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평 동계아시아경기대회 (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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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월 30일부터 2월 6일까지 강원도 평창 등지에서 개최된 제4회 동계아시아 경기대회. 동계아시안경기대회.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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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99년 1월 30일부터 2월 6일까지 강원도 평창 등지에서 개최된 제4회 동계아시아 경기대회. 동계아시안경기대회.
내용

동계아시안게임은 4년마다 개최되는 30억 아시아인의 동계 스포츠 축제다.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9회 하계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아지역 동계스포츠의 발전과 경기력 향상을 위해 창설 의견이 처음 제시됐다.

1984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서 대회를 창설하고 제1회 대회를 일본 삿포로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1999년 1월 30일부터 2월 6일까지 강원도 평창(용평)·강릉·춘천 등지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제4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로, 한국에서 개최된 첫 동계아시안게임이었다.

한국이 동계아시안게임 유치권을 획득하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89년 5월 제8차 OCA 총회에서 제3회 대회(1995년)를 치르기로 한 북한 삼지연이 1992년 8월 대회 반납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강원도가 대회 유치에 나섰다. 강원도를 국제적인 동계스포츠 도시로 육성하고 관광자원 및 지역개발을 촉진하고자 1992년 11월 OCA 집행위원회에서 대회유치를 신청했다.

함께 대회유치를 신청한 중국의 하얼빈과 경쟁을 벌인 강원도는 결국 표대결을 하지 제3회 대회 개최권을 중국에게 양보, 제4회 대회를 유치했다.

제3회 대회 유치포기에는 뒷배경이 있다. 1993년 12월 쿠웨이트에서 열린 제12차 OCA총회에서 강원도는 경기장 시설이나 운영면에서 중국의 하얼빈을 앞선 점이 인정됐으나 OCA 회원국이 전통적으로 친중국 성향이 강하고 당시 2000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중국에 대한 여론동정이 드세 전략을 바꾼 것이다.

이 대회는 동계아시아경기대회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21개국 799명의 참가자들은 7개 종목 43개 세부종목에 걸쳐 ‘영원한 우정, 빛나는 아시아’라는 대회 표어아래 우정과 화합의 경쟁을 펼쳤다. 경기종목도 대폭 늘어났다. 제1회 대회 7개 종목 35개 세부종목, 제2회 대회(일본 삿포로) 6개 종목 33개 세부종목, 제3회 대회 7개종목 41개 세부종목이 열렸다. 참가국 규모도 제1회 대회 7개국 425명, 제2회 대회 10개국 414명, 제3회 대회 16개국 660명에서 크게 증가했다. 투입된 인원은 지원요원 1,160여명, 자원봉사자 560여명 등 모두 1,850여명에 이르고 안전요원으로 군경찰 등 4,740여명이 활동했다. 각국에서 모인 970여명의 보도진들이 시시각각 벌어지는 열기의 현장을 전세계에 알렸다.

1999년 1월30일 용평실내빙상경기장에서 열린 개회식을 시작으로 용평에서 알파인스키(용평알파인스키장)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이상 용평도립노르딕경기장)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이상 용평실내빙상경기장), 춘천에서 스피드스케이팅(춘천실외빙상경기장), 강릉에서 아이스하키(강릉실내빙상경기장) 등의 종목이 벌어졌다.

열전 8일 동안의 레이스는 43개의 대회 총 금메달 중 한국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5개국만이 금메달을 차지, 몇몇 국가들의 잔치라는 동계아시안게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중국이 금메달 15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제3회 대회에 이어 2연속 종합우승을 달성했고, 주최국 한국은 금메달 11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4개로 2위를 차지해 동계아시안게임 출전사상 가장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한국은 제1대회와 제2회 대회에서 3위, 제3회 대회에서는 4위에 그쳤다. 한편 3위는 금메달 10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를 획득한 카자흐스탄이 차지하였다. 당시 남자 500m 세계기록(34초82) 보유자인 시미즈 히로야스 등 스피드스케이팅의 세계적인 스타들이 불참하고 알파인스키 종목에 2진급을 보낸 일본은 금6,은14,동메달 9개로 4위로 처졌다. 우즈베키스탄은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1개씩을 따내 5위를 차지하였다.

처음 금메달 6개로 종합 4위를 예상한 한국은 쇼트트랙에서 10개의 금메달 중에서 6개를 차지하고,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친 알파인스키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각각 3개와 2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특히 알파인스키에서 국제무대 첫 2관왕에 오른 간판스타 허승욱(남자초대회전·남자회전)과 청주여자고등학교의 유혜민(여자초대회전), 스피드스케이팅의 2관왕 최재봉(남자 1500m·1000m) 등이 거둔 성과는 쇼트트랙 일변도였던 한국동계스포츠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값진 성과로 꼽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약세인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등의 종목에서는 아시아무대에서 조차 정상권에서 한참 뒤떨어진 걸음마단계의 수준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자리가 됐다.

쇼트트랙에서 불거져 나온 심판의 편파판정 시비로 한국의 ‘홈텃세’를 주장하는 중국이 한때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철수시켜 오점을 남겼으며 경기운영 미숙으로 쇼트트랙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이 뒤늦게 정정 발표되는 해프닝이 벌어져 대회의 ‘옥에 티’로 지적되었다.

기록경기가 대부분인 동계스포츠에서 필수적인 계측장비와 관중 편의 시설이 크게 미비했다는 문제점도 발견됐으나 IMF관리체제 하에서 이뤄진 국제대회인 만큼 최대한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서 시설규모의 국제수준 충족과 경비절감 및 대회 이후 효율적 활용이라는 원칙에 따라 경기장을 신설한 점으로 상쇄됐다.

제4회 동계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는 궁극적으로 한국이 앞으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데 큰 뜻이 있다. 대회 개최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대외적으로는 국제 스포츠외교에 있어서 위상을 높였고 국내적으로는 겨울스포츠를 활성화하고 저변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고 지역개발을 촉진했다는 평가다.

2003년 제5회 대회는 일본인들 사이에 ‘북극의 마음’으로 불리는 혼슈지방의 최북단에 자리잡은 아오모리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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