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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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광배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광배
조각
개념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의장. 배광 · 불광 · 염광 · 원광 · 화광 · 후광.
이칭
이칭
배광(背光), 불광(佛光), 염광(焰光), 원광(圓光), 화광(火光), 후광(後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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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의장. 배광 · 불광 · 염광 · 원광 · 화광 · 후광.
개설

광배(光背)는 신성한 존재로서의 위대함과 초월성을 상징한다. 기본 형식은 머리의 두광(頭光), 몸에서 발산하는 신광(身光), 그리고 두광과 신광을 포함하여 몸 전체를 감싸는 거신광(擧身光) 또는 전신광(全身光)으로 나눌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상[여래상]뿐만 아니라 명왕(明王), 보살, 나한[제자], 천인(天人) 등 불교의 여러 존상에도 확대 적용되었다. 형태와 종류가 다양하며, 각종 문양을 추가하여 장엄하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불교에서 빛[광명]이 진리와 지혜의 상징이라는 생각은 부처의 몸에서 무한한 빛[무량광]이 나와 세상을 비추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대지도론(大智度論)』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 따르면, 부처의 비범함을 나타내는 신체적 특징인 32길상(吉相)의 하나로서 몸 주변에 길이 1장(丈)의 빛이 둘러싸고 있다는 장광상(丈光相)을 포함하거나, 부처 몸의 빛은 항상 존재하는 상광(常光)뿐만 아니라 필요에 의해 수시로 발산하는 방광(放光)이 있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이 밖에 불교 경전에서는 부처가 내는 빛을 둥근 형태 또는 원만함을 뜻하는 ‘원광(圓光)’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유사』에서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719년)의 화염문이 새겨진 광배가 ‘화광(火光)’으로 표기된 예는 옛사람들의 인식을 보여 준다.

비가시적인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불교 미술의 엄격한 도상적 규범이 적용되지 않았기에 제작자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였다. 기본 형식인 두광, 신광, 거신광 또는 전신광에다 화염, 연화, 당초(唐草), 연주(聯珠), 보주(寶珠) 등의 문양과 화불(化佛), 비천(飛天) 등의 불교적 요소가 추가되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인도나 간다라의 초기 불상에서는 장식이 없거나, 가장자리에 연속된 반원형 또는 톱니형 무늬를 두른 단순한 형태의 둥근 두광이 만들어졌다.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을 추가한 화염 광배가 출현하였으며,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 5세기 이후에 재래의 화염문양이 결합된 좌우 대칭의 기하학적인 중국식 화염 광배가 크게 유행하였다. 이 시기에는 위쪽 끝이 뾰족한 보주형 광배가 등장한 것도 특징이다. 수·당대 불상의 광배에는 보상화문(寶相華文) 등의 화려한 모티프가 더해져 장식성이 강화되었다.

내용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6세기부터 불상의 광배가 확인된다. 현존 최고의 기년명 불상인 고구려 「연가(延嘉)7년명 금동불입상」(539년 추정)에는 배 모양의 주형(舟形) 거신광에 화염문이 선각되어 있다. 이 유형은 평양 평천리 출토 「영강(永康) 7년명 금동광배」(551년 추정)나 황해도 곡산 출토 「신묘년(辛卯年)명 금동일광삼존여래입상」(571년 추정) 등에서 보다 정돈된 형태의 화염문, 두광의 연화문과 그 아래쪽으로 식물문이 배치되면서 고구려 금동광배의 특징을 형성하였는데, 중국 산동(山東) 지역 출토 금동불 광배와 유사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백제의 경우, 「부여 관북리 출토 금동광배」(6세기)처럼 테두리에 비천상들을 부착하는 고리가 달려 있고 화염문이 새겨진 중국 북조(北朝) 계통의 주형 거신광이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서산 마애삼존불입상」 본존불의 보주형 두광과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의 주형 거신광에서 보듯 점차 화염문이 양식화되거나 연판이 넓적한 형태로 변모하는 등 백제 특유의 부드러운 조형미를 갖추면서 일본 아스카[飛鳥]시대 불상 광배에 영향을 주었다. 신라에서는 「경주 남산 장창곡 출토 석조삼존불상」이나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상」 등 7세기 불상에서 복판(複辦) 연화문이 새겨진 고졸한 형태의 원형 두광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 불상의 광배는 화염문과 연화문뿐만 아니라 운문(雲文)과 화문(花文) 등이 더해져 구성이 복잡하고 화려해진 것이 특징이다. 7세기 후기 작 「경주 월지[안압지] 금동삼존판불」은 화염문 없이 당초문, 운문, 화문으로 광배 안쪽을 채웠고, 706년경 제작된 「경주 구황동 3층석탑 출토 금제아미타불좌상」의 광배도 바깥쪽의 화염문을 제외하면 식물문 계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일신라 금동불의 광배는 상과 따로 만들어 결합하였기에 남아 있는 예가 적지만, 석불의 광배는 많은 수가 전한다. 8세기 후반의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항마촉지인불좌상」이나 863년경의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처럼 두광과 신광의 경계선 바깥쪽에서 한 차례 만곡되는 주형 거신광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유형의 광배는 화불의 수가 늘어나고 구성이 복잡해지면서 전체적으로 장식성이 증가하였다. 통일신라의 광배 형식은 고려 전기로 계승되었으나, 문양이 성글어지고 표현의 정확성이 떨어지며 도식화되는 경향을 띠었다.

고려 후기 이후의 광배는 불상보다는 불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현존하는 고려 후기 불화에서는 단순한 둥근 두광과 신광이 결합된 형식이 여럿 확인되며, 조선시대 불화에서는 凸자형을 띠는 이른바 키형[파기형(簸箕形)] 광배가 출현하여 다채로운 색깔과 문양으로 꾸며졌다. 현재 전국 각지의 사찰에 전하는 조선 후기의 목조 및 소조 불상은 대부분 광배를 갖추지 않고 있는데, 함께 봉안된 채색 후불화가 광배와 비슷한 장엄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상』(진홍섭, 일지사, 1976)
「삼국시대 6세기 금동광배 연구」(성윤길, 『미술사학 연구』 277, 2013)
「돈황 막고굴 편년 시론: 불광 형식을 중심으로」(배진달(배재호), 『미술자료』 65, 2000)
「백제 불상의 훼룡문계 화염광배」(곽동석, 『신라문화』 17·18, 2000)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광배의 도상 연구: 문양을 통하여 본 백제 불상 광배의 특징」(조용중(조원교), 『미술자료』 49, 1992)
「한국 불상 광배의 양식 연구」(김명숙, 『이대사원』 16,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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