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립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개성유수, 경상도관찰사,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입지(立之)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탕개의 난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599년(선조 3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지|개성유수|경상도관찰사|병조참판
  • 출생 연도1537년(중종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홍 (경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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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개성유수, 경상도관찰사,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입지(立之). 유헌(柳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세구(柳世龜)이다. 아버지는 사인 유감(柳堪)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조윤무(曺允武)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그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사인(舍人)·지평(持平)·영변판관·보성군수·철산군수·공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1582년 종성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이탕개(尼蕩介)의 난으로 1만여 명의 야인이 침입하자, 우후 장의현(張義賢), 판관 원희(元喜) 등과 이를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성이 함락되었고, 그 책임으로 하옥되었다.

곧 풀려나 승지·개성유수를 거쳐 1586년 경상도관찰사, 1588년 전라도관찰사, 1591년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이듬해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산 속으로 피신하였다가 가토[加藤淸正] 휘하의 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뇌물로 매[鷹]를 바치고 탈출하였으나,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의 변호로 곧 복직되어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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