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요령성 대련시 감정자구(甘井子區) 영성자(營城子) 인민공사(人民公社) 후목성역(後牧城驛)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으로, 주거지 17기와 구덩이〔窖藏〕유구 10기가 발견되었다. 유적은 3개의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1기 문화층은 출입시설과 화덕을 가진 반움집으로 14·15·16·18·19호가 이에 해당된다. 호와 잔·발(鉢)·뚜껑·기대 등과 가락바퀴·돌도끼〔石斧〕·돌칼〔石刀〕·곤봉두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2기 문화층에는 구덩이 5기(5·6·7·8·10호)가 있으며, 구덩이는 원형과 부정형 두 가지가 있다. 삼족기와 호·발·접시·두·뚜껑 등의 토기와 돌도끼·돌칼·돌화살촉〔石鏃〕·곤봉두·가락바퀴·그물추 등의 유물은 1기와 형태가 유사하다. 3기 문화층에는 4기의 집자리와 5기의 구덩이 시설이 있다. 집자리는 장방형 평면의 반움집이며, 구덩이는 원형과 타원형이 있다. 발·완(椀)·잔·삼족기·다족기(多足器) 등과 돌도끼·석착(石鑿)·돌검〔石劍〕·돌화살촉 등과 골각기가 출토되었다.
세 문화층의 토기를 살펴보면 1기에는 잔이 많고, 2기에는 세발솥과 그릇뚜껑이 많으며, 3기에는 바리가 많은 등의 차이가 있지만, 2기의 세발그릇은 3기에서도 보이는 등 공통점을 갖기도 하여 각 문화층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기는 우가촌 하층유적에 해당되며, 2기는 장군산(將軍山) 돌무지무덤이 유행하는 시기이다. 기존에 1기와 2기는 신석기시대 말기로 이해하였으나 같은 단계의 유적인 단타자(單砣子), 대취자(大嘴子)유적에서 청동기가 발견되어서 초기 청동기 단계로 보고 있다. 3기는 우가촌 상층유적에 해당되며, 3기에 본격적인 청동기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 개의 문화층으로 이루어진 쌍타자유적은 각 문화층의 내용이 비교적 명확하고, 편년 상으로도 일정한 시기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요동반도 지역에서 고조선의 청동기문화의 특징과 변천을 이해하는데 있어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