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25m. 원래는 김해시 상동면 감로리 사지에 있던 것을 대한제국 말기에 강변으로 옮긴 것이라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 1947년 용화사의 법당을 중수하면서 강변에 있던 것을 옮겨와 주존으로 봉안하고 있다.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완전한 불상이다. 호분을 발라져 있었으나 현재는 벗겨낸 상태이다.
머리카락은 소라모양의 나발(螺髮)이고, 정수리에 솟아 있는 육계(肉髻)는 파손되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 긴 눈, 넓적한 코, 작은 입 등이 표현되었으나 8세기경 불상 양식보다 많이 퇴화된 모습을 보인다.
신체는 당당한 어깨, 풍만한 가슴, 양감이 풍부한 팔과 다리 등으로 힘 있고 볼륨 있는 체구를 보여 준다. 그러나 손이나 목의 삼도(三道) 표현 등 세부 수법은 얼굴과 마찬가지로 형식화되었다. 대의는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몸에 밀착되었으며, 옷주름은 뚜렷하지만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손 모습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얹어 손끝을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다리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였다. 결가부좌한 두 다리는 모두 드러나 있고 발바닥의 금까지도 묘사되어 있어 이채롭다.
광배는 윗부분이 약간 파손되어 있다. 형태는 배 모양의 거신광배(擧身光背)로서 내부에는 두 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다. 두광 안에는 8판연화문(八瓣蓮華文)이 조각되었다. 그리고 외연부에는 불꽃무늬와 구름무늬, 광배 윗부분에는 화불(化佛) 1구, 아래부분의 가장자리 양쪽에는 공양비천상(供養飛天像)을 새겼다. 광배에 이러한 비천상이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예로서,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2005년 지정)의 광배와 동일한 형식이다.
대좌는 8각연화대좌로 상대(上臺)는 단판연화문을 두 겹으로 새겼고, 중대는 8각으로 각 면에 비천상, 보살형, 팔부중(八部衆)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연꽃무늬가 보일 뿐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중기의 불상 양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부에서는 이상적인 면이 사라지고 형식화되어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용화사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보살상과 석주 등이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