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괴정(槐亭). 유광보(柳光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의(柳依)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 유종식(柳宗植)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대사성 권우(權遇)의 딸이다.
1460년(세조 6) 별시문과에 을과 3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제수되었으며, 그 뒤 1496년까지 예문관대교·부교리·승의(承議)·예산현감·이조정랑·괴산군수·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496년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문의(文義)에서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죽은 뒤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
조선 초기 건국창업의 기운이 한창 풍미하고 있을 때 행정가로서의 재능을 한껏 발휘하여, 15세기의 안정된 사회경제체제의 구축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특히, 1472년(성종 3) 예산현감으로 있을 때 그 지역에 횡행하던 도적을 일망타진하였으며, 1489년 세자시강원필선으로 있을 때는 일본사신을 맞이하여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였던 일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청천유고』 5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