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원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노애집』, 『퇴계선생문집』, 『일경록』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노애(蘆厓)
  • 숙문(叔文)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791년(정조 15)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21년(경종 1)
  • 출생지경상북도 안동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민식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노애문집 미디어 정보

노애문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노애집』, 『퇴계선생문집』, 『일경록』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문(叔文), 호는 노애(蘆厓). 경상북도 안동 출생. 참의 유관현(柳觀鉉)의 아들이다. 참의 유승현(柳升鉉)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인 유장원(柳長源)과 함께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네살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을 뿐더러 동생 장원과의 우애가 또한 돈독하였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더 이상 과거 볼 것을 단념하고, 존심(存心)·함양(涵養)의 실천적 수행으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성격이 매우 청백하여 평소 남들과 함부로 어울리기를 꺼려하였다고 한다. 생활이 매우 규범적이어서 「십계(十戒)」·「삼잠(三箴)」 등의 경구를 벽에 써붙여 놓고 항상 애송하며 마음을 닦는 데 주력하였다.

학행이 널리 알려져 도천(道薦)으로 명릉참봉(明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한 지 3일 만에 병을 칭탁하고 사직, 고향에 돌아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790년(정조 14) 노인직으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주석학(注釋學)에 밝았다고 하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문집인 『노애집(蘆厓集)』을 비롯하여 『퇴계선생문집고증(退溪先生文集攷證)』·『일경록(日警錄)』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 『입재집(立齋集)』

  • - 『해좌문집(海左文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