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마을 앞 논 가운데 세워져 있다. 이곳은 마을 옆 오산(鰲山)에서 흘러내려오는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위치로 섬진강변의 퇴적평지가 형성된 곳이다.
입석이 있던 곳은 원래 논두렁이었는데, 경지정리를 하면서 논의 모습이 지금처럼 변하게 되었고, 그 논 가운데 입석이 세워진 형세가 되었다. 고로(古老)들의 말에 의하면 “오산에서 걸어 내려온 돌이 지금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선돌’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삼국시대 국경 표시로 이 입석을 세웠다는 구전도 있다. 이 입석은 규모나 형태로 보아 선사시대 묘표석(墓標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실제 입석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지석묘 7기가 있어 그러한 해석을 가능케 해준다.
이 입석은 거대한 판상석을 세워놓은 형태이며, 측면은 잘 다듬어져 있지만 앞 뒷면은 면이 고르지 않다.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올라가다가 끝의 한 쪽이 경사가 져 뾰쪽하게 처리되었다. 입석의 정면은 섬진강 쪽을 향하고 있다.
크기는 높이 240cm, 상부너비 120cm, 하부너비 130cm, 두께 20∼30cm다. 현재 이 입석과 관련된 의례는 없다. 동제나 마당밟기 같은 주민들의 민속행사에서도 입석은 의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선사시대의 유물이기에 민속과 무관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민속 유물인데 나중에 기능이 약화되어버린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 입석과 형태나 규모가 비슷한 것으로 섬진강 건너편 토지면 구산리에 입석 1기가 있는데, 원전리의 것을 ‘신부바위’라 하고, 구산리의 것을 ‘신랑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