 효과가 돋보인다. 장옷의 뒷면에는 등솔기 없이 1폭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예외적인 재봉법이다.
겉옷으로 착용되었던 장옷에 비하여 깃이나 동정, 고름 등이 전체적으로 매우 크고 넓다. 그리고 고름 위치나 직선형의 도련과 배래 등에서 확인되는 조선 말기의 쓰개 전용의 장옷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